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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기는 ‘복지병’ 때문인가?

보수 언론과 시장주의 경제학자, 그리고 정부·여당은 그리스 위기가 과도한 복지와 연금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복지 확대를 바라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을 조금만 따져 봐도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그래서 여러 진보 학자들뿐 아니라 주류 언론에서도 반론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OXI(반대)를 호소하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포스터.

위기가 터지기 전 그리스의 사회복지 비용은 국내총생산의 20퍼센트를 조금 넘어, 유로존과 유럽연합에서는 중간 수준에 불과했다. 2011년 그리스의 노인 빈곤율은 23퍼센트로 미국(10퍼센트), 터키(15퍼센트)보다 높았다. 그러므로 과도한 노인 연금 때문에 국가가 부도났다고 볼 수 없다.

그리스 위기의 원인을 부패나 지하경제, 탈세 등에서 찾으려는 주장들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부유층의 부패와 탈세 등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지하경제는 GDP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박근혜가 밝힌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와 비슷하다. 한국을 비롯해 부패 문제로는 그리스에 뒤지지 않는 나라들도 수두룩하다.

그리스 위기는 200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세계경제 위기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는 세계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의 하나이다.

세계경제는 2008년 이후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1970년대 이후 실물경제의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비롯한 위기가 누적돼 터진 것이었다. 실물경제의 이윤율이 낮으니 자본가들이 투자를 충분히 하지 않아 경제 성장률이 둔화했고, 실물에 투자되지 않는 돈들이 금융 투기로 흘러들어 거품을 키웠다. 그러다가 부실해진 은행들이 파산하며 터진 것이 2008년 위기였다.

2008년 위기 때문에 파산한 은행과 기업들을 구제하느라 각국 정부는 공공재정을 투입했고 이 때문에 각국 정부 부채는 큰 폭으로 늘었다. 2007~13년 주요 국가들의 GDP 대비 국가 부채를 보면 일본이 1백80퍼센트에서 2백39.3퍼센트로, 미국은 75.7퍼센트에서 1백21.9퍼센트로, 영국은 50.1퍼센트에서 100.8퍼센트로 늘었다(OECD 통계). 그리스의 빚은 2007년 1백12.8퍼센트에서 2013년 1백79.2퍼센트로 늘었는데, 세계적인 추세가 취약 지역 그리스에서 더 증폭돼 나타난 것이다.

유로존

다른 선진 자본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경제도 1970년대에 급격한 이윤율 하락을 겪었다(아래 그래프). 이런 문제는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동참하면서 일시적으로 은폐됐다. 유로존 통합 이후 유럽연합의 자본이 대규모로 그리스에 유입됐다. 독일과 프랑스의 자본가들은 전보다 더 쉽게 그리스의 기업과 자산을 사들일 수 있었다. 유로존 통합을 통해 남부유럽 국가들이 빌릴 수 있는 금리가 독일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은행가들과 투자자들은 값싼 신용을 이용해 투기 거품을 일으켰다. 2000~08년에 그리스의 집값은 50퍼센트나 뛰었다.

그리스 이윤율 유럽위원회의 연간 거시경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가 계산한 것이다. / 자료 출처 마이클 로버츠

기업주 언론들은 이 과정에서 그리스 국민들이 흥청망청 즐겼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유로존으로 편입의 이득은 그리스 부자들에게 돌아갔다. 2000년대 초·중반 그리스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뤘지만 빈곤율도 높아졌다. 당시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지만 임금인상율은 그에 한참 못 미쳤다.

물론 유로존 통합의 가장 큰 혜택은 독일 같은 ‘핵심’ 국가의 지배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차입이 증가한 덕분에 소비가 늘어나자 독일의 수출 시장이 확대됐다. 독일 수출품의 3분의 2가 유로존으로 갔다. 게다가 독일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독일 밖의 다른 유럽으로 이전할 수 있다고 협박하며 독일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다. 반면, 그리스 등 일부 나라들은 통화가치가 올라서 국제수지 적자가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닥쳤고 은행과 기업들은 부실을 지탱하지 못하고 급격히 위기로 빠져들었다. 그리스 정부는 민간 기업과 은행을 구제하려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빚이 크게 늘었다. 그리스 부채 3천억 유로 가운데 6백억 유로가 은행과 자본가들을 위한 경기부양책에 투입됐다. 그리스가 재정 위기에 빠져든 상황에서 금융가들의 투기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통합돼 있는 현실은 재정 위기를 헤쳐가는 데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이 하고 있는 것처럼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돈을 풀어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수도(수출경쟁력은 높아진다), 재정 지출을 늘릴 수도(수요와 투자를 늘린다) 없었다.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이 통제하고, 유럽연합 소속 나라들의 한 해 재정적자는 GDP(국내총생산)의 3퍼센트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돼 있다. 국가 부채는 GDP의 60퍼센트 이하로 제한돼야 한다.

2008년 이후 위기 속에서 그리스의 공공부문 고용은 2009년 90만 7천여 명에서 2014년에 65만 1천7백여 명으로 줄었다. 자살률은 35퍼센트 늘었고, 빈곤층은 27.6퍼센트에서 34.6퍼센트로 늘었다.

그러나 긴축은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 그리스 상황은 긴축이 위기의 대안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 대중도 이를 잘 안다(국민투표 결과가 보여 주듯이). 문제는 진정한 대안이 무엇이냐를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대규모 노동계급 투쟁과 그 속에서의 정치적 경험이 알려 줄 것이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그리스 경제 위기의 대안 논쟁: 그리스 민중(국민의 대중)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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