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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 등 해외 한국학 학자 공동성명: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진보당이 아니라 국정원”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 1백33명(9월 12일 현재)은 최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 등을 내란음모로 기소한 것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오언 밀러 영국 런던대 교수,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조지 카치아피카스 미국 웬트워스대 교수, 신현방 영국 런던경제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 성명은 〈뉴욕타임스〉 등 국내외 저명 언론에도 보내졌다고 한다. 연서명이 계속 진행인 만큼 서명 명단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국정원이 한국 민주주의에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학자들의 성명

최근 한국 국정원의 행동을 보면서 한국이 힘들게 성취한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정원과 국정원의 전임 원장[원세훈]은 지난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엄중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조사와 함께 각 정당의 정치인들이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와중에, 국정원은 반격에 나선 듯 보인다. 소수 야당과 소속 의원들을 내란음모 혐의로 공격한 것이다.

내란음모 혐의는 1987년 군사정권이 물러난 이후 제기된 적이 없다. 이를 보고 있으면, 1980년에 정치적 반대파인 김대중(이후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을 받는다)을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한 것과 1975년에 인혁당 사건(이후 무죄로 밝혀진다)을 조작해 8명의 무고한 인명을 빼앗은 조잡한 정치 공작들이 떠오른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아래로부터 민주화’의 기수로 알려졌고, 어떻게 대체로 평화적인 경로를 통해 독재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선례가 됐다. 그 때문에 한국 시민사회는 전세계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이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이라는 조건 때문에 한국의 민주화가 완성되지 못한 것도 알고 있다. 한국 내에 숨겨진 ‘강철 국가’는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됐으며 최근 국정원이 취하는 행동은 그런 우려를 다시금 제기하게 한다.

더욱이 국정원이 정치적 반대파를 내란 혐의로 고소하는 것뿐 아니라, 냉전시대 남용으로 악명 높았던 반공 논리의 잔재인 국가보안법을 다시금 꺼내 들어 휘두르는 것에 중대한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이석기 의원과, 함께 기소된 통합진보당 다른 의원들이 무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명백하고도 분명한 것은 소수 민족주의 좌파 정치인들의 행동이 아니라, 바로 국가 정보 기구가 선거 과정에 개입하고 그 조직을 개혁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 하는 행위야말로 남한의 민주주의와 시민적 권리를 가장 위협한다는 것이다.

한국 안팎에 있는 많은 이들이 보기에 국정원은 자신의 불법 행동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피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운 수법으로 관심을 돌리려 한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아주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은 한국 민중이 냉전 시대와 과거 독재 정권의 잔재를 청산할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이 오랫동안 갈망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설·사상·정치 행동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해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강한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두려워 하거나 가상적인 외부 위협을 이용해 사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한국을 깊이 염려하는 학자로서 우리는 한국이 과거 독재 시절로 회귀하는 일이 없도록 위험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에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연대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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