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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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부터 시작한 홍콩 점거 운동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10월 17일 현재 3주째 지속되고 있다. 대규모 시위가 없을 때도 1천 명 이상이 홍콩 행정청이 있는 애드미럴티의 점거에 참가하고 있다. 또한 코즈웨이베이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점거가 유지되고 있다.
홍콩 당국은 자유·공정 선거를 요구하는 운동에 폭압적으로 대응했다. 9월 28일 최루탄을 동원한 홍콩 경찰의 강제 진압 시도는 홍콩 안팎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홍콩 경찰은 잠시 물러나야 했다.
10월 1일 국경절 연휴가 끝나면서 한때 점거 대열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10월 3일부터 친중 단체들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몽콕, 코즈웨이베이의 점거 현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난폭한 공격으로 많은 점거 참가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폭력배들은 고의로 시위 참가 여성들을 성추행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여성 시위 참가자들이 심한 성추행을 당한 사례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홍콩 경찰들은 이런 폭력을 방관했다. 이 때문에 홍콩 시민들은 경찰이 폭력배들과 한통속이라고 의심한다. 최근 홍콩 경찰은 점거 현장의 바리케이드를 강제 철거하면서 점거 참가자들을 폭행하거나 강제 연행하고 있다. 이런 행태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불씨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학생과 노동자들은 경찰과 폭력배들의 폭력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있다. 10월 3일 친중 단체들의 습격이 알려지자, 바로 그 주말에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다시 투쟁의 불씨를 되살려 냈다. 그 후 홍콩 당국이 학생 대표자들과의 대화를 중단하자, 10월 10일 10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중국 정부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미국이 배후 조종하는 “색깔 혁명”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홍콩 시위를 “동란(動亂)”이라 부르며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란”은 중국 정부가 1989년 톈안먼 항쟁을 비난할 때 쓴 용어였다. 홍콩 현지의 친중 세력들은 시위가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한다.
중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그만큼 홍콩 민주화 운동의 파장을 우려해서다. 중국의 경기가 최근에 둔화하면서 그동안 중국 내부에 쌓였던 모순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티베트·신장 등지의 소수민족 저항, 토지 강제 수용에 맞서는 농민, 환경오염에 항의하는 도시 주민의 소요 등 중국에서는 대규모 저항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파업과 저항이 점차 발전하고 있다. 중국의 노동자 지원 단체들은 지난해에 견줘 올해 파업이 2배가량으로 증가했다고 보고한다. 투쟁 경험이 쌓이면서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독립 노조를 건설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파업이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은 바로 홍콩에 인접한 광둥성이다.
이 때문에 중국 지배자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 ‘내부의 위협’을 어떻게 다룰지 고심하고 있다. 국방 예산보다 치안 관련 예산에 더 많은 돈을 투입할 정도다.
만약 홍콩의 저항이 커져서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주면, 중국 체제 전체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하나의 불씨(홍콩)가 광야(중국)를 불사를 수 있다’고 염려하는 것이다. [이 말은 중국 공산당 군사지도자 주더(朱德: 1886~1976)가 한 말이다. ― 〈노동자 연대〉 편집자]
중국 정부를 물러서게 하려면, 홍콩 민주화 운동은 더 전진해야 한다.
지도
많은 사람들이 홍콩의 저항을 두고 ‘지도가 없는 자발적인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보여 주고 있는 자발성은 놀라운 것이고 훌륭하다. 대중의 자발성은 운동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자, 미국 배후설 운운하는 중국 당국의 중상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발성이 충만한 운동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거기에도 의식적 지도의 요소가 있다. 지금 운동 안에서는 이 운동을 이끌려고 여러 정치 세력과 개인들이 개입하고 있다. 이런 개입 노력의 결과로 운동의 향방이 크게 바뀔 수 있다.
주요 야당 정치인들은 이 운동에 지지를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홍콩 당국과의 타협을 촉구하는 ‘중재자’ 구실도 하고 있다. 그리고 점거 현장에는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좌파 단체와 활동가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소수이지만 좌파와 이주노동자들을 혐오하는 우익들도 운동 안에서 영향력을 얻으려 한다.
애드미럴티 등지에서는 홍콩전상학생연회 같은 학생 단체들이 점거를 실질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학생 지도부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안팎의 타협 압력에 굴하지 않고 대체로 일관되게 행동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주되게 요구하지만 그럼에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저변에는 날로 커지는 사회 불평등에 관한 불만이 있다. 그래서 점거 현장을 찾는 학생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불만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아직까지 학생 지도부는 정치적 민주주의 요구에 노동계급의 경제적 요구를 결합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운동이 전진하고 중국 정부를 궁지로 몰려면, 노동계급의 단체행동과 집단적 동참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최근 홍콩에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연대한 선례들이 있다. 지난해 홍콩 항만 노동자들이 40일 동안 파업했을 때, 학생들이 강력한 지지를 제공했다. 그래서 항만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파업을 지지했던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에 연대했다.
미국이 배후 조종하는 “색깔 혁명”?
중국 정부는 미국이 이 운동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중국에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는 “색깔 혁명”을 일으키려고 미국이 운동 지도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을 흠집내고, 홍콩 주민을 중국의 다른 노동자들과 이간시키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일부 국제 좌파들(가령, 미셸 초서도프스키)은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
물론 민주화 운동의 온건파가 서구 자유민주주의에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 홍콩 내 문제에 관여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홍콩 민주화 운동이 미국 국무부 ‘작품’쯤으로 보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다.
운동 온건파 지도자들의 이데올로기만을 잣대로 운동의 성격을 평가한다면 한국의 1987년 6월항쟁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못 벗어났다는 식으로 폄훼될 것이다. 이런 식의 폄훼는 종파주의일 뿐이다.
홍콩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전통이 있다. 홍콩 시민들이 제한적으로나마 누리는 민주적 기본권들(언론·출판의 자유 등)은 모두 영국 식민 당국에 맞서서 쟁취한 자랑스런 성과물이다.
지금 홍콩 시민들이 중국 정부에 요구하는 보통선거권과 온전한 피선거권도 이미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제기된 요구다.
이번 점거 운동은 2011년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최루탄을 쏘는 홍콩 경찰을 향해 시위 참가자들이 양손을 들고 구호(“손 들어! 쏘지 마!”)를 외쳤는데, 이것은 바로 올해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일어난 흑인 항쟁의 상징이었다.
이런 저항을 두고 미국식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색깔 혁명”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큰 오해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참가자 다수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연대와 지지가 확산되는 것을 원한다. 실제로 많은 중국인들이 홍콩의 저항에 관심과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 공안(경찰) 당국은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혐의로 중국 다른 지역에서 벌써 40여 명을 구금했다고 한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갈등을 빚자, 일부 좌파들은 냉전 때의 낡은 ‘진영 논리’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중국 지배자들이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범스탈린주의 좌파의 ‘진영 논리’가 그럴 듯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은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 없다. 중국 사회는 국가가 시장경제에 강력하게 개입하는 종류의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
진영 논리의 영향을 받은 일부 좌파들은 과거에도 티베트·신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해방 운동과 서방 제국주의의 간섭 문제를 구별하지 않고 싸잡아 비난하곤 했다. 그들은 홍콩 시위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자본들의 경제적 경쟁과 국가들의 지정학적 경쟁이 결합되는 가장 최근 국면의 자본주의 체제이다. 이 시스템 속에서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제국주의적 국가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에 맞설 진정한 힘은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민족들의 저항에서 나온다. 오늘날 홍콩과 나머지 중국에서 벌어지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은 세계 제국주의 체제를 뒤흔들 국제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의 일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