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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조정:
학술연구 결과를 수량화하는 건 미친 짓이다

학문적 성과를 수량화하는 것은 학문 발전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옥스포드 대학 약리학과 교수 존 패링턴이 주장한다. 우리 나라 대학에서 횡행하는 제도에도 해당하는 비판인 듯해 우리 신문에 싣는다. 

요즘 같은 때 아무 교수나 붙잡고 “임팩트”라는 단어를 말하면, 그 말을 들은 교수는 십중팔구 지독한 욕설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번 달에 연구완성도평가(이하 REF)가 완료되기 때문이다. REF는 영국 대학에서 이뤄진 연구의 임팩트를 산정하려고 만든 평가 방식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학자들이 REF에 부정적인가?

지식인들은 실생활 문제와 거리를 둬야 하고 대학은 상아탑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하는 연구가 바깥 세상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즉, 임팩트를] 밝혀 달라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학자들이 REF를 싫어하는 이유의 하나는 임팩트를 평가하는 방식 때문이다. 학자들은 REF 평가를 위해 최근 5년간 실적이 좋은 논문 네 편을 제출해야 한다.

해당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의 피인용지수에 근거해 각각의 논문에 점수를 매긴 후, 이를 합해 그 학자의 연구 가치를 숫자 하나로 환산한다.

이렇게 매겨진 점수는 한 학자의 성공을 재는 척도가 될 뿐 아니라, 그 학자가 속한 대학이 연구비를 얼마나 따내는지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평가 방식이 문제인 것은, 진정 첨단을 달리는 연구 성과는 발표되고 나서 꽤 시간이 흘러야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의대 1학년 학생들에게 생화학을 가르칠 때 나는 종종 노벨상 수상자 피터 미첼에 대해 얘기한다. 미첼은 세포가 음식을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을 규명해 냈지만, 그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또한 획기적인 연구가 실용적인 형태로 결과물을 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

부상병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에 발견했는데, 1941년에야 플로리와 그의 동료들이 약품으로 조제했다. 제2차세계대전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페니실린이 부상병 치료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체외 수정과 구강 피임약도 처음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의 연구비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둘 모두 개인 기부를 받아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REF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많거나 미래에 실익을 얻을지 알 수 없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연구하는 것이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REF는 단기적 성과와 즉각적 효과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이럴진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더할 것이 뻔하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대한 새로운 통찰의 임팩트를 어떻게 산정할 수 있겠는가?

예컨대 경제학 같은 분야, 즉 대학에 연구 자금을 대는 바로 그 자본주의 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신화에 도전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작업인 분야라면 어떻겠는가?

안타깝게도, 대학에서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으로 여겨지는 것들 중 많은 것이 내가 보기엔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이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를 설명하는 데 완전히 무능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토록 많은 대학이 마르크스 같은 인물을 커리큘럼에서 빼 버리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럼에도 가끔은, 학문적 성과를 수량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평가라 해도 쓸 만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는 있다. 과학 학술지 〈네이쳐〉가 최근 REF와 같은 방식을 이용해 동서고금의 모든 학자들의 순위를 매기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누가 1등 했는지 짐작하겠나? 그렇다. 칼 마르크스가 큰 표차로 1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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