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동시간 단축 요구안을 둘러싼 갈등:
지도부는 대의원대회 개최하고 양보안을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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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에서 내년 주야 8+8시간 교대제 도입의 조건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 지도부가 노동시간 단축의 조건으로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휴일과 노조 활동 시간을 축소하는 등의 양보안을 사측에 제시해 조합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8+8시간 교대제 도입은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다. 그동안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밤샘 장시간 근무(주야 10+10시간 교대제)를 강요하며 막대한 수익을 누려 왔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밤에는 잠 좀 자자’며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을 벌여 왔다. 이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이 속에서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들은 2012년에 과도기적으로 8+9시간 교대제를 따냈다. 그리고 내년부터 8+8시간 교대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그런데 지금 사측은 8+8시간 교대제가 도입돼도 기존 생산량을 유지해야 한다며, 노동조건을 후퇴시켜야 한다고 강변한다. 노조가 생산량을 유지해 주지 않으면 임금도 보전할 수 없다고 협박하면서 말이다. 생산성을 높여 손해를 만회하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기아차지부 지도부는 사측의 요구에 굴복해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노동조건 방어를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노동자들은 안 그래도 2012년 8+9시간 교대제 도입 당시 노동강도가 강해져 힘들어 하던 차였다.
이에 좌파 활동가들은 ‘현장공동투쟁’을 구성해 협상을 중단하고 양보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전체 대의원 4백66명 중 3분의 1 이상의 서명을 받아 양보안 폐기 등을 위한 임시대의원대회 개최안을 발의했다. 또, 지난달 28일부터 네 차례 본교섭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사측과 노조 지도부의 양보교섭 시도를 막았다.
양보교섭
몇 차례나 교섭이 좌절되자 사측은 6월 3일 관리자 3백여 명을 동원해 활동가을 폭행하며 대열을 밀어내고 교섭장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구급차에 실려 갔고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서둘러 합의안을 체결하고자 했던 노조 지도부도 사측의 만행을 막지 않았고, 활동가들에게 출입구가 가로막히자 도끼로 측면 유리문을 깨고 들어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당일 교섭은 결국 5분도 안 돼 결렬되고 말았다. 사측이 “한 치의 양보는커녕 이전보다 후퇴된 불성실한 안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노조 지도부가 처음부터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자 사측은 기가 살아 ‘우리는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다’고 배짱을 부린 것이다.
특히 당일 협상이 결렬된 데는 교섭장 앞과 현장에서 양보안 폐기를 주장하며 싸워 온 활동가들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조합원들을 희생양 삼는” 소수 행동이라는 지도부의 비난과 달리, 이들의 항의는 노동조건 후퇴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바람을 대변한 올바른 행동이었다.
실제로 ‘현장공동투쟁’이 최근 시작한 양보안 폐기, 임금·노동조건 후퇴 없는 8+8시간 교대제 도입, 대의원대회 개최 등을 요구하는 조합원 연서명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3일 교섭이 무산된 이후 기아차 화성공장의 지회 지도부는 이제 “노사공동위원회 협의는 의미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조합원들의 원성을 들어가며 협의를 강행했다”는 점도 시인했다.
그럼에도 양보안이 폐기된 것은 결코 아니다. 화성지회 지도부는 양보안이 문제라는 점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아차 전체를 포괄하는 지부 지도부는 사측에 “전향적 안을 제시하라”며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금 기아차지부 지도부는 양보안을 갖고 일단 잠정합의하고 나서 조합원 총투표로 의사를 묻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의 열망을 무시하고 수동화시키는 비민주적 태도다.
지도부는 더는 시간 끌지 말고 대의원들이 발의한 임시 대의원대회를 즉각 소집해야 한다. 대의원들은 지도부의 양보안을 완전히 폐기시켜야 한다.
특히 좌파 활동가들은 생산량 보전이 아니라 임금·노동조건 후퇴 없는 8+8시간 교대제 시행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며, 대의원대회에서 이 요구가 발의되고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분노가 살아 있을 때 요구를 바로잡고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