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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하반기 투쟁을 위한 상반기 투쟁의 교훈

4~5월 노동자 투쟁을 돌아보며

민주노총은 4·24 파업에 조합원의 3분의 1인 27만 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금속노조 7만여 명, 건설산업연맹 2~3만 명, 전교조(연가) 3천여 명, 그리고 서울대병원, 학교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등이 동참했다.

4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 ⓒ이미진

그러나 실질적으로 작업을 중단한 경우는 이에 훨씬 못 미쳤다. 27만 명은 연가, 총회, 조합원 교육, 심지어 간부들만의 ‘파업’도 포함한 수치였다. 고용노동부는 실질적 파업 참가 인원이 3만 7천여 명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파업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정부가 수치를 줄여 발표하는 것은 늘 벌어지는 일이지만, 민주노총의 파업이 이윤에 타격을 주면서 지배자들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상균 위원장이 ‘공장을 멈추고 세상을 멈추는 파업을 하겠다’고 했던 것에 비춘다면 4·24 파업은 분명 그에 못 미쳤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의 활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가 취임 몇 개월 만에 조직한 파업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그럭저럭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위축됐던 노동자 투쟁은 2~3년 전부터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여러 요인들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자신감을 충분히 회복하지는 못한 상태다. 한상균 선본의 당선은 조합원들 스스로 투쟁에 나설 자신감이 높지는 않아도 다수 조합원이 ‘투쟁하는 지도부’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었다. 이것은 지도부가 단호하게 투쟁을 호소하면 조합원들이 이에 응할 가능성과 함께, 헤쳐 나아가야 할 장애물도 많은 상황임을 뜻했다.

박근혜의 파상공세 속에서 객관적으로 요구되는 투쟁 수준으로 치자면 민주노총 조합원 3분의 1이 참가한 하루파업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순 없기에, 이런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회복해 가기를 기대해야 했다. 그래서 〈노동자 연대〉는 4·24 파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투쟁의 도약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4·24 파업이 보여 준 가능성과 한계

이런 점에서 보자면, 4·24 파업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줬다.

첫째, 총파업 시점을 4월로 잡고 일찍부터 투쟁 조직에 나선 덕분에 3~4월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노동운동이 주변화되지 않고 사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세력 구실을 할 수 있었다. 3~4월은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구조 개악이 논의되는 시기였을 뿐 아니라, 연초부터 지지율이 급락한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심각하게 표출된 때였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애초 공언한 시한인 4월 내에 완료하지 못한 것은 주로 정부의 정치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일찌감치 투쟁에 시동을 건 것이 아래의 두 가지 사태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주목해야 한다.

성완종 부패 스캔들로 이어진 사정 정국은 노동자들의 불만으로부터 시선 돌리기용으로 기획된 면이 있었다. 또,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의 투쟁 선언이 없었다면 한국노총 지도부는 산하 조합원들의 불만을 훨씬 덜 의식하고 노사정 협상을 결렬하지 않았을 수 있다.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가 ‘대화를 거부하고 함께 싸우자’고 공개 요구한 것은, 워낙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의 공격과 함께 한국노총 지도부에게 큰 압력이 됐다.

사실, 파업 시기를 4월로 할 것이냐는 민주노총 지도부 내에서 논란이 적지 않았던 쟁점이었다. 너무 촉박한 데다 과연 4월에 파업할 동력이 있느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한상균 위원장이 “선제적 파업”을 강조하며 일찌감치 투쟁 조직에 나선 것은 매우 적절했다. 만약 총파업 시기를 6~7월로 미뤘다면, 노동시장과 공무원연금 개악 논의 국면, 세월호 시행령 정국과 박근혜의 정치 위기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보듯이 임단협 시기라고 해서 총파업 동력이 자동으로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상균 집행부가 정치 상황의 역동성을 충분히 이용했는가 하는 점에서는 아쉬움도 조금 있다. 세월호 시행령 항의가 확대되고 성완종 게이트가 터졌을 때 이런 쟁점을 결합시키면서 투쟁을 확대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성완종 게이트는 새정치연합도 엮여 있는 사건이라 부르주아 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운동이 나서야 했지만, 민주노총은 이를 주도하기를 주저했다. 정세는 역동적으로 전개되는데 민주노총은 기존 계획을 고수할 뿐, 4월 24일 파업 집회의 서울 상경대오를 확대하고 세월호 범국민대회로 연결하는 등 4·24 파업의 정치적 파장을 확대하기 위한 대응에 굼떴다.

