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오토텍 1차 투쟁 승리가 보여 준 것:
노조 파괴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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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갑을오토텍지회가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의 노조 파괴 용병들을 쫓아내며 사측의 노조 파괴 시도를 막아냈다.
사측은 근래 통상임금이 확대되면서 높아진 임금을 낮추고, 식당·경비 외주화로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등의 공격을 손쉽게 하기 위해 지난해 말 용병들을 대거 채용, 악랄한 폭력을 가했다. 특히 ‘공안통’ 황교안이 국무총리로 임명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 6월 17일에는 흉기로 무장한 용병들이 공장 라인을 돌며 노동자들을 집단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즉각 전면 파업을 벌여 7일 만에 승리를 거뒀다.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20퍼센트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갑을오토텍 사측의 만행에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사측도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갑을오토텍지회가 규정했듯, 이는 투쟁의 끝이 아니라 “1차 투쟁의 승리”였다. 용병들은 해고를 당했지만 여전히 기숙사에 남아 갈등을 조장하고 있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기업노조와의 유착관계 등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아직 추진되지 못하고 잇다. 경찰은 노조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자행했다.
부품사 투쟁이 완성차 생산에 미치는 효과
갑을오토텍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1차 투쟁”의 승리는 지난 수년간 자동차 부품사에서 잇따른 노조 파괴 탄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우선, 이 투쟁은 부품사 노동자들이 완성차 생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갑을오토텍 파업으로 현대·기아차의 자동차에어컨 조달에 어려움이 생겨나자, 현대차 울산 공장과 기아차 광주 공장의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애가 탄 현대·기아차 사측은 서둘러 협상을 타결하라고 주문했다.
부품사 노동자들의 힘은 이전에도 거듭 확인됐다. 2010년에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 사흘 만에 완성차에 타격을 줬고, 2013년에는 엠에스오토텍 노동자들이 똑같은 효과를 내며 파업 이틀 만에 승리를 거뒀다.
이런 효과는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수량만큼 즉시 부품을 조달하는 ‘적시생산’ 시스템 속에서 더 두드러졌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이를 더 발전시켜 부품 조달과 완성차 생산을 거의 동기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부품에서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생산체계가 갖춰졌고, 3백50여 곳에 이르는 1차 협력업체들 각각이 거의 유일한 부품 공급원이 됐다. 이 때문에 한 부품사에서 생산이 멈추면 현대·기아차의 라인 가동도 중단됐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동안 여러 부품사 노조들은 이런 강력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한 워크숍에서 직장폐쇄를 당한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지회 집행부는 노조 쪽이 현안문제를 일정 양보하면 직장폐쇄를 풀 것이라고 봤다”, “[회사 관리자는] 혹시나 해서 칼 꺼내 살짝 찔렀더니 푹 들어가더라고 하더라.”
부품사 노조의 맏형이라 불린 만도지부의 집행부는 협상과 투쟁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정작 용역깡패가 밀고 들어왔을 때 아무런 저항도 못해 보고 밀려났다. 유성기업에선 강렬한 공장 점거파업이 솟구쳤지만, 이런 투쟁은 더 지속되지 못한 채 며칠 만에 공장에서 쫓겨나 파업 효과를 잃었다.
원청 노조의 연대가 중요하다
부품사 투쟁이 더 큰 힘을 발휘하려면 동종 산업 노동자들의 연대도 중요하다. 예컨대 2009년에 경주 인지컨트롤스지회는 이 지역 20개 부품사 노조들의 연대 파업에 힘입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원청인 현대·기아차 노조가 적극 연대에 나서는 것이다. 사실 지난 수년간 유성기업·발레오·KEC·에스제이엠 등에서 용역 침탈과 직장폐쇄, 복수노조 설립 등 악랄한 노조 탄압 공격이 이어졌을 때, 그리고 이에 맞선 투쟁이 솟구치며 사회적 초점을 형성했을 때조차, 금속노조와 현대·기아차지부 등은 즉각 실질적 연대에 나서지 못했다.
이 속에서 여러 투쟁이 고립되고 장기화됐다. 지난해 1월 현재 금속노조 소속의 복수노조 사업장은 금속노조 전체 사업장의 15퍼센트가 넘는 49곳이나 된다. 이 중 대다수는 소수노조로 전락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부품사 노조들이 공격을 당하고 하나 둘씩 무너지면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노조들도 임금·노동조건 후퇴 압박을 받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 노조들을 표적 삼아 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단협 공격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품사 노조들에 대한 공격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한편, 갑을오토텍 투쟁은 법원이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 줬다. 법원과 검찰 등은 차일피일 수사와 판결을 미루며 사측의 불법 행위를 묵인·방조해 왔다. 최근 대법원은 노조 파괴 전문업체 ‘창조컨설팅’에 무죄를 판결하기까지 했다.
새정치연합은 금속노조 등과 함께 노조 파괴 사업주들의 악행을 폭로하고 규탄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투쟁이 확대·지속되면 어느덧 “대화로 풀자”며 투쟁의 김을 빼는 구실을 하곤 했다.
가령 2010년에 KEC 노동자들이 점거파업을 벌이며 연대의 초점을 형성했을 때, 새정치연합과 이들을 추수한 민주노총·금속노조·진보정당 지도자들은 ‘중재’를 자처하고 나서 공장 점거를 해제시켰다. 이렇게 투쟁의 동력이 약해지자 사측은 곧바로 탄압의 고삐를 쥐었다.
따라서 갑을오토텍지회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들 자신이 굳건히 투쟁할 때 사회적 지지와 연대도 확대될 수 있다. 부품사 노조들이 강력히 제 힘을 발휘하고 완성차와 동종업체 노동자들의 연대가 뒷받침된다면, 악랄한 노조 파괴 탄압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