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주의자들의 토론:
혁명가들은 좌파적 개혁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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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영국 런던에서 여러 나라 사회주의자들이 모여 ‘긴축, 급진좌파 그리고 혁명가들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했다. 원래는 그리스 사회주의자들도 참석해 발제도 할 예정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모임 직전 그리스 정부가 유럽연합의 고강도 긴축안에 굴욕적으로 합의해 급히 귀국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의 토론 내용을 런던에서 김종환 기자가 전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발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발제했다.
“오늘날 유럽 좌파는 역사적으로 새 국면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로 유럽 얘기를 할 테지만, 그 이론적·전략적 함의는 유럽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는 좌파들에게도 큽니다.
“새 국면의 배경은 자본주의가 심대한 경제 위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금융 불안정과 저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면서 ‘장기 불황’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수석 경제자문이기도 했던 로렌스 서머스도 바로 어제 〈파이낸셜 타임스〉에 글을 써, ‘저성장과 금융 불안정 때문에 그리스 위기와 중국 증시 폭락 같은 것이 일어나는 현실을 어찌해야 하는가’ 하고 걱정했습니다.
“지배계급은 경제 위기에 대응해 신자유주의를 더욱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했고, 긴축은 그 결과물입니다. 긴축은 거대한 저항을 낳았는데, 특히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격렬한 저항 속에서 급진좌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부상은 국제적으로 혁명적 좌파와 급진좌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시리자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영향이 더 컸습니다. 또한 긴축 반대 운동이 어려움에 처해 있어 국제 좌파들이 이들의 선거 승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면도 있습니다.
“시리자와 포데모스는 역사가 사뭇 다릅니다. 그리스에서는 전통적으로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했고, 시리자는 원래 공산당에서 분화해 나온 조직입니다. 스페인에서는 2011년 인디그나도스 운동[‘분노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광장 점거 운동을 가리킨다]으로 표출된 광범한 분노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젊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결집하면서 포데모스가 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시리자는 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반면 포데모스는 다양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흐름을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정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타티스 쿠벨라키스는 저와 토론하면서 그 공통 이데올로기를 ‘좌파적 유럽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유럽의 틀 안에서 긴축을 중단시키고 각국의 주권을 회복한다는 것이 ‘좌파적 유럽주의’의 핵심 내용입니다.
“시리자는 유럽연합 내부의 갈등을 이용해 적절히 타협하면 유럽연합의 틀 안에서 [시리자의 2015년 총선 공약이었던] 테살로니키 강령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시리자는 선거 프로젝트로서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올해 1월 총선에서 승리했고, 1주일 전 국민투표에서도 크게 승리했습니다.
‘좌파적 유럽주의’의 한계
“그러나 시리자의 한계는 선거 후에 극명히 드러났습니다. 두 차례의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첫째, 2월 20일 시리자는 추가 구제금융은 없을 것이라던 자신의 공약을 내던지고 전임 정부의 [긴축] 양해각서와 협상을 계승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7월 13일 시리자는 유럽연합에 굴복했습니다.
“유럽연합은 시리자에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줬습니다. 부채 탕감 반대, 국제 기구 감시 하에 진행되는 민영화 유지, 선출된 정부의 결정을 재정위원회가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재정 협정(그리스뿐 아니라 유럽연합 소속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지 등에서 유럽연합은 조금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독일 지배계급이 양보하는 것을 병적일 정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지배자들은 그리스에서 긴축의 고삐를 조금이라도 늦추면 독일의 경제 모델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긴축 반대 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독일 총리 메르켈은 “내가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인들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에 감히 도전했으므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좌파적 유럽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유럽연합이라는 틀은 치명적 함정이라는 사실이 시리자와 시리자에 투표한 그리스인들에게 드러났습니다.
