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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경제 위기:
세계경제는 여전히 지뢰밭을 걷고 있다

연초부터 신흥국의 경제 불안정이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1월 중 아르헨티나의 페소화 가치는 18.7퍼센트나 떨어졌다. 최근 1년간은 38퍼센트나 하락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번 위기가 외채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페소화 폭락은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지면서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2백82억 7천만 달러로 지난 2006년 10월 이래 가장 적다.

페소화 급락 때문에 빚어진 살인적인 물가 인상에 많은 사람들이 시름하고 있다. 정부는 생필품 가격 동결 조처를 취했지만, 1월 하순 단 열흘 동안 쇠고기 가격은 20퍼센트, 의약품 가격은 50퍼센트 급등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공식 인플레이션율은 10.9퍼센트이지만, 생필품 가격 등 민간부문 인플레이션은 무려 28.3퍼센트에 이른다.[아르헨티나의 좌파에 대해서는 관련 기사인 "아르헨티나 혁명적 좌파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보시오.]

위기는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경제 분석 기관 ‘이머징 포트폴리오펀드 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까지 신흥국 증시에서 모두 1백22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1월 마지막 주 이탈 규모는 2011년 8월 이후 주간 기준으로 최대 규모였다. 외화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터키는 기준금리를 4.5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무려 두 배 이상으로 인상했고, 인도·브라질 등도 금리를 인상했다.

신흥국 경제 위기는 극심한 물가 인상을 낳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미진

그러나 1월 말 미국이 월 7백5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를 6백50억 달러로 줄이자 금융 불안은 동유럽과 선진국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헝가리·러시아·폴란드·체코 등의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고, 캐나다 달러화와 노르웨이 크로네화의 가치도 수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월 미국·영국·유럽·일본의 4대 증시가 동시 하락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 증시가 2010년 이후 최악의 1월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배경

이번 위기는 신흥국에서 발생했지만 그 뿌리는 신흥국에 있지 않다. 경제 규모가 1, 2위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 상황이 그 배경에 있다.

2008년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 이후에도 중국은 GDP가 매년 9~10퍼센트씩 성장하며 세계경제의 엔진 구실을 해 왔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성장률은 2012년, 2013년 7퍼센트대로 둔화했다. 그리고 중국 경제는 막대한 ‘그림자 금융’의 부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는 동안에는 중국에 1차 자원을 수출하는 여러 신흥국들이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돈들이 이런 신흥국들로 몰려들며 거품이 형성됐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자, 신흥국으로 몰려든 자금이 빠지며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1월에 발표된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반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이는 신흥국 통화가치 급락의 도화선이 됐다. 1월 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위기는 더 심화됐다.

많은 경제 평론가들이 2014년에는 미국의 경제 회복이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회복은 아직 중국의 실물 경제 성장 둔화를 만회할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미국 경제가 회복한다는 보도가 많았지만 2013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1.9퍼센트로 2012년의 2.8퍼센트보다 둔화한 것이었다.

2013년 말 미국의 실업률은 6.7퍼센트를 기록해 5년 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 아예 구직을 포기한 장기 실업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 활동에서 제외된 인구는 2009년 8천1백만 명에서 지난해 12월 9천2백만 명으로 늘었다.

특히, 2013년에 JP모건 경제학자들이 낸 세계 기업 수익성에 관한 연구를 보면,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은 지난 3년여간 정체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율도 경제 위기 전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했지만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제공된 값싼 자금은 실물 투자가 아니라 투기로 흘러 들어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주택담보대출채권(MBS)을 직접 사들이는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의 결과 최근에는 부동산 거품이 다시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2013년 11월 미국의 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13.7퍼센트 상승하며 8년 내 최대 폭을 기록했다.

이렇게 거품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축소하고 있고 이것이 신흥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전망

이번 사태가 1980년대 초반이나 1997년처럼 신흥국의 도미노 외채 위기로 이어질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약 외환위기로 이어진다면 파급효과는 그때보다 더욱 클 것이다. 신흥국의 경제적 비중이 전보다 더 커졌고, 이번 신흥국 위기는 2008년 이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자본주의 핵심 국가들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심각한 외채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신흥국 위기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 만성적으로 재발하며 불안정하게, 때에 따라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신흥국 경제 위기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미국 경제의 기반도 잠식할 것이다.

연초에 많은 경제평론가들이 올해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는 해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 신흥국 위기는 세계경제가 여전히 지뢰밭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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