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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공개 변론:
“왜 ‘기업 부담’을 덜자고 노동자 주머니를 털어야 합니까?”

박근혜 정부는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마녀사냥하다가 수사 1주일 만에 내란죄로 구속하는 ‘독재 유전자’의 생얼을 보여 줬다.

이 마녀사냥은 사회 분위기를 얼어붙게 해서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더 손쉽게 전가하려는 정지 작업이기도 하다.

9월 5일에 대법원이 공개 변론을 연 통상임금 관련 재판도 이와 관련 있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무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 등, 주당 40시간으로 제한된 법정 근로시간을 넘기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추가 비용 책정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연간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추가 노동 비용, 즉 야근·특근 수당 등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판결 이후 기업주들은 지난 3년치 연장근무, 휴일근로 수당으로 무려 38조 원을 배상해야 하고 앞으로도 해마다 8조 원씩 인건비가 더 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박근혜는 방미 기간에 GM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꼭 풀어 나가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도 이 판결 내용을 무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통상임금이 올라가면 최저임금을 많이 올릴 수 없다고 하거나,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만 통상임금 인상 혜택을 봐 노동자 내의 임금격차를 늘릴 것이라며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 했다.

삼권분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사실상 재심을 요구한 셈이다. 결국 대법원은 갑을오토텍(위니아만도) 통상임금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9월 5일에 열린 공개변론은 이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위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재판이 정부의 압력을 받은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공개변론을 하기로 결정한 듯하다. 그러나 최근에 판례가 나온 사안에 대해 그것이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심을 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게다가 사법부는 공개변론 내용 중 ‘박근혜가 사법부에 영향을 주려 했다’는 취지의 발언과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말 것을 사전에 요구하기도 했다. 공개변론 과정에서도 많은 대법관들이 이번 판결이 기업주들에게 끼칠 효과, 즉 38조 원이 경제에 미칠 효과를 거론하며 변호인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 판결이 경제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라는 협박은 황당한 것이다.

협박

첫째, 노동자 측 변호인이 잘 지적했듯이 3년치 체불임금 38조 원을 부담해야 하는 기업주들을 걱정해야 한다면, 수십년 동안 수백조 원을 못 받은 노동자들의 부담은 왜 무시하는가. 이날 이상훈 대법관도 ‘판결 내용은 인정하지만 사측의 처지가 딱하니 비용을 줄여 달라는 거냐, 아니면 판결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냐’ 하며 38조 원 주장이 순전히 판결에 압력을 넣기 위한 수단임을 꼬집었다.

둘째,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지 체불임금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통상임금이 올라 추가 노동 비용이 대폭 높아져야 기업주들이 야근·특근을 시키는 대신 신규 고용을 늘릴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장시간 노동과 실업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 왜 적은 기본급 때문에 야근·특근을 밥먹듯 해야만 해 OECD 최장 노동시간으로 과로사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비관 자살하는 청년들이 공존해야 하는가.

셋째, 물론 이런 조처는 기업주들의 이윤을 줄이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러나 체불임금 38조 원은 기업주들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 둔 사내유보금 수백조 원과 조세도피처에 숨겨 둔 9백조 원에 대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연간 8조 원의 추가 비용도(기업주들은 비용이라고 부르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소중한 임금이다) 1천2백50조 원에 이르는 이 나라 GDP에 견주면 1퍼센트도 안 되는 돈이다. 어림잡아 2천5백만 명에 이르는 노동계급과 그 가족들에게 GDP의 1퍼센트도 안 되는 돈을 분배하는 게 부당한 일일까? 그것도 ‘그동안 떼먹은 임금’인데도?

이 점에서 일부 변호인들이 ‘실제로 지급될 체불임금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지나치게 수세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법원에 문제 제기해 승소할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겠냐’고 한 것도 아쉽다.

조직 노동자들은 이 판결의 효과가 대기업을 넘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도록, 즉 전체 노동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요구해야 한다.

또 기본급 비중과 액수를 대폭 늘리는 임금체계 개선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도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 대기업 정규직만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정부의 이간질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오로지 매달 지급된 돈만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사측의 주장은 워낙 군색한 것이라 대부분의 대법관이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연봉은 어쩔 건가?”, “채용 당시 연간 6백 퍼센트 상여금을 제시한 것은 성과에 따른 포상이 아니니 사실상 통상임금을 뜻하는 것 아닌가?”, “똑같은 돈을 매달 나눠주면 통상임금이고 두 달이나 세 달에 한 번씩 몰아주면 통상임금이 아닌가?”, “명절 선물비는 통상임금인데 왜 명절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닌가?”

이처럼 자본주의적 법리에 따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는데도 탐욕스러운 기업주와 그들의 정부는 온갖 경로로 사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 때문에 판결 결과는 낙관할 수 없다.

따라서 법적 소송뿐 아니라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정치적 투쟁을 조직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