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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월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과 국회 논의기구:
민주노총,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촉진하려 애써야 한다

박근혜는 하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노동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7월 16일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등을 만나 ‘상반기에 공무원연금 개혁에 주력했다면 그 다음은 노동개혁’이라며 하반기 국정과제를 지시한 것이다.

김무성은 “당력을 총동원해”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화답했고, 22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는 새누리당에 노동개혁 특위를 만들기로 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등 1단계 개혁과제를 지속 추진하는 한편, “유연안전성 제고”를 위한 2단계 개혁방안을 마련·추진하겠다고 이미 밝힌 상태다(〈2015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관계부처 합동).

9월 중에 발표하겠다는 2단계 개혁방안에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전환배치 등 인력운영에 관한 경영권 강화, 기간제와 파견제에 대한 고용 규제 개편, 실업급여 개편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장관 이기권은 고위 당·정·청 회의 바로 다음날 주요 기업 인사·노무 담당 임원들을 만나 일반해고 요건 논의를 올해 임단협에서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동개혁의 핵심 의제로 임금피크제, 임금체계 개편을 강조한 데 이어, 일반해고 요건 완화 문제도 수면 위로 올린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여당의 대응은 박근혜가 필사적이고 조급하게 “노동개혁” 추진에 달려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 문제와 관련해 상반기를 많이 까먹었다. 여기에는 정치적 요인(부패 스캔들, 세월호 정국, 메르스 무능 등)이 주된 영향을 미쳤지만, 노동자들의 저항도 한몫을 했다. 한국노총의 이탈로 노사정위 협상이 파탄을 맞은 것은 민주노총이 연초부터 투쟁에 나선 것의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상반기에 정부·여당은 박근혜 노동공세의 “최전선”이었던 공무원연금 개악을 이룰 수 있었고, 이를 하반기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이루지 못했다면, 하반기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이 점에서, 노동운동이 공무원연금 문제에 취약성을 드러냈던 것은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술, ‘철밥통·노동귀족·조직노동자 이기주의’ 공세를 앞세운 양보론,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 문제 등)은 하반기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과정에서도 재현될 공산이 크다. 이에 관한 교훈을 이끌어 내려 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하반기 투쟁을 위한 상반기 투쟁의 교훈’을 보라.)

파업 일정 미리 잡고 지금부터 조직해 나아가야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하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포한 만큼 민주노총의 하반기 주요 과제도 이를 저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올초 대의원대회는 11월 ‘모든 노동기본권 쟁취’ 총파업 계획을 결정했는데, 이제는 그 전에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투쟁 계획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따라 7월 23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정부 구조개악 강행 시 총파업 돌입” 기조 유지, “국회 논의기구” 추진 등을 결정했다.

그런데 “강행 시” 총파업 지침은 무엇을 강행으로 볼 것인지 모호한 점이 있다. 가령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안’ 발표를 “강행”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침이나 가이드라인 발표와 법 개악안 통과를 “강행”으로 볼 것인가?

만약 지침이나 가이드라인 발표와 법 개악안 통과를 “강행”으로 본다면, 이런 계획은 개악안이 논의되고 날카로운 갈등이 벌어지는 중요한 순간에는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파업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된다.

그러면 그 공백을 “국회 논의기구”가 메우게 되고, 중심이 거기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4·24 파업은 노동시장 구조 개악이 관철된 다음 ‘뒷북치기’ 항의로는 사태를 변화시키기 어려우므로 사전에 효과적인 저항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조직됐다. 이에 따라 기층의 좌파 활동가들도 두 달 가까이 현장에서 파업을 주장하고 조직할 수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이어가야 한다. 정부의 개악 추진 방안이 발표될 9월경으로 파업 일정을 정하고 지금부터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효과적일 것이다.

민주노총은 9월과 10월 공공부문 파업 성사와 이를 민간부문으로 확대하는 일에 힘을 실어야 한다.(공공운수노조 등은 9월 11일 1차 파업, 10월 2차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또, 하반기에 임원 선거를 치르는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조들이 선거 기간일지라도 민주노총의 파업 지침을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기층의 활동가들이 선거운동을 활용해 투쟁을 주장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7·15 파업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며 총파업 ‘재고’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투쟁 피로증’ 얘기 속에, 11월 ‘총파업’ 계획을 ‘총궐기’로 축소하려는 기류마저 있다.

그러나 ‘개혁 피로증’이라는 말이 개혁이 잘 안 될 때 나오는 말이듯이, 진정한 문제는 파업이 효과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것이지, 파업을 계획한 것 자체가 아니다.