둘째, 한상균 신임 지도부는 현장을 순회하며 파업 조직에 열의를 보였고, 좌파 활동가들은 이를 활용해 현장에서 파업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일부 산별연맹과 대형 노조 지도자들의 비협조를 충분히 극복하지 못했다.

한상균 신임 지도부 당선 직후 아직은 ‘허니문’ 기간이어서 산별연맹 지도자들은 내놓고 총파업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파업 조직에 열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은근히 좌절시키는 식이었다.

국민파나 중앙파 지도자들 상당수가 비협조적이었고, 좌파 지도부로 분류되는 산별연맹들조차 모두 열의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는 대의원대회 현장 발의를 통해서야 4·24 총파업 복무를 결정했고, 공공운수노조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1차 적용 대상이 공공부문인데도 투쟁을 6월로 미뤘다. 심지어 공공운수노조는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을 결렬시킨 상황에서도 기재부·노동부와의 실무협의 테이블에 참가하고 있었다.

4·24 파업 전선을 위태롭게 만든 노조 지도자들도 여럿 있었다. 이경훈 현대차지부장은 파업지침을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억지 파업”이라고 비난하며 파업 파괴자 구실을 했다. 이충재 당시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대타협기구에서 양보안을 내고 실무기구에까지 들어감으로써 투쟁 전선을 교란시키고 사기저하를 불러왔다.

〈노동자 연대〉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산하 노조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직접 호소하는 것과, 해당 노조 활동가들이 기층에서 실질적인 투쟁 조직에 나서는 것이 맞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4·24 파업을 강력하게 구축하려면 투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쟁점들에서 좌파적인 입장을 내놓고 관철시키는 게 매우 중요했다.

한상균 위원장이 한국노총에 공개적으로 노사정위 탈퇴와 공통 투쟁을 촉구하며 압박을 가한 것이나, 8·18 합의에 대한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 성명을 비판함으로써 투사들의 투지를 독려한 것은 올바르고 적절했다. 이것이 투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규석 위원장 성명에 대한 비판 입장을 냈다가 내홍을 치르면서 한상균 신임 지도부는 시간이 갈수록 이런 문제를 상층 차원의 내부 논의로 해소하려는 쪽으로 기운 듯하다. 이것은 노조 기구 내 세력관계에서 밀리는 한상균 지도부에게 유리할 게 없는 방식이다.

노동조합 관료 전체의 규범(또는 “내부 질서”)에 순응하라는 더욱 크고 직접적인 압력에 봉착해서인지 한상균 신임 지도부는 투쟁의 명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뜨거운 쟁점에 대해 원칙 있는 입장을 내놓기를 점점 꺼렸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의 대타협기구 참가와 공무원연금 양보에 대해 원칙 있는 입장을 표명하며 투쟁을 왼쪽으로 이끌지 못했다. 심지어 이경훈 현대차지부장이 4·24 총파업을 “억지 파업”이라고 비난하며 초를 친 것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4·24 총파업 울산집회에서 이경훈 집행부가 저지른 지역실천단장 집단 폭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 자체로도 중요한 무기일 뿐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는 광범한 대중에게 받아들여져 물질적 힘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대학생 몇십 명이 내놓는 ‘말’이 아니라 잠재적 지지자 수십만 명이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이라면 노동운동의 향방에 미치는 영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뜨거운 쟁점에 대해 좌파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을 내놓고 운동의 방향을 이끄는 것은 한상균 신임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렇지 않으면 압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해지는 게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해지는 역전이 일어날 것이다.

