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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디플레이션의 위협과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

유럽 경제의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물가가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유로 지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퍼센트 증가에 그쳤다. 이는 1961년 이후 (2009년에 0.4퍼센트를 기록했던 때를 제외하면) 50여 년 만에 가장 낮다.

올해 들어 물가 상승률은 더 낮아졌다. 8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3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미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 유럽의 경제 성장은 독일과 같은 중심부 국가들이 이끌어가는 형국인데, 지난해 독일의 실질 임금은 하락했고, 이를 볼 때 향후 물가가 더욱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유는 디플레이션 시기에 경제 위기의 고통이 대체로 더욱 혹독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노동자들은 오르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해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그에 비해 디플레이션 때는 버티지 못한 기업들의 파산이 늘고 노동자 해고가 늘어날 수 있다.

흔히 가계의 소비가 위축되고, 세수가 감소하는 데 반해 지출은 증가해, 정부 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이는 지난 20여 년간 일본이 겪고 있는 일이다. 일본은 1991년 거품 붕괴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저투자, 저고용, 저소비의 늪에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2012년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1997년 명목 GDP의 91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의 정부 부채가 GDP 대비 2백30퍼센트에 달하는 것도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졌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뿐 아니라 미국이나 심지어 중국도 일본식 장기 침체로 빠져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조차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식 장기 침체

실제로, 일본이 장기 침체로 빠져든 배경과 현재 여러 나라 경제들이 처한 상황에는 공통점이 많다. 1986~1989년에 일본의 부동산과 주식이 두 배로 올랐다. 이런 거품은 1970년대 이후 계속된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경향 속에서 형성됐다. 일본의 장기 침체는 이 부동산 투기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했다. 최근 중국 경제도 제조업·민간소비 등 실물경제 지표가 하락하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떨어지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중국의 누적 주택 판매는 전년 대비 10.9퍼센트 하락했다.

경제 정책 제안자들은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양적 완화가 경기 추락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상황은 양적 완화의 모순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경기가 느리게나마 회복하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거품이 커졌다. 지난 몇 년간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대출해 주는 서브프라임 자동차 담보 대출이 급증하고, 주식 담보대출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어나는 등 금융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이윤율이 계속 낮은 상황에서 양적완화를 해 쏟아부은 돈들이 새로운 부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양적완화 정책을 10월에 종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실물 경제의 회복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저금리 정책은 당분간 지속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미국 주식은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만 언제 거품이 다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예일대 교수 로버트 실러도 미국 주가가 과거 금융위기 직전 수준에 이르렀다며 거품 붕괴 가능성을 경고했고, 조지 소로스 등 월가의 큰손들은 조만간 거품이 터질 수 있다며 주식 급락에 대비한 금융 상품들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가 시작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부실한 금융 자산과 부채 문제는 더욱 커졌고, 낮은 이윤율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중국과 신흥공업국 경제들의 불안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종료는 세계경제에 중요한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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