동아시아 불안정 ― 제국주의론으로 파헤치기 ①:
자본주의에 내재한 지정학적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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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불안정이 점차 커지자, 그 원인을 놓고 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국주의로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제국주의론은 오늘날 동아시아 불안정의 핵심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레닌, 부하린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 간 갈등과 긴장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닌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일반의 근본적 특징의 발전이자 그 직접적 연장”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에서 개별 자본은 이윤 획득을 놓고 다른 자본들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경쟁에서 도태된 자본은 다른 자본에 잡아 먹히고, 승리한 자본은 점차 더 거대해진다.
엄청난 경쟁 압박 때문에 자본가들은 경쟁자를 누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벌일 뿐 아니라 자국의 힘을 동원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 한다.
자본과 국가
자본주의 국가들도 자국 자본이 경쟁에서 유리해지도록 다른 국가와 치열하게 경쟁한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앞서려면 성공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이 더는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들은 세계 각지의 시장과 원료 산지에 접근하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국가는 외교력과 군사력을 강화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즉,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래서 부하린은 “전쟁 없는 자본주의는 상상할 수 없듯이, 군사력 없는 자본주의도 상상할 수 없다”고 썼다.
두 가지 형태의 경쟁에서 앞서 나간 소수 국가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위계서열에서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 체제는 소수 강대국들이 경쟁하면서 나머지 국가들을 경제적·군사적·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체제다.
반면, 제국주의를 지배계급 일부(예컨대 군수자본이나 금융자본)가 지지하는 “정책”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를 단지 특정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만 보기도 하는데, 이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뜻한다는 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세계적·지역적 규모에서 교역과 투자가 활성화돼 국가 간 경제적 상호 의존이 커지면,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충돌하기보다는 평화적으로 협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미국, 중국, 일본 등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제적으로 상호 밀접해져서 동아시아에서 ‘파국’은 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제국주의 열강이 국가들의 위계서열과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국제질서”를 일시적으로 안정시킬 수는 있다. 그리고 경제의 “세계화”를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속될 수 없는 일이다. 레닌은 세계경제의 불균등성과 모순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역동적 발전 자체 때문에 이러한 불균등성의 분포가 바뀌고 국가 간 힘의 균형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주장했다.
30년 전만 해도 중국 경제는 네덜란드보다 작았다. 그러나 30년 동안 연평균 8~10퍼센트씩 폭발적으로 성장해, 오늘날 중국 경제는 일본마저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랐다.
반면, 세계 최강 미국은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해 왔다. 일본 경제도 계속 정체해 일본 자본가들은 자국이 ‘청일전쟁 후 처음으로 중국에 밀렸다’는 충격에 휩싸였다.
또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주요 채권국이 돼, 세계경제의 중요한 거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아시아 나라들에 중국은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불균등과 모순
중국의 경제성장은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세계에서 군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특히 원활한 자원 확보 등을 위해 해군력을 급격히 증강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제국주의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낳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미국의 “뒷마당” 라틴아메리카에서 막대한 원료를 수입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을 미국의 영향권에서 떼어내는 구실을 한다. 그리고 러시아 등과 공조해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은행에 맞서 브릭스 개발 은행을 설립하려 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가도 동아시아를 지배해 온 미국의 군사 패권에 직접적인 도전이 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부상을 위협으로 느끼며 제국주의 서열의 꼭대기 자리를 지키려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오바마는 “아시아 재균형(아시아로의 ‘귀환’)” 전략을 천명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늘리고, 동맹 관계를 확대·강화했다.
특히,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낳는 경제 위기가 이런 갈등을 키우고 있다. 헨리크 그로스만은 경제 위기가 깊어질수록 “세계시장에서 경쟁자를 배제하고 가치의 이전[이윤]을 독차지하려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 위기 때문에 열강 사이의 지위가 바뀔 때 “경제적 경쟁을 폭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국가 간 정치적·군사적 갈등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살아남는 데 혈안이 돼, 서로 협력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오바마는 집권 초 세계경제 위기에 대처하려고 G20 정상회의 등을 활용해 주요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국가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불협화음이 커지면서, 오바마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동아시아에서도 경제 위기는 국가 간 경제적 경쟁을 더 부추긴다. 미국은 중국의 위안화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자국에 유리한 경제권을 형성하려고 중국과 경쟁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서로 맞물리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예컨대 일본 아베 정권이 자국 경기를 부양하려고 이웃나라의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경제정책(일명 ‘아베노믹스’)을 추진하면서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력 강화도 천명한 건 단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동아시아 불안정은 제국주의적 경쟁의 “최신 단계”다.
물론 지금 당장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간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하는 강대국과 이를 제압하려는 기존 강대국의 경쟁 속에 곳곳에서 갈등이 불거질 것이다. 이 지역에는 영유권 분쟁, 군비 증강과 맞대응 등 여러 불씨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런 긴장이 나중에 심각한 “돌발사태”를 일으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런 경쟁과 충돌의 부담이 전적으로 노동자·민중에 떠넘겨지는 것도 물론이다.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거대 자본과 제국주의 국가 들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국제 협정, 국제 기구 등을 통해 이 세계가 만든 불안정과 야만을 막을 수는 없다.
다음번에는 동아시아에서 커지는 불안정에 어떤 전략과 전술로 맞서야 하는지 제국주의론에 입각해 살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