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WTO 조달협정 개정이 민영화와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한국전력공사 같은 경우는 몇 년 전에 개방됐는데, 민영화가 안 됐다’는 것이죠.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달협정 개정은 민영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첫 민자선인 지하철 9호선에 프랑스 기업인 베올리아가 들어온 과정을 살펴보죠. 9호선은 처음부터 BTO 방식(수익형 민자사업)으로 추진됐습니다. 즉, 민간 회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건설하고, 소유권은 지자체에 넘기되 일정 기간 민간 기업이 직접 운영하면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입니다. 그럼 운영을 민간이 해야겠죠. 그런데 국내에는 철도를 운영할 기술을 가진 곳이 공기업인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운영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해외 자본을 찾은 거죠. 지하철 9호선은 베올리아와 같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굉장히 좋은 투자 대상입니다.
조달협정에 도시철도를 전면 개방하는 것은, 이런 자본들이 더 공격적으로 도시철도 시장에 진출할 여지를 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건설, 유지·보수, 운영의 단계별로 외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죠. 특히 도시철도는 해외자본이 진출하기 알맞은 사업 규모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는 조달협정이 “고속철도와는 관계없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서발 KTX를 예로 들어 보죠.
지금 박근혜 정부는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와 분리해 별도 법인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새로 만들어진 수서발 KTX의 경영진이 ‘효율적 운영’을 명목으로 수서발 KTX를 섹터별로 나눠 아웃소싱 하면, 조달협정에 따라 여러 해외기업들이 진출할 환경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특히 수서발 KTX는 흑자노선이기 때문에 자본의 좋은 이윤 추구 대상입니다.
수서발 KTX 회사가 지분을 매각하게 될 경우, 이미 진출한 자본이 지분을 사들여 운영권마저 넘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민영화는 간단했습니다. 정부가 공기업을 통째로 또는 운영권을 매각하는 것이죠. 누가 봐도 이건 민영화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매우 교묘하고 은밀하게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껍데기는 공기업이지만, 실상은 민간기업과 다름없는 구조로 만들고 운영합니다. 그러다 결국 조건과 환경이 되면, 공기업이라는 껍데기마저 버립니다. 마치 트로이 목마 같은 것이죠.
조달협정 그 자체가 민간기업에 공기업을 매각하는 것이라고 할 순 없어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마중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의 국적과 상관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게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입니다. 해외자본이든 민간자본이든, 중요한 것은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부문에 민간기업이 잠식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철도는 공기업이 운영하고, 민간기업이 들어오는 경우는 예외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민간 개방 흐름이 가속화하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민간기업이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