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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구조 개악:
그들은 왜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려 하는가

7월 7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도 올 하반기 중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면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또다시 강조했다.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도입 시도 등에서 보듯, 연공급제를 공격하는 데 맞춰져 있다. 연공급제는 노동자의 생산성과 상관없이 오래 근무할수록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대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맡은 직무의 가치·난이도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직무급제와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는 성과급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직무급제는 40대 후반까지는 임금이 오르다가 그 후에 직무를 나누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원리상 직무급제에서는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는 40세든 50세든 같은 임금을 받게 되므로 중장년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연공급제로 저임금, 나이 먹고는 직무급제로 저임금. ⓒ이윤선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지난 수십 년간 연공급제 하에서 급성장해 왔다. 연공급제가 다른 임금체계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제 개발 시기처럼 기업이 급성장하고 따라서 직무 가치와 성과 기준을 새로 평가하고 만드는 게 어려울 때는 사측조차 연공급제가 더 효율적이라고 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직무급제가 발달한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1970~80년대 구조조정 때 직무급제가 인력 재배치 등에 방해가 된다며 직무급제를 완화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임금 체계를 바꾸며 임금을 최대한 억제하고 수익을 높이려 하는 것이다.

게다가 지배자들의 비난과 달리 한국의 현 임금체계가 성과와 상관없이 근속 기간으로만 임금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IMF 공황 이후엔 성과급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연공급제가 상당히 약화하는 방식으로 변해 왔다.

새 판

그럼에도 왜 한국 지배자들이 연공급제 자체를 폐기하고 직무·성과급제 등으로 완전히 새 판을 짜려 하는가?

우선,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 나라 노동자의 평균연령은 44.2세다. 경제 개발기인 1974년의 36.3세보다 8세나 늘었다. 현대자동차의 노동자 평균연령은 47세나 된다. 그래서 연공급제의 요소가 임금을 억제·삭감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젊은 노동자들이 많을 때는 연공급제로 미래의 고임금을 약속하며 젊은 노동자들을 싼 값에 부려 먹다가, 그 노동자들이 나이를 먹고 고임금을 받을 때가 되자 직무급제로 바꿔 임금을 억제·삭감하려 드는 것이다. 중장년 시기의 임금이 직무급제 등으로 억제·삭감되면 청년 노동자들의 생애 전체 임금도 삭감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한편 지배자들은 연공급제 때문에 중장년 노동자들이 ‘희망퇴직’과 같은 방식으로 해고되고 사내 하도급이나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수익성을 높이려고 노동자들을 마구 해고해 온 기업들이 직무급제 등으로 임금 인상을 억제한다고 해서 정규직을 늘린다는 보장이 없다.

둘째, 지배자들은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 직무급제 도입을 위해 직무 평가를 하게 되면 중장년 노동자들 사이에서 임금이 억제·삭감되는 직무와 그렇지 않은 직무로 나뉘게 될 뿐 아니라 청년 노동자들과 중장년 노동자들이 다른 임금 체계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지배자들은 이 기회에 성과급제 요소를 더욱 강화하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관리자에 의한 성과 평가제가 강화되면서 노동자들이 사측의 관리와 통제 압박을 더욱 많이 받게 될 가능성도 크다.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약화시킨 관리자 평가가 부활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일부는 임금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연공급제를 포기하고 대안적인 직무급제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별 기업에만 적용되는 연공급제 때문에 임금 격차가 커졌다는 지배자들의 논리를 수용하는 것이다. 투쟁으로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없으니 제도 변경으로 노력해 보자는 논리도 깔려 있다. 그러나 직무급제로 변경하면 임금 격차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공상적이다. 기업주들은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만큼 올리기보다 별도의 직무를 만들 공산이 크다. 게다가 한국의 지배자들이 산업별 협상을 한사코 거부하는 상황에서 기업 간 임금 격차를 임금 제도 변화로 완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정부의 성과·직무급제 확대 시도를 막아 내야 한다. 이는 명백히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지 제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령대에 따라 노동자 생계비와 조응하는 연공급제는 여전히 장점이 있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헛된 기대를 품기보다 기본급만으로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급을 대폭 인상하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꾀하는 게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