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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주 교수에 대한 비판:
‘기업 경쟁력’이 고용을 보장하는가?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가 ‘현대차 노사관계의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발행한 책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노사관계 변화 없이 지속적인 성장과 고용 안정, 고임금은 불가능하다”며 “고용 안정과 경쟁력 강화를 주고받는 ‘노사 상생’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노동자들이 자신의 사용자와 손 잡고 생산성을 높일 때, 기업도 살고 노동자도 정리해고와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온건 개혁주의의 발로다. 게다가 기업 경쟁력이라는 비젼을 추구하다 보면, 노동조건도 고용도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이 파산하고 공장을 폐쇄한 것은 노동자들이 일을 덜 해서도, 생산성이 낮아서도 아니다. 미친 듯이 이윤을 위해 질주하는 자본주의 시장 경쟁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세계적 시장 경쟁을 위해 생산성 향상을 강요 받는 노동자들. ⓒ이윤선

그렇다면 자동차 산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만약 박태주 교수가 제시하듯 현대차 노동자들이 노동유연화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키면, 정몽구는 지난해 생긴 약간의 수익성 하락을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거듭된 양보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에는 현대차와 경쟁하는 다른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몽구는 또 수익률 하락의 압박을 받을 것이고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그 대가를 떠넘기려 할 것이다.

폭스바겐 모델

박태주 교수가 노사 타협의 대표적 모델로 제시한 폭스바겐이 바로 이런 사례다. 폭스바겐 사측은 1990년대 초부터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끌어내 왔다. 노조는 1993년에 고용을 지키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기로 합의한 이래로 거듭 임금·근무체계 개악 등에 합의했다.

게다가 이런 ‘내적 유연성’의 확대는 노동자들의 고용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 2006년에는 본사 직원 1만 3천 명을 조기 퇴직시켰고, 2008년에는 1만6천여 명의 비정규직을 해고했다. 멕시코 공장 등 해외 공장에서도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따라서 끊임없는 시장 경쟁에 노동자들의 운명을 내맡기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노동자들 사이에 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기고 고용을 위협하는 사측에 맞서 투쟁하는 것, 이런 투쟁을 국제적으로 함께 벌이는 것이야말로 모두의 노동조건과 고용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박태주 교수가 제시하는 ‘경쟁력 강화’는 노동자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뜻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그가 3교대제 도입을 말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는 현행 ‘8+9 시간 근무제’를 ‘8+8+8시간 근무제’로 바꿔, 개별 노동시간은 줄이되 밤샘 근무 담당조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심야노동이 되살아날 것이다. 더구나 밤샘 근무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 될 개연성도 크다. 그런데도 박태주 교수가 “24시간 경제에서 야간노동이 불가피하다”고 한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더구나 해외 공장들에서 3교대제를 도입해 생산량을 늘린 정몽구는 국내 공장에서도 실제 이를 도입하려 할 개연성이 있다.

한편, 박태주 교수가 말하는 ‘노사 간 담합 정치’도 문제가 있다. 예컨대, 그는 현대차 정규직의 고임금이 “다른 노동자의 희생 위에 쌓아 올린” 노사 간 담합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아주 간단한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리지 않는다면, 그 혜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것인가? 답은 ‘아니오’다. 실제로 정규직의 실질임금이 하락한 2009년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도 하락했다.

오히려 정규직의 임금이 인상될 때 비정규직의 임금도 같이 올라가는 패턴이다. 게다가 정규직의 임금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자극할 수 있다.

물론,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고용을 용인하고 연대 투쟁을 방기해 온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이는 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이해관계의 반영이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관료주의에 따른 문제다. 노조 지도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끌어올릴 수 있을 때조차 이를 방기하곤 했고, 사내하청과 촉탁직 고용을 용인하는 등의 잘못된 합의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박태주 교수가 이런 관료주의 문제를 노조 간부들과 사측의 담합으로 설명한 것은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차 노조의 임금 인상 파업조차 노조 간부들과 사측이 담합한 결과라고 했다.

“노사 담합의 정치”

사실 현대차 파업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요식 행위”라는 박 교수의 주장은 지독한 종파주의를 드러낸다. 그의 온건한 정치가 노동자 파업에 대한 냉소로 나타난 듯하다. 사측도 “무파업을 원치 않는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도 맞지 않다.

박 교수의 주장과 달리, 현대차의 임금 인상은 명백한 투쟁의 성과다. 그는 파업을 하든 안 하든 임금 인상률은 제자리였다고 말하지만, 노조가 싸우지 않은 2009년에는 현대차가 최고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도 아예 임금이 동결되기까지 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1998년에 38일간 공장 점거파업을 벌여 대량해고를 막았고, 2012년에는 3년의 무쟁의를 깨고 파업에 나서 밤샘 노동을 폐지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물론,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을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하고 관료주의적 타협을 해 온 것은 문제다. 이 때문에 투쟁은 더 전진하지 못하고 성과를 내는데도 제약이 따르곤 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기층 조합원들과는 완전히 떨어져 허공에 떠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설사 그들이 투쟁에 미온적이라 할지라도 조합원들의 열망과 투지가 강력하면 그에 반응을 할 수 있다. 이경훈 집행부하에서도 좌파 활동가들은 통상임금 확대 등의 조합원들의 열망과 투지를 최대한 끌어내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하도록 압박을 가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