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억압 기구들을 강경 우익으로 채운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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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12월 2일 감사원장 황찬현, 검찰총장 김진태,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 임명을 강행했다.
마침 그 시각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 지도부 회담이 열리던 때였으니, 도발적 인사로, 각종 개악과 고통전가 정책 강행 의지를 과시하겠다는 박근혜의 악의만큼은 확실히 전달된 셈이다.
이번에 수장을 임명한 검찰, 감사원은 국정원, 경찰청, 국세청, 금감원 등과 함께 전방위적인 사정·사찰·억압 기능으로 정권의 통치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관들이다.
박근혜가 이들에게 내린 지시도 의미심장하다. 검찰총장 김진태에게는 “어떤 경우라도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생각 자체를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사상 탄압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박근혜와 강성 우익들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사상·언론·출판·집회·결사 등 민주적 기본권이 아니라] ‘자유시장’과 ‘사적소유권’ 보장으로 본다는 점에서 민영화 반대 파업 등 노동운동에 대한 강경 대처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가 감사원장 황찬현에게 지시한 것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공공부문·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부조리, 공직 기강 해이를 확실하게 바로잡으라.” 한 달 전 경제부총리 현오석도 공기업 구조조정을 예고하며 ‘공공부문의 파티는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또 예산안 통과 등에서 국회에서의 여야 합의 처리라는 일각의 기대를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이미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을 단독 처리했고, 날치기를 어렵게 해 놓은 국회선진화법을 흠집내기 시작했다.
교체된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팀이 또다시 1백만 건이 넘는 트윗을 공개하고, 천주교 사제들 일부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또 한 번 반동의 기치를 세운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날로 악화되는 경제·안보 상황에 대한 우익의 신경질적 인식이 있다. 국가 재정 위기가 심화되고 있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중국과 미·일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어도 문제로 한국 지배자들도 당사자가 되면서 군비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우익을 극도로 예민하고 참을성 없는 상태로 만든다. 계급 지배 질서가 손상되지 않도록 반대자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나오는 까닭이다.
냉전 초기와 ‘테러와의 전쟁’ 같은 대결적 대외 정책기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국내 억압을 강화했던 것이나, 1998~99년 경제 공황 속에서 오히려 김대중 정부가 국가보안법 탄압과 노동 탄압을 강화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온갖 반민주 퇴행과 복지·경제민주화 공약 파기, 국가기관 대선개입 폭로 속에서도 우리 편의 저항이 시원찮았던 것도 박근혜가 다시 채찍을 쥐는 데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분노와 행동으로 폭발하지 않은 것은 ‘올해 국회 법안 처리 0건’에서 보듯 의도치 않게 개악 드라이브가 지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조바심을 내며 우익적 공세의 고삐를 쥐는 게 이 정부에게도 도박인 이유다.
이런 역설과 모순 속에서도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것은, 저들이 말하는 ‘국민적 여론’이 바로 자본가들의 여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은 정부와 여당이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등에 강경하고 신경질적으로 나올 것이다. 각종 개악을 연말 정기국회에서 밀어붙이려 할 수도 있다.
노동운동이 위축되지 않고 정부의 공세에 단호한 의지와 전투적 태세로 맞서며 불만의 초점 구실을 한다면,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진보운동가들은 당면한 노동자 투쟁들을 적극 지지하며 노동자 연대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