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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교육감, 자사고 폐지 공약 어기려는가

서울시교육청이 9월 4일에 자사고 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 소재 25개 자사고 중 올해 재지정 심사 대상 학교는 14곳이다. 자사고 폐지는 6·4 교육감 선거 때 조희연 교육감의 제1 공약이었다. 또, 전국 진보 교육감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기도 했다.

아직 공식 발표 전이지만,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를 전면 지정 취소할 것 같지는 않다.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 압력과 반대 압력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다 부분 개혁에 그칠 공산이 크다.

사실, 자사고 폐지는 중요하지만 비교적 작은 교육 개혁이기도 하다. 설령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를 전면 폐지한다고 해서 중등교육의 불평등과 서열 체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듯이, 특목고(외고나 과학고 등)가 고교 서열 경쟁에서 최선두에 있고, 무엇보다 대학 서열 체제와 그에 따른 입시 경쟁이 중등교육을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그런데도 조 교육감은 작은 개혁에조차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사고 부분 취소는 역설적으로 자사고의 특권적 지위를 더 강화해 줄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자사고가 살아남아 특목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사고 부분 취소는 조희연 교육감이 약속한 ‘일반고 전성시대’를 요원한 과제로 남겨둘 개연성이 다분하다.

물론 보수 진영은 이런 부분 개혁에조차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자사고 재단들과 학부모들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자사고는 시행 5년 만에 입시 명문고로 자리잡았다. 2013학년도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자를 보면 2∼4위가 자사고들이었다. 교육부도 자사고를 옹호한다. 교육부는 조희연 교육감의 자사고 재평가에 대해 “재량권 남용”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런 보수적 반발은 진작에 예견된 바이다. 무릇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자사고 폐지도 보수적 반발을 부를 것임은 자명했다. 그런데도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설득과 유인”을 통해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물질적·계급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를 ‘부드럽게’ 개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상적이다.

실망스럽게도, 조 교육감은 ‘부드러운’ 개혁을 선택한 듯하다. “설득과 유인”을 통해 자사고를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혁 목표를 향해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개혁에서 멀어지는 길이 될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진보 교육감의 이런 동요와 일관성 결여는 개혁의 동력인 노동자 계급 지지자들을 실망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 세력은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7월 하순에 조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를 1년 유예하겠다고 발표하자 오히려 자사고 재단과 학부모들이 더 거세게 들고일어났다.

점거 농성

따라서 진정한 개혁은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 교육감과는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개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특권학교 폐지-일반학교 살리기 서울공대위’(서울공대위)가 교육청에서 점거 농성하며 조 교육감에게 자사고 폐지 공약을 철저하게 이행하라고 촉구한 것은 필요했다. 서울공대위는 8월 19일부터 8일 동안 점거 농성을 했다. 조희연발(發) ‘위로부터의 개혁’을 기다리다가는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점거 농성이 비록 자사고 전면 취소라는 가시적 성과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정치적 교훈을 남겼다 — 진보 교육감이 동요하고 그 개혁이 불철저할 때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은 진보 교육감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벌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진보 교육감은 “견제와 협력”의 대상일까?

조희연 교육감이 보여 준 동요와 한결같지 못함은 전교조와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관되게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동요하고 오락가락하는 진보 교육감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것은 비단 서울만의 특수한 경우는 아니다. 더 일반으로 진보 교육감 시대에 교육 개혁을 이룰 수단과 방법의 문제이다.

가장 흔한 생각 중 하나는 전교조가 교육청 기구에 직접 참여해 보수적 관료들을 견제하고 진보적 교육 정책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청은 노동자 계급에 유리하게 교육을 바꾸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다. 교육청은 자본주의적 국가 기구이다. 진보 교육감이 교육청의 수장으로 있더라도 이런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청 안에서 진보적 교육 정책을 집행하겠다는 본래 목표는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국가 관료들이 포진해 있는 교육청은 본질적으로 교육 개혁에 적대적이고, 개혁 운동가들은 그런 환경에 타협적이 돼야 한다는 압력을 상시적으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혁 운동가들이 교육청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에 사로잡히게 된다. 따라서 ‘교육청 안으로 들어가 교육청을 바꾸기’는 전교조가 선택할 수단이 못 된다.

그보다는 국가 기구 밖에서 독립노조로서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역사적 경험을 봐도, 개혁 입법은 국가(와 의회) 밖 대중 투쟁의 압력이 있을 때 성취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진보 교육감은 “견제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압박 대상이 돼야 한다.

즉, 진보 교육감이 지배계급과 우파의 반동적 공격을 받을 때는 방어를 하되, 진보 교육감과는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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