5월 투쟁과 정치적 취약성

셋째, 앞서 민주노총이 일찌감치 투쟁 조직에 나선 것의 의의를 지적했다. 그러나 동시에, 선제파업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려면 정부의 공격이 계속되는 한 후속 투쟁을 계획해야 한다. 이 점에서 4·24 파업 이후 민주노총의 후속 투쟁 계획이 신속히 제시되지 않았던 것은 약점이었다.

선제파업은, 개악이 다 이뤄진 다음에 뒷북 항의로 사태를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사전에 개악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제안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파업으로는 박근혜의 공세를 저지할 수 없으므로, 하루파업을 성사시킨 자신감을 발판으로 이후 투쟁을 확대해 가야 했다.

물론 4·24 총파업 서울집회에서 한상균 위원장은 4·24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5월 양대노총 대규모 집회와 6월 말 2차 파업을 예고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재보선 직후 공무원연금 개악, 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공공부문 2차 정상화를 빠르게 추진하려 했다는 점에 비춰 보면, 5월 투쟁 계획이 비어 있었던 것은 약점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공무원연금 개악이 6월로 물 건너갔다’는 4월 말 당시 운동진영 내 팽배했던 잘못된 정세 전망의 반영이자, 공무원연금 방어에 나서기를 꺼리는 노동운동 내 상당히 퍼져 있는 경향의 문제점이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5월 국면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둘러싼 정치 문제가 더 중요하게 떠오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4·24 파업의 의제를 결정할 때도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주요 요구로 넣을 것인가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공무원연금이 ‘특권’적이어서 방어하기 곤혹스럽다거나, 공무원연금을 사수하자는 입장으로는 다른 노동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거나, 조직노동자 이기주의 공세에 취약성이 드러나는 쟁점이라는 등의 주장은 민주노총 내 우파만이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도 제기됐다.(이것은 정규직-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방어 문제에도 대체로 해당된다.)

비록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이럭저럭 4·24 파업의 주요 요구로 채택됐지만, 공적연금 강화와 공무원연금 사수를 대립시키는 약점은 민주노총 내에 잠복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5월 2일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악안이 나오자 민주노총은 동요와 혼란에 빠졌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의 개악안 합의를 비판하며 개악 저지 투쟁을 이끌어야 할 민주노총이 공무원연금 개악안에 대해 두 개의 모순된 성명을 낸 것이다. 하나는 합의안을 규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의안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 중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퍼센트 합의를 이행하라는 성명은 이충재 집행부(의 개악안 합의)를 정당화하고 힘을 실어 주는 효과를 냈다. 공무원노조 내 좌파 활동가들이 이충재-김성광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좌파 활동가들의 항의 속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두 번째 성명을 곧 삭제했지만, 그에 대한 해명은 내놓지 않았고 동요와 혼란도 계속됐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는 국회 앞 농성 등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을 성의 있게 조직했다. 그러나 이런 동요와 혼란은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는 데는 분명 걸림돌이었다. 전투성은 정치적 취약성에 언제든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사실, 공무원연금 문제는 지난해 말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에서도 한 쟁점이었다. 당시 한상균 선본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토대로 공적연금 강화를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용건 후보 측의 사회연대전략이 공무원연금 양보론(공무원연금 양보를 통한 공적연금 강화)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비판했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상황에서 정작 한상균 신임 지도부가 이 문제에서 정치적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한편, 민주노총 차원의 5월 투쟁 계획이 없는 동안 전체 노동자 투쟁 전선에 악영향을 주는 일련의 배신적 타협이 방치됐다는 것도 문제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의 공무원연금 개악안 합의, 철도노조 김영훈 집행부의 근속승진제 폐지 합의, 기아차 김종석 집행부의 사내하청 신규채용안 합의(기아판 ‘8·18 합의’)가 그것이다.

