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남중국해 인공섬 갈등:
동아시아의 또 다른 발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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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남중국해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라센 호가 중국의 인공섬 12해리 안으로 진입하는 작전을 펼쳤다. 미국이 경쟁 제국주의 국가가 설정한 ‘영해’를 인정하지 않고 그곳에서 무력 시위까지 벌인 것이다. 이 때문에 남중국해에 긴장이 높아진 상태이다.
물론 그 직후 미·중 군사회담이 열리면서 양측이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조처들을 논의하긴 했다. 그러나 미국 고위 관리들은 10월 27일 행동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미군이 수행할 여러 작전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앞으로도 언제든 이와 같은 위험한 행동들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말부터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환초·암초 지대 7곳에 인공섬을 조성하고 접안 시설, 활주로 등을 지었다. 머지않아 레이더 시설과 방공 시스템도 배치되는 등 인공섬의 군사 기능은 계속 강화될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계속 갈등을 빚고 있었다. 미국은 인공섬을 중국의 “모래 장성”이라고 부르며, 인공섬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맹비난해 왔다. 이미 지난 5월 미국 해군 함정이 남중국해 인공섬 인근에서 중국 군함과 조우하기도 했다.
지난 9월 미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주요 의제의 하나였다. 그러나 양국 정상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전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아마도 이 정상회담이 오바마가 인공섬 인근으로 군함을 보내기로 한 중요한 계기가 됐을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남중국해 인공섬 갈등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갈등이 낳은 여러 충돌 지점들의 하나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며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애써 왔다. 이를 위해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역내 국가들에 접근해 협력 관계를 확대·강화했다.
그러나 중국이 이에 맞대응하면서, 동·남중국해 일대에서 중국과 다른 국가들 사이에 영토 분쟁이 격화돼 왔다. 2010년 즈음부터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센카쿠)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남중국해에서 영토 분쟁 양상이 격렬해졌다. 미국은 베트남·필리핀 등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는 국가들에게 접근해, 이 문제를 제국주의 간 갈등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크게 일조했다.
남중국해를 자국의 영해로 확보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미국이 지속적으로 견제해 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중국해는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남중국해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이어 주는 길목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 거점들을 이어 주고 유지하는 데서도 미국이 남중국해의 제해권을 통제하는 게 중요하다.
남중국해는 일본과 한국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도 중요하다. 일본과 한국 무역의 80퍼센트가 남중국해 항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만약 거기서 미국이 중국에 밀린다면 자칫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이 인공섬을 짓고 군사력을 강화해 끝내 남중국해를 장악하는 것을 미국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일대일로
중국도 남중국해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중시해 왔다. 대외 무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남중국해 같은 중요한 해상 교통로에서 안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 해상 교통로는 미국이 주름잡아 왔다. 중국은 이 점에 불만을 품어 왔다. 그래서 중국은 군사력을 꾸준히 키우면서, 유사시 미군을 태평양 동쪽으로 밀어낼 능력을 갖추려 노력해 온 것이다.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 때문에 남중국해가 갖는 지정학적 가치는 더 중요해졌다. “일대일로” 계획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유럽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육상과 해상 인프라로 통합한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일대일로”가 “마셜플랜(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시행한 유럽 재건 계획) 이래로 가장 큰 규모의 경제외교(economic diplomacy)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했다.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지 않도록 차단하고자 한다. 또한 자국 경제의 성장이 점차 둔화하면서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따른 해외 인프라 건설과 투자로 국내의 과잉생산 문제를 일부라도 해결하고 싶어 한다.
남중국해는 바로 “일대일로” 계획의 하나인 “21세기 해상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이 이 계획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더더욱 남중국해에서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중국해에서 중동, 아프리카 등지까지 이어 놓으려는 해상 실크로드 계획이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칠 것이다. 중국 지배자들이 인공섬을 만들어서라도 남중국해 제해권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이전보다 더 커진 것이다.
“역외 균형자”
오바마 정부는 중국과의 군사적 대치 위험까지 무릅쓰고 남중국해의 인공섬 인근에 구축함을 투입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남중국해 주변 국가들에게 자국이 중국을 견제할 “역외 균형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남중국해에서 긴장과 대치가 노골화되면, 경제적 이익을 노려 중국을 향해 달려가고 구애하는 미국의 기존 동맹국들에게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수 없다(〈한겨레〉).”
그래서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미국은 남중국해 주변 국가들을 비롯해 동아시아 동맹국들을 자국 쪽으로 최대한 결집시키려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가 지난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근혜에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자국과 보조를 맞추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11월 중순 오바마는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가고, 연이어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및 동아시아 정상회담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동남아 순방에서 오바마는 남중국해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외교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다지려 애쓸 것이다.
여기에 일본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일본은 남중국해 분쟁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인공섬 문제가 불거진 이 와중에, 조만간 미국의 항모전투단과 일본 자위대의 호위함이 남중국해에서 합동 훈련을 벌이기로 돼 있다. 그리고 일본 총리 아베도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에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요구했다. 따라서 앞으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도 동참하라는 미국과 일본의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위험
물론 지금은 미국한테 국지전일지라도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 사태까지 감수하겠다는 의도가 없다. 그래서 인공섬을 문제 삼으면서도 미국은 구축함 한 대를 보내는 수준으로 행동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구축함 투입에 반발했지만, 당장 이 사태를 통제 불가능한 상황까지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이번 사태에 자극받아 앞으로 인공섬들의 무장을 더욱 강화할 게 분명하다. 항공모함 추가 건조 등 남중국해에 투사할 군사력의 강화도 계속 추진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머지않아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당연히 미국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을 축적하는 ‘무장한 대치’ 국면이 전개되면 미국과 중국 간에 우발적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이미 지난 1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미군과 중국군의 함선과 비행기들이 조우하고 충돌할 뻔한 사건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따라서 미국 정보분석업체 ‘스트랫포’가 분석한 대로,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 더욱 강경해질수록 우발적 사고가 급작스레 위기로 발전할 여지도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공공연하게 갈등하는 상황 때문에 동아시아 전체가 계속 불안정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지 모를 발화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세계 자본주의가 여전히 경제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을 비롯한 신흥 경제들에서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경제 위기는 주요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경쟁에 악영향을 줄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지금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거듭 벌어지는 제국주의간 갈등은 중장기적으로 진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