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부채를 해결할 대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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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지고 있는 막대한 빚을 없애는 데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의 구제금융은 전혀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했을 때 국가 부채는 GDP의 1백20퍼센트였다. 그러나 지금은 1백77퍼센트에 이른다. 그리스 부채의 주인은 민간 투자자들에서 트로이카로 바뀌었지만, 그리스가 빚더미에 짓눌린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 정부는 여전히 피 말리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빚을 갚아야 하는 날짜가 계속 다가오고 있어서 추가 지원이 없으면 4월 초에 그리스 정부의 현금이 바닥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리스에서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자를 해고하고, 공기업을 팔아 넘기는 정책이 대안이라고 말해 왔다. 이 말이 헛소리라는 점은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유럽 지배자들이 그리스에 긴축 정책을 계속 강요하는 것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엄청난 타격을 받은 신자유주의를 다시 확립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크다. 유럽 지배자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으로 저항의 모델이 확대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자국 내에서 긴축 정책의 고삐를 더욱 죄기 위해 그리스를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
그래서 유럽연합과 협상을 통해서 긴축 정책을 끝내겠다는 시리자의 전술은 심각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시리자는 부채의 50퍼센트를 탕감받겠다고 공약했지만 유럽 지배자들의 강력한 압력 속에서 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구제금융과 긴축 정책은 4개월이 연장됐고 최근 시리자 정부는 부족한 국가재정을 메우려고 공공의료 재원과 지하철공사 재원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 노동계급을 위한 대안은 유럽 지배자들에게 매달리며 빚을 내서 빚을 갚는 구제금융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못 갚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긴축을 강요하는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이다.
사실 채무불이행(디폴트)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IMF의 조사를 보면, 최근 2백 년 동안 국가 부도는 2백57차례 벌어졌다. 해마다 평균 1건이 넘게 국가 부도가 있었다.
어떤 디폴트인가?
따라서 노동계급에게는 누가 주도하는, 어떤 디폴트인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 경제 회복의 대안으로 지배계급도 종종 디폴트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1998년에 러시아와 2001년에 아르헨티나가 각각 위기에 처했을 때 러시아와 아르헨티나 지배자들은 디폴트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주도한 디폴트는 노동계급에게 또 다른 고통으로 이어졌다.
지배자들은 채무 불이행과 화폐 평가절하로 자국의 경쟁력과 기업 수익성을 높이려 했다.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수입품 가격은 오를 것이므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를 통해 수익성 회복을 노리는 것이다. 일부 케인스주의자들도 인플레이션을 통한 실질임금 삭감을 수익성 회복의 대안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주도하는 디폴트가 경제를 회복하는 데 성공할지는 결정돼 있지 않다.
2001년 디폴트 직후에 아르헨티나의 GDP는 크게 추락했지만, 이후 7년간 1인당 실질 GDP는 해마다 7퍼센트씩 급성장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농산물 수출에서 큰 이득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1983년에 디폴트를 했을 때는 실질 GDP가 15퍼센트가량 떨어졌는데, 당시 세계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이후 10년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시리자 내 좌파 의원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가 제시하는 주장은 다소 약점이 있다. 라파비차스는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 은행 국유화, 경제 전반의 통제라는 상당히 급진적인 주장을 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그리스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회복시키자고 말해 왔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리스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로 경제가 회복되리라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리스 자본주의의 경쟁력 회복을 우선한다면, 그동안 악화한 노동계급의 삶을 개선한다는 목표는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경쟁력 회복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을 개선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부채 상환 중단, 유로존 탈퇴, 은행 국유화, 자본 통제 같은 정책은 지배자들이 자국 자본주의를 구할 대안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이런 정책을 주도하면 빚을 갚지 않아 생긴 자원을 노동계급의 삶을 개선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조처들을 실행하려면 기존의 정치·경제 권력과 대대적으로 충돌해야 할 것이다. 이런 투쟁은 은행들의 탐욕이 아니라 인간 필요를 우선순위에 두는 세계로 향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