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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진정한 전선이다

터키 총리 에르도안은 이번 시위가 야당이 배후에 있는 세속주의(터키 민족주의) 시위라고 폄하한다. 시위를 편드는 척하는 서방 언론은 시위가 이슬람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양쪽이 같은 주장을 하는 셈인데, 모두 진실이 아니다.

1923년 터키 건국 이래 80년 동안 지배계급은 세속주의를 내세워 평범한 사람들을 억눌렀다. 인구 다수가 무슬림인데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또한 터키 민족주의를 내세워 쿠르드족(터키인 5명 중 1명)과 아르메니아인 등을 탄압·학살하기도 했다.

사실상 온 국민을 억누른 것이다. 군부는 ‘건국이념을 수호’한다며 독재적 권한을 휘둘렀다.

그런데 1990년대 말 터키의 대자본가들은 유럽연합에 가입하려 하면서(터키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중동에 걸쳐 있다), 군부를 정치 무대의 뒤로 물러서게 했다. 쿠르드족을 전면 탄압하는 대신 그들과 부분적으로 타협해 실리를 챙기려고도 했다. 그 덕분에 2002년에 에르도안이 이끄는 정의개발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

정의개발당은 지배계급의 새 염원을 따라 신자유주의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담배, 발전소, 국영은행까지 닥치는 대로 민영화해서 해마다 팔아 치운 자산 규모가 이전 정부의 16곱절에 달했다.

그래서 서방 언론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터키가 이슬람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성공적으로 결합했다며 칭송했다. 아랍 나라들이 배워야 할 본보기라는 거였다.

그러나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터키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절반이 채 안 되는데, 세계 5백대 갑부가 한국보다 더 많다(〈포춘〉). 도심지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상류층을 위한 쇼핑몰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이번 투쟁의 발단이 된 게지 공원에도 호화 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쇼핑몰

한편, 이전보다 영향력이 줄어든 군부는 신자유주의에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세속주의(터키 민족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호들갑만 떨었다.

반면에 정의개발당은 군부에 맞선 ‘개혁’ 이미지를 유지하며 지지율이 꾸준히 올랐다. 오늘날 에르도안의 거만한 태도는 바로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정의개발당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기층 민중의 고통과 불만은 계속 쌓여 왔다.

지금 터키 전역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주도 없이 수백만 명이 참가하는 저항운동이 벌어진 것은 그 분노가 폭발했음을 보여 준다. 흔한 보도와 달리 정부의 이슬람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터키 민족주의와 군부에 반대해 정의개발당을 확고히 지지한 세력 일부도 저항에 참가했다. 터키인과 쿠르드인, 무슬림과 무신론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함께 경찰 폭력에 맞서고 있다.

게지 공원에서는 히잡을 착용한 여성을 쉽게 볼 수 있고,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읽는 의식도 열린다.

이슬람 예배당인 모스크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려고 임시 병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 이슬람 학자는 “저들은 신앙 없는 이들만 탁심 공원에 모인 것처럼 말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하고 말했다.

뒤늦게 세속주의(터키 민족주의) 야당도 반정부 시위에 합류했다. 그중 상당수는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키길 바라며 무슬림과 쿠르드족의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운동에 올라타지 못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정한 문제라는 것과, 군부가 아니라 노동자 투쟁이 변화의 동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최근 터키 공공부문 노동조합연맹이 이틀 파업으로 반정부 시위에 연대한 것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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