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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정상회담:
동아시아 불안정과 모순을 보여 준 회담

3월 25일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오바마 정부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와 4월 오바마의 한일 순방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정부에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는 압력을 강하게 가했다. 미국이 자신들의 패권 유지 전략인 “아시아 재균형(아시아 귀환)” 전략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고 강화하는 게 매우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오바마 정부는 대외정책에서 커다란 딜레마에 처해 있다. 오바마는 중국을 견제하려고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진해 왔지만, 중동·동유럽 등지에도 상당한 역량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 적자로 병력과 군비 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에 말이다.

중국 포위에 혈안이 된 오바마에게 한국 민중이 일본 정부 우경화에 반발하는 것은 자신의 전략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이다.

따라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일본·한국 등의 동맹국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한일 관계

그런데 2012년 한일 군사협정 논의가 체결 직전에 중단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껄끄러워지자 미국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이를 우려해 왔다.

얼마 전부터 오바마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한일 관계가 소원한 것이 미국이 패권 유지 전략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해 왔다. 3월 4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니얼 러셀은 한미 동맹, 미일 동맹, 한·미·일 3자 협력 강화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누구도 역사 문제의 부담으로 인해 우리가 안전한 미래를 건설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며 한국과 일본을 압박했다.

지난 2월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도 박근혜한테 과거사에 연연하지 말고 시급히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이때 케리가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로 든 것이 바로 “북한 위협”이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가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한 것은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과 대북 압박에 힘을 실어 준 것이었다. 그래서 3월 11일 워싱턴을 방문한 합참의장 최윤희가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한·미·일 3국 안보협력” 및 “일본과 안보협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3월 25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는 북한 “위협”론을 명분으로 “합동 군사 훈련이나 미사일 방어 체제(MD) 등을 포함해 외교적·군사적 협력을 심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처”를 논의하자고 했다. 그리고 3국 협력의 일환으로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와 “한·미·일 안보토의(DTT)”를 열자고 제안했다.

물론 한·미·일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모이는 게 북한과의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바마가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북한 비핵화의 의지를 갖고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한이 3국을 이간질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얘기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최근 일본과 북한의 대화가 재개되는 것 등을 의식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대북 관계에서 자신들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하다.

한·미·일 안보토의(DTT)도 문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DTT가 2009년에 창설돼 비밀리에 유지되다가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 문서를 폭로하면서 그 실체가 알려졌다고 지적했다. 이제 이런 3자 국방 회담을 공개적으로 연다는 것인데, 여기서 MD를 고리로 삼아 대중국 포위를 위한 군사 협력 과제들이 논의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아베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해석 개헌”의 좋은 명분을 얻으려 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MD를 위해서라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아베 정부는 다시 과거사 왜곡에 나섰고, 이 때문에 한국 내 여론은 다시 격앙됐다. 이런 점을 봐도 앞으로 오바마가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을 규합하고 자신의 전략을 관철하려면, 여러 책략을 계속 동원해야 할 것이다.

미사일 발사

아무튼, 미국·일본과 중국의 제국주의 간 경쟁이 커지는 이때, 박근혜가 미국의 대외 정책에 협력하는 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더 불안정해지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한·미·일 동맹 구축이 진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공식 발표 전에 이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일 정상회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박근혜는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한중 정상회담을 했지만, 이것이 한·미·일 동맹 구축에 관한 중국의 경계를 풀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 견제를 위한 대북 압박과 한·미·일 3자 협력은 북한을 엄청나게 자극하고 있다. 북한은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 시각에 맞춰 노동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번 미사일 발사가 정상회담을 겨냥해 북한이 보낸 메시지라는 것은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다.

북한의 ‘메시지’에 미국은 이 미사일 발사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넘기는 것으로 답했다. 미국은 적어도 한일 군사협력 강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미일 신가이드라인 재개정 등 한·미·일 동맹 구축 과정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기 전까지는, 북한과 공식 대화 테이블에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 전개는 결국 한반도에 긴장의 먹구름을 불러올 수 있다. 박근혜가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경협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한 것이 이런 우려를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한·미·일의 대북 군사 압박이 강화되면, 북한이 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하거나 4차 핵실험을 하는 등 예기치 않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