7·15 파업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가 계속 늦춰지는 것과 함께 연기되면서, 뒤늦게야 촉박하게 그 일정이 잡혔다. 4·24 총파업 이후, 공무원노조 당시 집행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에 합의하면서, 전선이 이완되고 4·24의 탄력이 살아나지 못한 문제도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으며 투쟁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국회 논의기구 참가 추진을 우려하는 이유

이와 관련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다루는 국회 논의기구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 “일방 강행 저지”를 목표로 새누리당·새정치연합·정의당에 국회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정부 개악안의 철회를 전제로, 노사정위가 아닌 국회 논의기구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논의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흔히 그렇듯이, 이런 결정을 지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할 것이다. 정부의 일방 강행을 폭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부터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기대하는 의견까지, 또한 투쟁으로는 안 되니 국회 대응에 주력하자는 의견부터 투쟁 조직이 가능해 보이는 11월경까지 시간 벌기용으로 활용하자는 의견까지.

국회 논의기구 같은 제안은 복수의 상대가 있는 안이므로, 그 결과가 어떤 사람들의 기대에 근접하게 전개될지 미리 장담할 수는 없다. 각 정당만이 아니라 그 기구를 둘러싼 여러 조건들과 세력관계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새누리당은 ‘노사정위가 있는데도 별도의 타협기구를 만드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라며 민주노총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기존 입장대로, 일부 쟁점은 노사정위 논의를 통해 행정지침으로 추진하고 법 개정 사안은 환노위와 국회 특위에서 야당과 협상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해서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민주노총도 노사정위에 들어오라’고 사족을 붙이긴 했지만, 한국노총하고만 대화해도 족하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것이 정부와 새누리당의 “일방 강행” 양상을 폭로하는 데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의 일방성과 불통은 대중에게 새삼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것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가 진정한 관심사다.

몸값을 띄워주며 노사정위 복귀를 호소한 새누리당의 입장에 대한 한국노총의 셈법은 무엇일까? 아직까지 한국노총은 ‘치명적 의제’(취업규직 불이익 변경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제거하지 않으면 노사정위에 복귀할 수 없다며, 민주노총과 함께 국회 논의기구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에 투쟁 압박을 넣던 지난 4월과는 달리, 사회적 대화기구 추진에 공조하는 현 상황에서는 한국노총 내에서 온건파(노사정위 복귀파) 쪽으로 힘이 실리는 역설이 빚어질 수 있다.

양보 강요

물론 정부가 워낙 강경하게 나와서 노사정위 대화 재개가 불발되고, 결국 국회 논의기구가 (변형된 형태로) 구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제안한 국회 논의기구가 만들어졌다 해서 노동자 측에 유리한 결과가 빚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종류의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성할 때 정부와 여당의 목적은 명확하다. 경제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양보를 설득하려는 것이다.

흔히 진보 성향의 정부가 집권했을 때 사회적 대화가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여기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보수적 정부 하에서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일방적 개악 추진을 (막기는 어렵다고 보고)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고자 사회적 대화에 참여했다.

국민경제를 살리는 데 노·사·정이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그런 기구가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가정한다. 가령 정부가 기업 편만 들지 말고 국민의 이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거나, 조직 노동자들도 자신들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얘기를 흔히 한다. 그러나 결국 양보를 요구받는 쪽은 거의 언제나 노동자들이다.

정부와 노동조합의 갈등이 큰 상황에서는 기성 야당이 중재자로 나서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한사코 거부하면서 국회 논의기구에 기대하는 것도 바로 중재다. “사회적 갈등의 중재자이자 민의의 대변자로서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기성 야당은 결코 공정한 중재자가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의 방식과 속도, 그리고 정도에 약간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개혁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가령 2012년 문재인은 정규직의 임금 인상 자제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도 문재인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방식으로 노동개혁을 하려 하면 실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만 강조할 뿐, 노동개혁 자체에는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태도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당시 국회 논의기구에서 새정치연합이 한 구실은 공무원노조를 설득해 양보안을 수용하게 하는 한편, 그보다 더 형편없는 안을 새누리당과 타협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의당의 구실은 새정치연합보다 훨씬 부차적이었지만, 정의당도 공무원연금 개악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는 입장에 섰다.

이번에도 이 정당들은 노동자들 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조직 노동자들의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설득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이런 양보를 권력자들의 고립화 전술에 맞서는 “공세적” 대응이라고 포장하며 수용하자고 나설 수 있다.

수동화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국회 논의기구로 정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도 보지 않고 불필요하게 타협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투쟁 동력을 장담할 수 없다고 여겨 궁여지책으로 이런 정책을 지지했을 수 있다. 11월 파업까지 정부 공격을 지연시키는 전술로서 말이다.

그러나 8~9월을 국회 논의기구로 돌파하려 한다면 오히려 11월 파업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국회 논의기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무게가 실리면, 조합원들을 수동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에 무엇을 요구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 개악을 반대하거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투쟁을 촉진하려 해야지, 국회 대응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지도자들의 협상 기술이 대중 행동을 대체하게 된다. 그러나 대중 행동의 뒷받침이 전제되지 않는 교섭은 결코 노동자 측에 유리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8~9월 국면 돌파가 쉽지 않더라도 기층의 투쟁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아야지, 황금 같은 시간을 국회 논의기구 참여로 메우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전술적 활용이라며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현재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투쟁에 부정적 효과를 낼 것임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