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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교육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우파들은 이미 “법적 투쟁 불사” 운운하며 전면전을 예고한 바 있고, 진보운동 진영은 진보 교육감들이 예상보다 적게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이는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논리가 현실에서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교육은 사회와는 무관한 ‘외딴 섬’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 투영돼 나타난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교육은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학교 교육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즉 계급을 재생산하는 구실을 한다. 자본가들과 국가 관료들은 교육이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보고 자본주의의 필요에 맞춰 교육 정책을 입안해 왔다. 산업혁명기 영국을 비롯해 자본주의가 확장되던 시기에는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주의적 규율 등이 잘 교육된 노동자들이 필요했고, 교육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 산업화 이후 학교 교육이 급속하게 확대됐다. 중학교 입시제도가 폐지되고 고교평준화 등이 실시되며 고교진학률도 급격히 높아졌다.

그러나 계속 변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황에 따라 이후 교육도 계속 재편돼 왔다. 신자유주의는 교육에 시장 논리를 확대했다.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학교 간, 학생 간 경쟁을 강화하고 재정 지원에도 차등을 뒀다. 자본주의 체제를 운영할 소수에게 교육의 혜택을 몰아 주는 것은 투자이지만, 다수의 노동계급 자녀들에게 최소한의 필요 이상으로 지원하는 것은 낭비라고 본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부터 국가 관료와 자본가들은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도 기술을 중심으로 한 산업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고급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의 ‘5·31교육개혁’은 이런 필요성의 반영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공교육에 시장경제의 논리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후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이 급속하게 추진됐다. 대학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대학 간 경쟁과 서열화를 강화하고 고급 기술·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분야나 기업의 필요에 부합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는 재정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될 놈만 밀어 준다”는 식이다. 동시에, 학교 선택권 확대 운운하며 고교 평준화를 공격했다.

김대중 정부는 서울대 공대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BK21 정책을 추진했고, 노무현 정부 역시 한미FTA 등 교육 시장화 정책을 추진하고 자립형 사립고(오늘날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전신)를 설립했다.

2007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매우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교육 재편을 시도했다. ‘대학 퇴출’을 핵심으로 하는 대학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자사고와 특목고를 확대했다. 국제중 설립과 일제고사 부활이 이뤄진 것도 이 때다.

박근혜 정부도 대학입학 정원 16만 명을 감축하는 ‘대학 구조개혁 추진 계획’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등 교육 복지 공약을 사실상 폐기하고 자사고, 특목고, 국제중 등 부자들이 선호하는 ‘특권 교육’을 더욱 강화했다. ‘투자활성화대책’이라며 국제학교 영리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

입시 지옥

사회 전반에 시장 경쟁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대학 서열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중등교육에서도 소수를 위한 특권 교육이 더욱 강화됐다. 역대 정부들이 온갖 ‘교육개혁’ 정책을 쏟아냈지만, 사교육비는 줄지 않고 학생들이 학교를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곳으로 여기는 현실이 바뀌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특권학교의 확대는 학생들을 더 어린 나이부터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 국제중을 목표로 초등학생들도 입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자사고 특목고 등 특권학교들은 서열 체제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서열화 정책의 수혜자는 소수 부유층이다. 특목고와 자사고의 연간 교육비는 1천만 ~ 2천만 원에 이른다. 박근혜가 추진하는 국제고는 5천만 원에 이를 전망이다. 단순히 돈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입시 전쟁에서 시간과 관심을 쏟으며 온갖 입시 정보를 얻고 거기에 맞춰 자녀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소수의 부유층에나 가능한 일이다.

반면, 대부분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일반 고등학교의 사정은 계속 열악해지고 있다.

특목고 학생들이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진학하는 비율은 12퍼센트인데, 일반고 학생들은 1.4퍼센트다.

‘명문고-명문대’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서 다수인 노동계급 가정의 자녀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혁신학교도 입시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국 혁신학교 5백78곳 중 고등학교는 60곳에 불과하다. 혁신교육지구 내 고등학생들의 혁신학교 만족도는 39.4퍼센트로 초등학교(75.4퍼센트)나 중학교(49.8퍼센트)에 견줘 낮게 나타났다.(한국외국어대 산학협력단)

자본주의적 상식

자본주의 체제에서 교육은 이데올로기적 구실도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교육은 자본주의적 상식을 습득하도록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위계질서와 권력 구조를 익힌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는 경험의 대부분은 협동보다는 경쟁이다. 학생들은 경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끊임없는 시험제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시험제도는 누구나 똑같은 시험을 보고 공평한 기회를 가지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보낸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학생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거나 타고난 머리가 나쁜 것처럼 여겨진다. 경쟁은 객관적이고 공평하므로 소수가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그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더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난과 차별, 소외는 학생들의 성취 능력에 영향을 준다.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구 출신 학생 비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가 1~3위 구(강남·서초·송파) 학생들의 서울대 입학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강남구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률은 강북구 학생들의 21배에 이른다.

2010년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부모의 월 소득이 2백만 원을 밑도는 학생의 국·영·수 과목 평균 성적은 196.94점이었지만 부모가 5백1만 원 이상을 버는 학생의 평균 성적은 221.28점이었다. 2013년에는 그 격차가 25.69점으로 더 벌어졌다. 이런 차이는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서울대 김경근 교수)

교육에서의 경쟁 강화는 서열화의 강화이기도 한 셈이다. 이는 계급 차별을 더욱 분명히 한다.

또한 지배계급은 일정 수준의 노동력 확보를 원하지만 교육을 통해 체제의 모순을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 방법을 배우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교육을 철저히 국가 통제 하에 두려고 한다. 박근혜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고 전교조 탄압을 강화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 소위 돈이 되고 입시에 필요한 학문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개성과 창의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원한다. 시험이나 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등급 매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교육 재정 부담을 늘리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것이자, 우선 순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더 나은 교육을 바라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화에도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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