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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시체가 돼 돌아오는 죽음의 현장을 바꿔야”

죽음의 현장을 바꾸기 위해 건설 노동자들이 나섰다 6월 27일 오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2013 건설 노동자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 ⓒ이미진

7월 22일 전국의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추고 상경 노숙 투쟁에 돌입한다.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을 통해 죽음의 현장을 안전한 건설현장으로 바꾸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수백 명의 목숨을 끌어안고 가라앉은 세월호를 보면서 유족들이 느꼈을 안타까움과 비통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건설현장 안전사고로 매년 7백 명에 이르는 동료를 잃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노동자 한 명이 산재로 사망하면 기업이 벌금을 7억 9천만 원 내야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해도 벌금 50만 원만 내면 된다. 심지어 건설회사가 규정된 안전조처를 형식적으로 갖추기만 했으면 아예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한 건설 노동자는 “저들[기업과 정부]은 안전모만 씌워 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안전조처만으로는 사고를 줄일 수 없다. 대형 건설회사는 중소형 건설회사에 견줘 상대적으로 형식적인 안전조처를 ‘철저’하게 해 놓지만,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대우건설(2년 연속 1위), 롯데건설,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SK건설 등 대형 건설회사들이 버젓이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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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들은 사고 시 벌금을 내는 것이 더 ‘값싼’ 지출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많은 돈을 쓰려 하지 않는다.

“건설사들이 10년 이상 된 기계장비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본에서 사용하지 않는 노후된 기계장비를 구입해 사용하는 것은 현장사고, 인명사고와 직결됩니다. 사측은 비용 때문에 노후된 장비나 무인 크레인을 사용하려고 합니다.”(대전 타워크레인 노동자)

“직접활선작업을 폐지해야 해요. 전기를 껐다가 다시 켜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직접 만지며 작업해야 하는데 이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목숨을 담보로 비용 절감을 하려는 거죠.”(전기원 노동자)

“지역의 대규모 공장시설 중엔 노후한 시설들이 많은데, 교체나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스폭발 같은 사고가 자주 일어나요. 그런데 발전소, 공기업단지에 구급 의료시설도 없고, 다쳐도 외관상 두드러지지 않으면 외면하는 일이 흔합니다.”(충남 플랜트건설 노동자)

현장의 건설안전관리자는 계약직으로 채용되는데, 재계약 문제 때문에 사측이 안전 관련 비용을 줄이거나 작업 속도를 늘리려고 해도 적극적으로 문제 삼지 못한다. 이중에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일을 조정해 주는 신호수 노동자들은 일용직인데, 그러다 보니 현장에 대해 잘 몰라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반이 약하고 위험한 곳에 일을 배치해 일을 하다 사고가 나는 거예요. 건설기능인법에 따라 전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이런 일을 맡도록 하고,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건설기계노동자)

건설 노동자들의 요구는 지역주민들의 안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미 불산사고가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안전을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정부와 기업들은 계속 외면하고 있다. ‘산재사망 처벌 및 원청 책임강화’를 위한 법안(기업살인법)은 몇 년째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다.

고용노동부는 6월 29일 언론을 향해 덤프트럭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 날 건설 노동자들이 파업요구안을 들고 방문하자 건설기계노동자에 대한 산재 전면 적용과 관련해 “기업의 이윤 때문에 법 개정이 어렵다”며 하루 만에 스스로 말을 주워담았다. 박근혜 정부와 기업들이 세월호 국면 때문에 ‘안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늉을 할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건설 노동자들은 “소나기는 잠시 피하면 그만”이라는 정부와 기업들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건설산업연맹 이용대 위원장은 “아침에 출근하러 나갔다가 저녁에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 죽음의 건설현장을 이번에는 기필코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7월 22일 파업을 하고 상경해 2박 3일간 노숙투쟁을 벌이고, 24일 세월호 1백일 집회에도 함께 참가하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