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피크제가 임금피크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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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세대 간 상생 고용”이란 명목으로 고령 노동자 임금을 대폭 깎는 임금피크제를 정당화한다. 즉 고령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청년 고용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 자신이 청년과 고령자는 실업 원인이 다르고 종사 분야가 달라 일자리 대체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2010년, ‘정년 및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과 과제’). 실제로 OECD를 비롯한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에서 고령자와 청년 고용 사이에 대체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한국노총 조사에서는 임금피크제 시행 사업장에서 고용이 증가한 경우는 불과 12.2퍼센트고 19.5퍼센트는 오히려 고용이 줄었다(2015년, 화학노련 임금피크제 실태조사 결과). 이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정해진 고용 총량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즉, 고령 노동자 임금을 깎았다고 그 돈으로 청년 고용을 늘린다는 보장이 없다.
정부와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고용은 전체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일정 비율의 청년 고용 의무화를 강제하기만 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사내보유금의 1퍼센트만 풀어도 10대 재벌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정규직 일자리 수십만 개를 만들 수 있다.
정부가 이런 대책에 무심한 것만 봐도 정부의 진정한 의도는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가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고령 노동자들과 청년들을 이간질시키려는 책략에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이간질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장시간 노동하는 나라인 만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때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런 위선을 비난하면서도 임금피크제 자체를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는 듯한 중재안들이 나온다. 한국노총과 정의당,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씨 등이 지지하는 노동시간 피크제가 대표적 사례다. 예컨대, 임금이 피크임금의 80퍼센트로 줄면 주4일, 60퍼센트라면 주3일 일하는 식이다.
물론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60세 정년을 보장하고 그 이후의 계속 고용에 대해선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말해, 정년 60세 이전의 임금 삭감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년이 지난 후에 임금이 줄어든 만큼 노동시간도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시간 피크제는 60세 정년 이전부터의 임금 삭감을 수용하는 듯한 모호함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 정문주 정책본부장은 “정년에 즈음해서 … 노동시간을 줄일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렇게 모호한 태도로는 정부의 임금피크제 추진에 일관되게 맞서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노총이 “노사 사업장 특성에 맞게 자율 도입”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60세 정년 이후 노동시간 피크제도 위험성이 있다. 정부가 개악하려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 탄력근무제, 직무급제 확대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일방 강행
다른 한편, 노동시간 피크제는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정년을 연장해 고용을 지키는 것이 더 좋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정부의 임금 삭감 공세는 완전히 막을 수 없다고 보는 셈이다.
이는 노동시간 피크제에 우호적인 한국노총이 임금을 깎고 노동시간은 단축하되 고용은 보장했다는 이유로 독일 ‘하르츠 개혁’을 부분적으로 긍정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하르츠 개혁은 노동자들 전반의 실질임금 하락과 시간제 일자리를 대폭 늘려 빈곤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은 것을 보면, 고용 안정을 위해 임금 삭감과 노동 유연성을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대안이 아님을 보여 준다.
최근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악 추진을 위해 다시금 노사정위 재가동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김무성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을 찾아가 “노동시장 구조 개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면서도 “정부와의 대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악 때 그랬듯이, 지금 박근혜 정부는 주고 받는다는 의미의 사회적 합의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그런 모양새를 취해서 저항의 확산을 막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임금피크제도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통해 개별 사용자들이 취업규칙을 개악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도록 하려 한다. 최근 공기업인 남부발전에서 2년 동안 90퍼센트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려고 취업규칙 개악안 서명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공격을 막으려면 가망 없는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임금피크제를 분명하게 반대하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