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촛불 소녀’에서 사회주의자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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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의 물결은 평범한 한 고등학생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엄청난 경험이었다. 촛불항쟁은 사회적 의식이 전무하던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눈을 뜨고 행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던 정치적 언어와 역사적 진실을 거리에서 접할 수 있었다. 거리와 투쟁 현장에서 세상을 바로 보는 눈과 신념을 형성할 수 있었고, 나의 주된 관심사와 실천의 범위가 넓어지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내가 촛불항쟁을 경험하고 바로 급진적 대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당시 촛불항쟁은 그 성과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결합하지 못한 한계들로 동력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촛불항쟁의 의의와 한계를 정치적 언어로 설명하고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는 좌파단체를 만났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사회주의자가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촛불항쟁에서 급진화한 대중과 토론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좌파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많은 좌파 단체들이 촛불과 소통하지 않고 폄하하는 것을 보며 나는 은연중에 좌파 단체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그 뒤에도 나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나 의회민주주의로 협소하게 여겼고, 국가나 자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무했다. 그러다 2009년 용산참사와 쌍용차 파업을 겪으며 국가와 자본의 본질을 깨달았다.
각종 악법 날치기와 한미FTA 반대 투쟁은 의회민주주의의 한계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게 했다. 특히 한미FTA 반대 투쟁 당시 나는 스스로 사민주의자라고 규정했기에 정치적 정체성 혼란을 꽤나 크게 겪었다.
그러나 사회 변화는 의회나 국가기구를 인수해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투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 뒤부터 더 급진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온라인에서 〈레프트21〉 기사를 접했고, 노동자연대다함께 회원들과 토론하면서 노동자연대다함께에 가입하게 됐다. 촛불항쟁으로 시작해 다양한 사상적 조류를 접하고 경험하면서 결국 사회주의 대안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5년 전 촛불을 들었던 그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며 현재는 사회주의자로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대중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진보적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그들이 바라는 진보와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실천 속에서 입증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나에게 혁명적 대안을 설득하고, 정치적 성장을 가능케 해 준 든든한 동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