“‘좌파적 유럽주의’가 개혁주의의 최신 버전이라는 점에서, 그 내부 모순이 드러난 것은 중요합니다. 지난 10~15년 동안 [유럽]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양극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사회적 자유주의’로 나아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좌파적 유럽주의’를 채택한 급진좌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급진좌파 정당들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이미 취한 태도를 돌아봅시다. 우리는 급진좌파의 부상을 반겼고 그들이 대표하는 광범한 운동의 일부가 되려 했습니다. 우리는 종파적으로 굴지 않으려 했고, 이는 옳았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법은 다양했고 단일한 공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마르크스21》 동지들은 디링케(좌파당)에 참여하고, 스페인의 ‘엔루차’ 동지들은 포데모스나 카탈루냐 민중연합후보(CUP)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동지들은 [시리자가 아니라] 더 작은 세력인 안타르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커다란 급진좌파 단체 안에 속해 있든, 더 작은 연합단체에 속해 있든, 독립적 조직으로 있든,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명료함[뚜렷하고 분명함], 둘째, 정치적 응집력, 셋째, 독자적으로 운동에 개입하는 능력.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광범한 운동을 대변하는 모종의 급진좌파 정당에 속하지 않더라도 운동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바로 SEK에게서 배워야 하는 점입니다.
“SEK는 시리자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고,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SEK는 시리자에 들어가면 독립적으로 운동에 개입하기가 힘들다고 보아 그런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 시리자 좌파인 ‘좌파연대’(Left Platform)가 얼마나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보면 SEK가 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SEK는 또한 혼자서는 그리스의 세력관계를 바꾸기가 버겁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안타르시아라는 더 넓은 반자본주의 좌파연합체를 결성했습니다. 안타르시아에는 공산당에서 분화한 신좌파조류(NAR)라는 정치단체 등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SEK는 안타르시아를 통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안타르시아는 정부의 국민투표 실시 발표 몇 시간 만에 반대표를 찍자고 주장하는 ‘오히’[OXI, ‘반대’라는 그리스어 낱말] 리플릿을 뿌리며 선동했습니다. 정작 국민투표 실시를 선언한 시리자 자신은 국민투표를 놓고 분열했습니다.
“안타르시아는 매우 효과적으로 반대표를 주장했습니다. 7월 5일 저녁, 반대 운동 측의 압도적 승리를 축하하는 시위가 신타그마 광장에서 벌어졌는데, 안타르시아가 깃발을 들고 입장하자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압도 다수가 시리자 지지자였는데도 말입니다.
“안타르시아의 구실이 어찌나 컸던지 시리자 사무총장조차 시리자 기관지에서 ‘안타르시아는 ‘오히’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다른[SEK 등 안타르시아 소속] 좌파들에 우호적인 인물이 아니었지만 안타르시아의 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시리자 지도부와 ‘좌파연대’가 위기를 겪는 지금 안타르시아는 노동자 운동에 더 넓은 뿌리를 내릴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쓰라린 방어적 투쟁이 계속될 것이고, 7월 15일 총파업은 그 시작입니다.
“SEK가 안타르시아를 결성하고 성공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SEK 동지들이 격렬한 논쟁을 통해 세 가지 조건(이데올로기의 명료함, 정치적 응집력, 독립적으로 운동에 개입하는 능력)을 지켜 냈기 때문입니다.
논쟁에 개입하기
“제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광범한 운동에 속하고, 커다란 정당에 속하고, 게다가 그 정당이 선거에서 많은 표를 받으면 마치 자신이 몹시 중요해진 것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독립적 세력으로 활동하지 않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당면 문제에 관한 전술들뿐 아니라 우리의 정치 일반으로도 가까워지도록 설득하려 하지 않으면 커다란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조직적으로 녹아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국제 좌파들 사이에 혼란이 많은 시기입니다. 이 혼란은 [1999년] 시애틀 시위나 [2011년] 아랍 혁명 등 여러 투쟁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공격이 그치지 않고 여전히 운동의 돌파구가 생기지 않은 상황을 반영합니다.
