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르크스주의와 정당》:
과거가 우리를 도우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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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론인이자 급진파 지도자였던 존 리드가 1917년 러시아혁명을 목격하고 쓴 책 《세계를 뒤흔든 열흘》에는 볼셰비키 병사가 멘셰비키 학생과 논쟁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대목이 있다.
학생이 험악하게 병사를 윽박질렀지만, 병사는 학생의 젠체하는 타박에 단순 명료한 주장을 반복하며 반박했다. “이 세상에는 두 계급,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가 있지요.”
극도로 화가 난 학생이 병사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당신은 레닌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친구라고 믿는 것 같은데?” 그러자 병사는 “예, 그래요” 하고 답한다. “그는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을,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더군요. 러시아에는 두 계급이 있습니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
20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 병사는 나에게 영웅 같은 존재였다. 그는 혁명적 정당에 관한 숱한 헛말을 단칼에 반박했다.
그 병사에게는 자발성이냐 의식성이냐, 전위 정당이냐 대중 정당이냐 등에 대한 딜레마가 없었다. 그는 볼셰비키였다. 볼셰비키가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이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지만) ‘볼셰비키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한다.’
레닌주의 정당 모델은 한물갔는가
물론 현재 우리는 혁명의 한복판에 있지 않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96년 전과 동일한 결정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와 싸워야 하는 임무가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한다. 그들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함께 혁명적 정당을 건설하자.’
물론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노동자·학생 투사 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저자 존 몰리뉴가 2013년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지금은 ‘당에 반대하는’ 태도가 거의 합의처럼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새롭게 급진화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그렇다.”(14쪽)
이들은 혁명적 정당이라는 말 자체가 ‘권위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라며 경기를 일으킨다. 또, 민주집중제는 ‘나쁜’ 지도부가 손쉽게 당과 운동을 조종할 수 있는 반민주적 제도라고 생각한다.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독재의 다른 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당이 민주주의와 중앙집중주의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은 “당의 임무와 계급투쟁의 본질에서 직접 도출되는 결론이다.” “민주주의가 필수적인 이유는 당이 노동계급의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며 “중앙집중주의가 필수적인 이유는 당이 매우 중앙집중적인 적, 즉 자본주의 국가를 상대로 격렬하게 투쟁해야 하기 때문이다.”(230쪽)
다른 한편에서는 “모종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좌파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혁명적 조직, 즉 레닌주의 조직이 아니라 ‘범좌파’ 정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다.”(16쪽)
몰리뉴는 “광범한 급진 좌파 정당들이 출현하고 성장한 것은 노동계급이 좌경화하고 있다는 징후이자 표현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정당과 혁명적 정당 건설을 대립시키면서 범좌파 정당이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떠받드는 사람들은 좌파 개혁주의 정부들의 비극적 역사를 무시하는 셈이다.”(17쪽)
혁명적 정당이라는 사상은 한물갔다는 흔한 주장은 그래서 사실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마침내 묻어 버릴 새로운 대중 운동을 생각하지만, 아직 혁명적 정당의 사활적 필요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투사들이 《마르크스주의와 정당》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존 몰리뉴는 영국과 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로서, 복잡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압축해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가 〈레프트21〉에 기고한 글들은 사회주의 운동의 간부를 넘어 광범한 진보 성향의 독자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법을 보여 주는 사회주의 글쓰기의 전형이다.
이 책도 매우 명료하다. 일곱 장(章)으로 된 책에서 몰리뉴는 마르크스·레닌·룩셈부르크·트로츠키·그람시의 혁명적 정당에 관한 사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노트 형식으로 마르크스주의 정당 이론의 주요 원칙과 오늘날 적용을 위한 핵심을 요약한다.
몰리뉴는 이 혁명가들의 혁명 정당 사상을 시간을 초월한 지혜의 명판(名板)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혁명가들이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문제를 붙잡고 씨름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보편적 이론 전개에 멈추지 않고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다룬다.
가령, 마르크스는 위로부터 배송되는 사회주의 계획, 권위주의적이고 음모적이며 선전 종파적인 당 개념을 완전히 배격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는 대체로 현대적 의미의 정당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당 개념은 모호하거나 숙명론적 요소가 있었다고 몰리뉴는 지적한다.
시간을 초월한 지혜의 명판?
몰리뉴는 정당에 관한 레닌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는 데 상당한 분량(두 장)을 할애한다. 20세기 초 혁명 운동들에서, 특히 제1차세계대전 뒤에 일어난 혁명들에서 혁명적 조직 이론에 기여한 많은 개인이 있었지만, 그중 레닌이 단연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의 정치 현실에 영향을 받은 레닌은 초기 저작들에서 직업적 혁명가들로 이뤄진 당을 고안했다. 그러나 1905년 혁명을 경험한 레닌은 볼셰비키당이 노동계급 대중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게끔 자신의 관점을 바꿨다. 1917년 혁명 후에 레닌은 “세계 수준의 볼셰비키당”, 곧 중앙집중적 세계 당(제3인터내셔널: 코민테른)을 건설했다.
몰리뉴는 20세기 초 혁명가들의 논쟁도 살펴본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의 레닌 비판을 검토한다. 몰리뉴는 이 논쟁을 자본주의의 전복에 헌신한 혁명가들 간의 우애적 논쟁으로 본다. 그는 룩셈부르크의 당 이론이 “그 자체로도 노동운동에 대한 유용한 무기”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룩셈부르크의 당 이론은 [레닌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레닌주의의 틀 안으로 통합돼야만 진정 유용한 무기다.”(161~162쪽)
몰리뉴는 스탈린과 스탈린파 관료들에 맞서 레닌주의 당 개념을 지켜 내고, 변질돼 버린 코민테른이 아니라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대안을 구축하려고 노력한 트로츠키의 “두 가지 유산”을 방어한다. 그와 동시에 1930년대 말엽 트로츠키의 빗나간 예측과 전망의 이론적 기초들을 대차대조표를 그려 가며 설명한다.
그람시를 사회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서만 보는 사람들은 혁명적 조직에 대한 그람시의 공헌을 다룬 장이 새로울 것이다.
이 책은 1978년에 첫 출판됐다. 몰리뉴가 이 책을 쓴 목적 가운데 하나는 “레닌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주의 전통의 해석이 올바르고 특히 스탈린주의나 이른바 ‘정설’ 트로츠키주의의 해석이 틀렸음을 입증하려는 것이었다.”(14쪽)
몰리뉴가 염두에 뒀던 조직들은 많은 경우에 진정한 혁명 조직과 아무 관계가 없었고, 세계의 많은 지역들에서 개혁주의에 영합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라지거나 잊혀진 정당들도 많다.
그럼에도 이 책과 이 책의 주요 주장들은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거의 전부” 적절하다. 심각한 경제 위기, 고조되는 저항 물결, 기후 변화 등 자본주의의 위기들을 “감안할 때, 국제 사회주의 혁명과 그 혁명을 확실히 승리로 이끌 혁명적 정당 건설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13쪽)
이때 우리가 과거 경험의 어깨를 딛지 않고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끝으로,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당 논쟁사》라는 제목으로 1988년에 처음 국역 출판된 이래 출판사를 옮겨 가며 몇 차례 출판됐다. 그러나 이번 판본은 역자들의 꼼꼼하고 수준 있는 번역 덕분에 아주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 이미 국역본을 갖고 있는 독자들도 꼭 사서 다시 읽기를 권한다. 1만 3천 원이 결코 아깝지 않다.
저자 존 몰리뉴는 오는 7월 19일(금)부터 22(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맑시즘 2013’ 포럼에서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 등을 주제로 연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