민주노총은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에 대해 ‘직권조인한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이영주 사무총장의 5월 27일 국회 앞 농성집회 발언), 나머지 문제들은 물론 이 문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김영훈 위원장의 근속승진제 폐지 합의에 대해 공공운수노조의 한 간부는 이 합의로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등을 저지했다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철도노조 좌파 활동가들이 부결 선동까지 했던 안인데도 말이다. 현재 기아차 김종석 집행부는 기아판 8·18 합의와 8+8 양보안 제시로 좌파 활동가들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좌파 활동가들이 돌아볼 점

〈노동자 연대〉는 민주노총 좌파 지도부의 등장과 총파업 선언을 노동자 투쟁의 일보 전진을 위해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이것은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좌파 노조 지도자들과 협력해 투쟁을 성사시키고자 했는데, 좌파 지도자들이 잘 싸워 줄 것이라고 믿고 의존해서 그런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섬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하고 기층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그랬던 것이다.

높지 않은 투쟁 수준 때문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부 부문의 좌파 활동가들은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설사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근시안적으로 보고 빨리 지쳐서는 결코 안 된다. 아직 상반기 투쟁도 끝나지 않았다. 길게 멀리 보고 참을성 있게 활동해야 한다. 단번에 기층 조직을 강화하는 왕도는 없다.

투쟁 속의 교훈을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조합 내 좌파들은 4·24 파업을 통해 이런 저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제 비정규·불안정 노동자가 투쟁의 주체가 될 것이라거나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중심에 둬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다. 이런 주장은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는 투쟁의 중심이 아니라는 평가와 짝을 이루기도 한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요 세력이 된 것은 환영할 일이고 비정규직 조직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령 이경훈 지부장의 파업 파괴 행위를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로 싸잡아 매도해서는 안 된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파업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이경훈이 그것을 거스른 것이었다. 이는 노동조합 관료가 아니라 정규직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조합주의가 더 근저의 문제라는 식의 설명이 부정확함을 보여 준다.

따라서 좌파 활동가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안녕을 고해서는 안 되고, 이경훈이나 이충재처럼 노동조합 지도자가 조합원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노골적인 우파적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민주파·좌파 지도자들도 배신적 타협을 한다는 것이 이제 우리 나라 노동운동 경험에도 낯설지 않다.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싸우는 지도자가 동시에 투쟁을 제한하고 양보도 강요한다. 노골적인 우파 지도자를 좌파로 교체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현장 조합원의 활동과 조직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다.

반대로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은 흔히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을 목표로 삼다 보니, 현재 집행부가 아니어도 노동조합 질서를 지나치게 존중하고 투쟁의 통제권이 노동조합 지도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방식은 노동조합 지도자로부터 독립적으로 투쟁해야 할 때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전 위원장의 배신적 타협에 대한 대응이나 이경훈 집행부의 집단폭행 징계 문제에서 이런 문제가 드러났다.

한편, 좌파 활동가들은 노동운동 내에 상당히 퍼져 있는 정규직 양보론이나 사회적 합의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 원칙적 비판을 하던 좌파들 가운데 일부는 교묘한 논리로 사실상 양보론이나 사회적 합의를 수용하는 쪽으로 우경화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서로 다른 이유에서 정치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가령 “계급복지”를 주장해 온 논자들 가운데 일부는 공무원연금 개악의 한 쌍으로 제기된 ‘공수표’인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퍼센트 상향을 지지하고 나서는 혼란을 보였다. 이런 기류는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가 동요와 혼란을 보이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또, 사회적 합의 문제는 이번 노사정위 협상 결렬로 대안에서 배제된 듯한 착각이 들게 하지만, 노사정위를 우회하는 방식의 부문별·지역별 사회적 합의기구는 계속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 종료와 함께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기구나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대타협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공운수노조는 기재부와의 실무협의 테이블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과급 양보나 임금피크제 조건부 수용 같은 양보론을 논의하려는 듯하다.