“국제적으로 운동이 전진하지 못하면서 갖가지 내향적 논쟁과 조직 분열 등이 벌어졌고 우리 SWP도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데올로기의 명료함, 정치적 응집력, 특히 독립적으로 개입하는 능력을 지켜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조적으로 굴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좌파 안에는 아주 중요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좌파 정당 건설에 대해, 오늘날 노동계급의 상태와 잠재력에 대해, 여성해방과 페미니즘 등에 대해 말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그 논쟁에 개입해야 합니다. 자유주의적 학자들처럼 ‘이것도 저것도 모두 소중한 입장들이고 사상은 다양할수록 좋기 마련’이라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개입의 목적은 우리의 정치 전통을 계발하고 더 풍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주장을 되풀이하기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 주장이 이론과 실천의 면에서 아주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재발견하려고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을 현실에 적용해서 더 풍부하게 발전시켜야 하지만(특히 여성 차별과 해방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계 등에서 유행하는 이론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론 자체가 최종 목표인 것은 아닙니다. 이론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더 확실하고 분명해지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고, 정치적 명확성은 다시 우리의 개입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흥분되는 일도 일어나지만, 또한 끔찍한 일도 벌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리스 국민투표를 둘러싼 환희가 불과 1주일 만에 굴욕감으로 바뀐 것이 대표 사례입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는 신속하게 대응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또 급변하는 현실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SEK 동지들의 경험에서 정치적 교훈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중 토론
이어서 청중 토론이 진행됐다. 청중 토론에서는 영국과 독일뿐 아니라 한국, 아일랜드,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등지에서 온 사회주의자들이 자국의 경험을 들어 주장했다.
독일 《마르크스21》 활동가들은 좌파당 안에서 시리자 문제로 일어난 논쟁을 소개했다. 지금까지 좌파당 의원들은 독일이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긴축에 당론으로 반대했는데, 2월 20일 합의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다수가 찬성표를 던졌다. 그 이유는 치프라스가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이끌어 낸 합의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21》 동지들은 시리자 정부가 아니라 긴축을 반대하는 그리스 노동자들에게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합의안 반대를 주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마르크스21》 측의 한 동지도 시리자에 연대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로부터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은 “트로이카가 시리자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시리자 정부가 광범한 좌파 진영에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혁명가들에게까지 우경적 압력을 가하는 연쇄 고리’가 있다면서 혁명가들이 그런 압력에 잘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시리자 중앙위원회가 4월 이래 소집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시리자 의원단이 기층 지지자들과 단절돼 있다고 지적했는데, 인상적인 주장이었다.
유럽연합에 대한 인상적 주장들도 많았는데 대부분 캘리니코스가 정리 연설에서 다뤄, 따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연대의 최일붕 동지와 기자 자신도 발언했는데, 기사 말미에 소개하겠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정리 연설
마지막으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정리 연설이 있었다.
“독일의 한 동지가 레닌이 1915년에 ‘유럽합중국’ 개념을 비판하며 쓴 글을 소개했습니다. 이 글은 매우 유용한 글입니다. 당시 카우츠키뿐 아니라 트로츠키도 유럽합중국 개념을 지지했는데 레닌은 오히려 비판했습니다. 핵심은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 때문에 유럽 국가들을 한데 묶은 유럽합중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유럽연합의 구조적 특징도 레닌이 말한 불균등 발전을 보입니다. 유럽연합 안에서 독일은 수출이 증대해 경제가 성장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 나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균등 발전이 유럽연합의 핵심적 특징이고, 일각에서 얘기되는 ‘통일 유럽’이나 추상적인 ‘범(汎)유럽 연대’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유럽연합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것에 대한 토론도 있었습니다. 물론 영국의 국민투표는 우리가 요구해서 치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유럽연합 반대 목소리는 주로 좌파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영국의 국민투표를 유럽연합에 대한 좌파적 비판을 재건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주의나 중국 등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지 않으면서도, 국제주의 관점으로 유럽연합을 반대하는 주장을 개진해야 합니다.
“극좌뿐 아니라 극우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좌파가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면 극우가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스 SEK에게서 배우자는 것이 그들의 전술을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혁명적 좌파가 [급진좌파 정당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다른 단체들과는 일절 함께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 큰 개혁주의 단체 안에서 활동할 때는 그저 독자적 조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독립적으로 주도성을 발휘해 [운동과 이슈에] 개입할 능력을 가져야 하고 또 주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정치적 독립성
“SEK는 단지 이론적으로 올바른 분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맹렬하게 싸우고 운동을 건설했습니다. 그 결과, 운동 안에서 시리자가 절대적 지지를 누리는 가운데서도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2012년 이후에는 그리스 노동자들이 시리자의 집권을 기다리며 노동자 투쟁이 다소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SEK는 파시즘과 인종차별 문제를 놓고 운동을 건설했습니다. 당시 공산당(KKE)과 시리자 모두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SEK는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이라는 공동전선을 [2009년] 결성했고, 성공적으로 대중 운동을 건설하면서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시리자는 국제적으로 많은 좌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우리[영국 SWP]도 약 3년 전 미국의 국제사회주의단체(ISO)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주의적대안’(Socialist Alternative)과 시리자를 두고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제 생각에 그 논쟁들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레닌주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범좌파 정당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레닌주의 정당 건설 노력을 청산하는 입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SWP 안에서 문제가 터지게 된 구체적 계기를 사소하게 여길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당시 SWP를 공격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시리자 지지자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시 어느 회의에서 SEK의 파노스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지금 SWP에 대한 공격의 더 광범한 맥락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진정한 레닌주의 조직을 건설하려는 노력에 대한 공격이다.’
