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바다’ 남중국해에서 고조되는 미중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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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일본과 필리핀이 군사 협정을 맺어 상호 파병을 용이하게 하고 합동 군사 훈련을 벌일 수 있게 했다.
이는 미국과 필리핀이 1991년부터 매년 벌여 온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 ‘발리카탄’에 일본 자위대가 정식으로 참여할 길이 열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자위대는 올해 4월 1만 6000여 명 규모로 열린 그 훈련에 (한국, 독일, 뉴질랜드, 인도 등과 함께)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했다.
특히 올해 발리카탄 훈련은 필리핀 영해 바깥이자 필리핀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이 치열한 배타적경제수역에서 벌어져, 더욱 위험해진 남중국해 상황을 반영했다.
특히 그런 훈련들은 필리핀 북쪽에 위치한 대만을 중국이 점령한 상황을 상정하고, 대만을 탈환하기 위해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시나리오로 진행됐다. 필리핀 최북단과 대만은 16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남중국해에서 일본이 더욱 적극적인 군사적 행위자가 된다는 것은 대만 문제에 더 깊숙이 연루되는 것을 뜻한다.
일본 최서단과 대만 사이 거리는 단 110킬로미터에 불과할 만큼 가깝다. 이 때문에 대만에서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된 주일미군이 필연적으로 1차 대응을 맡게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만 유사 사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 유사 사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제국주의 강대국인 미국, 일본, 중국이 충돌하는 사태는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가 연루되는 끔찍한 전쟁이 될 수 있다. 특히 그 장소가 남중국해처럼 경제적·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요충지
남중국해는 오늘날 세계 경제의 요충지다.
믈라카 해협 등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남중국해의 주요 항로들은 석유 등 에너지는 물론 산업 완제품과 부품이 유통되는, 유라시아 경제의 ‘대동맥’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인도양을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로 가려면 남중국해를 가로질러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이 때문에 전 세계 화물 운반 상선의 절반 이상이 남중국해를 지나고, 중국은 전체 무역의 약 90퍼센트를 남중국해 항로에 의존하고 있다. 또,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80퍼센트, 한국, 일본, 대만의 경우 90퍼센트가 남중국해를 통해 공급된다.
중국은 에너지의 상당량을 중동으로부터 좁은 믈라카 해협을 통해 수입하기 때문에, 미국이 이 통로 하나만 봉쇄해도 중국 경제의 생명줄을 옥죌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이른바 ‘믈라카 딜레마’다.
만약 남중국해 통제력을 장악한다면 이 지역의 석유를 통해 믈라카 딜레마를 완화시킬 수 있다.
남중국해 주변은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의 경제적 이익이 상호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예컨대 일본은 부품 등을 동남아로 수출하고 동남아 국가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분업 구조를 형성해 왔다. 중국도 동남아 국가들과의 경제적 관계가 깊어져 왔다.
남중국해는 중국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 계획(아시아, 유럽 등을 잇는 육·해상 실크로드 계획)” 가운데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지리적 중요성 외에도 남중국해는 70억 배럴의 석유와 90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어 ‘제2의 페르시아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중국해 남단의 스프래틀리 군도의 영유권을 나눠 갖고 있는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모두 산유국이다.
남중국해 석유 매장량이 중국 정부 주장대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가는 수준이라면, 중국은 남중국해를 통제함으로써 또 다른 커다란 지정학적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간 갈등
이것이 중국이 남중국해 거의 전체를 아우르는 U자 모양의 구단선(9개의 선들)을 긋고, 그 안의 모든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통제력을 밀어내고 차단하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해 왔다. 예컨대 분쟁 지역의 암초를 점령해 군사 시설들과 정교한 통신 시설을 세우고, 군대를 주둔시켜 왔다.
또, 중국은 하이난섬 잠수함 기지를 비롯해 남중국해 곳곳에 (핵추진)잠수함들을 배치하고, 남중국해 전역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도록 공중 급유 프로그램도 발전시키고 있다.
2013년 말부터 중국은 남중국해 환초·암초 지대 7곳에 인공섬을 조성하고 선박 접안 시설, 활주로 등을 지었다.
미국 또한 중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우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남중국해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
1945년 태평양 전쟁 승리 이래 미국은 이 바다를 지배해 왔다. 미국에게 남중국해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 한국 같은 동맹국들을 비롯한 주요 군사 거점들을 이어 주고 유지시키는 생명선이다. 만약 미군이 서태평양에서 밀려난다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일본이 그 동맹 전략의 중심이다.
미국은 미일 동맹을 중심에 놓고 호주·인도·영국(쿼드와 오커스)·한국(한미일 동맹)·아세안(미일필 동맹 등) 등을 연결하는 이른바 격자형 동맹 구조로 중국에 맞서 미국 중심의 기존 역내 질서를 지키려 한다.
이를 위해 일본 기시다 정권은 방위비를 두 배 이상 증액하기로 하며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고, 미국 바이든 정부는 이를 전폭 지지해 주고 있다. 올해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오간 국방 협력 사안은 70건에 달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불안감을 느끼는 동남아 국가들을 끌어당기려고 한다.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 온 필리핀이 대표적 사례다.
필리핀은 1946년 미국에서 독립한 뒤 1950년대에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제조업을 성장시켰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미국의 전략 속에서 더 많은 원조를 받았다.
2011년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의 모든 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2012년 스카버러 암초에서 필리핀 선박과 중국 선박이 대치한 사건은 미국과 필리핀의 군사 동맹이 더 강화되는 계기였다. 미국은 그 시기에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선언하며 중국과의 경쟁을 강화했다.
지금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은 미국·일본·중국 등이 치열하게 벌이는 제국주의간 경쟁의 일부다.
단기적으로 미국·일본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도박을 감행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높아져 가는 긴장과 군비 경쟁 속에서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