이런 양보론은 흔히 계급 격차 축소를 통한 계급 단결 방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협소한 부문의 이해를 넘어 계급의 이익을 고민하는 진지한 활동가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의 동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소치로,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영국 노동당은 1970년대 중반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임금을 억제하는 “사회협약”(Social Contract)을 맺으려 했는데, 이때 그들은 더 나은 처지의 노동계급이 임금을 자제해야 취약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임금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합리화했다.

계급 격차 축소를 부르짖는 일부 좌파 활동가들은 공무원연금이나 기업 복지를 사실상 방어하지 않고, 호봉제를 무너뜨리려는 임금체계 개악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맞받아치는 식의 투쟁이 기득권 사수로 보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단결과 연대를 고취한다. 계급의 단결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비교적 균일적으로 만들어 줄 초기업적 협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을 통해 이뤄 나갈 수 있다.

계속되는 박근혜의 공격과 6~7월 투쟁

공무원연금 개악을 강행한 박근혜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를 통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민간과 공공부문 모두에서 추진하려 한다. 청년실업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기업들의 노동비용 부담을 줄여 주는 게 진정한 목적이다. 곧이어 일반해고 요건 완화도 도입하려는 것을 보면, 정년 보장은 허울일 뿐인 임금 삭감 정책인 셈이다.

박근혜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 공공부문 2차 정상화 등을 막기 위해 실질적인 파업을 준비해 가야 한다 5월 28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통쾌하게 무산시킨 정부의 임금피크제 공청회 ⓒ조승진

정부는 공무원 임금피크제도 도입하겠다고 한다.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고는 그에 맞춰 일을 더 하고 임금은 더 적게 받으라는 것이다. 복지비를 줄이려고 더 싼 보수에 더 오래 일 시키는 정책을 사용하면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장년 탓으로 돌리는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짓이다.

새누리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통상임금과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또, 정부는 철도와 LH 등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 계획도 내놨다.

이와 같은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조개악 ‘가이드라인’에 맞서 ‘즉각 총파업태세’를”를 촉구하고 나섰다(위원장 성명). 〈노동자 연대〉는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일부 사항을 국회로 넘기고, 다른 일부 사항은 가이드라인으로 관철할 때 노동조합이 흔히 중앙 차원의 투쟁 전선으로 대응하기보다 ‘사업장별 임단협 대응’과 ‘국회 대응’으로 초점을 이동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상균 위원장이 민주노총 차원의 총파업 태세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반갑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국회 차원의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아직 그 상이 분명하진 않지만, 가이드라인 저지 투쟁이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대응에 매달리는 형국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국회 상황을 보면 국회 대응이라는 것이 새정치연합에 기대는 것이기 십상인데, 최근 새정치연합이 밝힌 구상은 ‘공무원연금 개악안 합의 모델을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악에서 새정치연합이 한 구실은 공무원노조를 붙잡고 양보를 강요하는 한편,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형편없는 안을 새누리당과 타협하는 것이었다.

자칫 민주노총의 ‘대화’ 구상은 한국노총이 투쟁을 철회하고 어물쩍 협상장으로 돌아갈 명분을 주고, 국회 대응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연맹 지도자들도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투쟁보다 협상에 매달리라는 압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5월 투쟁이 힘겨웠던 탓에 6월 총파업 태세 구축이 그리 쉽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악 이후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임금피크제 도입 같은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다시금 금속 등에서 계획된 파업이 실행될 수 있도록 기층 조직화에 나서야 하고, 6월 말과 7월 초 대규모 집회가 투쟁의 활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노총 4·24 총파업을 돌아보며 내다봐야 할 점들"을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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