“시리자가 좌파들을 끌어당기는 현상의 흔적은 우리 경향 안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독일 동지들이 주최한 ‘맑시즘2015’에서 [시리자를 지지하는] 〈자코뱅〉 편집자가 연설하고, 또 청중이 그에게 열렬히 환호한 것도 그런 인력(引力)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시리자가 좌파에 끼친 영향은 광범합니다. 우리가 그런 영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분석이 옳았음이 이제 현실에서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리자 논쟁에는 더 중요한 함의도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 경향이 함께해야 하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조직이 실천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보이려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르크스주의 이론도 갈고 닦습니다.
“오늘날 그리스에서 전개되는 상황과 SEK가 거기서 하는 구실은 실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 동지들의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 내어 정치적으로 더 명확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기여
직장과 캠퍼스에서 정치적 핵심조직을 형성해야 한다
노동자연대 운영위원 최일붕 동지는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결코 제국주의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긴축만이 유일한 관심사여서는 안 된다는 함의였다.] 그는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대외정책이 국내 정치의 연장인 성격이 강하지만,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한국 같은 곳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흔해, 제국주의 간 갈등이 국내 정치에 영향을 끼친다며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을 그 사례로 들었다.
최일붕 동지는 제국주의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진영논리가 부활하는 조짐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국 차악론이나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착각이 있어 중국 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이에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국가자본주의론을 통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원칙을 방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최일붕 동지는 현재 국면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 운동의 기층에 뿌리를 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신문을 판매하고 적절한 주장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매우 부족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회원들이 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규율을 익히고, 전투적 노동자들 사이에서 신뢰도 얻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고,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지금부터 현장과 캠퍼스에서 전투 능력을 갖춘 조직을 건설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그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그래서 단체가 성장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선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언급하지 않고 자기들이 사회주의자 의원을 보유하고 있고 청년들을 많이 가입시키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었다.
훈련
최일붕 동지는 사람들을 가입시키는 것뿐 아니라 회원들을 훈련시키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10여 년 전에 크리스 하먼이 거리 시위 참가는 좋은 일이지만, 거리 시위를 통해서는 전술을 교육·훈련받을 수 있는 지속적 조직을 건설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진짜 사회주의자가 되려면 치열한 전투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을 쌓고 단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2년 전 SWP 위기 때 SWP의 많은 학생 당원들이 흔들렸지만 대학 점거 투쟁에 참여해서 승리를 거둔 일부 학생 당원들은 굳건했는데, 바로 그런 훈련을 받은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기자인 나도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 운동에 개입할 때 만만찮은 어려움이 뒤따르므로 인내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연대의 경험을 들어 설명했다. 초기에 경험 부족으로 조직노동자 운동 담당자들이 잇따라 고배를 든 사례, 단체가 조직노동자 운동 쪽으로 역량을 기울이는 것에 반대한 한 지도적 회원이 거의 모든 조직노동자 회원의 반대로 철저히 패배한 사례 등을 소개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는 조직노동자 운동의 기층에 뿌리내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분석에 따라 시행착오와 내부 반발을 뚫고 수년에 걸쳐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13년 전교조 투쟁과 철도 파업, 2015년 공무원노조의 연금 투쟁 때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단지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올바른 정책의 필요성뿐 아니라 오늘날 조직노동자 운동의 개혁주의(노조 관료가 대표하는)가 제기하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히 노조 지도자들의 집회·시위 선호(파업보다)와 그저 경고성의 형식적인 하루 파업을 넘어설 중기적 대안을 강조하고 논의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