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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주의, 어떻게 볼 것인가

오늘날 국제적으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주민에 대한 태도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주민 정책 중 하나로 다문화주의에 대한 입장은 오랜 기간 논쟁이 돼 온 쟁점이다. 〈노동자 연대〉는 두 차례에 걸쳐 다문화주의에 관한 기사를 연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다문화주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다루고 다음에는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를 다룰 계획이다.

지난 십수 년간 다문화주의를 공격하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특히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던 2010~11년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정상들이 잇달아 “다문화주의 실패”를 공식 선언했다. 2015년 12월에는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 “다문화주의는 허구”라며 난민 수용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각국의 지배자들은 다문화주의 때문에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가 성장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2001년 9·11 테러와 2005년 런던 테러, 또 지난해 파리 참사 등이 터질 때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격이 강화됐다. 지배자들은 다문화주의를 통해 인종간 조화를 추구해 봤지만 사회의 응집력이 강화되기는커녕 집단적 정체성이 약화되고 “격리된 공동체”들이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황당한 책임전가다. 아이시스(IS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성장하고 테러가 늘어난 데에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수백만 명을 학살하며 벌인 중동 전쟁에 명백한 책임이 있다. 오히려 무슬림들은 옛 소련이 몰락한 후 서방이 이슬람을 악마화하며 전쟁을 벌인 것 때문에 피해받아 온 집단이다.

소수 인종 배려 정책 때문에 소수 인종들이 “격리된 공동체”를 형성하고 “게토화”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영국의 경우에는 인종 간의 교류가 지난 몇십 년 동안 더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 통계에서도 드러났다. 게다가 무슬림 등 소수 인종이 빈민가에 밀집되는 것은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이주민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이 원인이지 이주민에게 책임이 있지 않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난은 이주민을 경제 위기의 속죄양으로 삼는 것과 맞물렸다. 파시스트 정당인 프랑스 국민전선(FN)은 “2백만의 이민자는 2백만의 실업”이라는 구호를 부르짖으며 이주민들이 실업과 복지 위기의 원인인 것처럼 매도한다. 그러나 유럽 나라 대부분이 경제가 호황일 때 대규모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사용해 놓고 경제 위기가 닥치자 이들에게 실업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게다가 무슬림의 실업률은 평균의 갑절에 이르는 데서 보듯 이주민은 경제 위기 시기에 더 높은 실업난을 겪어야 하는 피해자들이다.

이데올로기적 공격뿐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후퇴하고 있다. 이민자가 받는 복지를 삭감하고, 수용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규정 등이 강화됐다. 예컨데 네덜란드의 경우는 이민자에게 자국의 언어, 역사,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의무적으로 습득하도록 강제하고, 이민자를 복지 수혜자에 머무르게 하지 않겠다며 정책을 전환했다. 영국도 영어 교육 예산은 삭감하면서 이민자들이 통과해야 하는 영어 시험은 대폭 강화했고, 이민 규제도 크게 강화했다.

이주민 190만 시대, 우파의 다문화주의 공격에 맞서는 것은 한국에서도 중요하다 서울 이태원의 모스크 앞을 지나는 무슬림 가족. ⓒ조승진

이렇게 지배자들의 다문화주의 공격은 이주민을 속죄양 삼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나은 문제의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유럽의 파시스트 세력들은 이런 악선동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 자신들이 하던 주장을 주류 정치인들이 되풀이하며 정당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격은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격의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좌파들이 다문화주의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문화주의의 등장 배경

다문화주의는 서구에서 1970년대에 부상했다. 1971년 캐나다 정부가 처음으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선포한 이후 미국, 호주, 스웨덴, 영국 등으로 확대됐다.

다문화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장기 호황기에 노동력이 필요했던 서구의 주요 나라들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이민자가 늘어난 것과 함께 1960년대에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여러 정부들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가한 압력에 대한 대응으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정부들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요구를 일부 흡수했지만 충분치는 않았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인종관계연구소 시바난단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다문화주의적 표현은 정부의 포고령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공장 현장과 사회에서 아시아인과 흑인과 백인들이 함께 인종 차별적 범죄에 맞서 단결한 투쟁에서 왔다. 그 투쟁을 통해 다양성 속에 단결을 만들 수 있었다.”

인종차별에 맞선 저항은 대부분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은 그대로 둔 채 문화적 관용을 정책적으로 강조했고 이를 통해 불만을 통제하고 싶어 했다. 일부 인종차별 반대 운동 단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다문화 정책의 지원금을 받으며 더 온건화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문화주의 정책들은 소수 인종에게 자신의 문화를 버리고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를 강요하는 기존의 일방적 통합 정책에 비해 더 나은 것이었다. 다문화주의 정책들은 나라마다 다양한데 주요한 것을 꼽자면, 이중국적 허용, 방송 매체 등에서 소수 언어 지원, 학교·군대·사회 등에서 전통 복장이나 종교 활동 허용, 소수민의 축제나 음악·예술 등을 지원하고, 그 외에도 정치·교육 등에서 소수 인종의 대표성을 증대하는 방향을 추진하는 것 등이다.

좌파들의 혼란

그런데 다문화주의에 대해서 좌파들 내에 혼란이 있다. 특히 프랑스의 히잡 논쟁에서 그 혼란은 크게 드러났다.

1989년에 한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이 히잡을 벗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퇴학당하는 일이 있었다. 2004년에는 아예 공립학교 교내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다. 2011년에는 모든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다.

논쟁은 크게 두 측면에서 이뤄졌다. 첫째는 히잡이 여성 억압적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히잡 착용이 교육과 종교가 분리돼야 한다는 세속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둘째 문제부터 보자면 교육과 종교의 분리는 학교 교육의 공식 커리큘럼에 적용돼야 하는 것이다. 학생 개개인이 특정 종교를 가지거나 표현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유대 학생들이 큰 십자가를 드러내거나, 키파(유대인들이 쓰는 모자)를 착용한 것은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히잡 금지는 명백히 무슬림 차별인 것이다.

첫째 측면에 관해서도 우선 히잡 착용을 단순히 여성차별의 상징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프랑스 지배자들이 알제리를 식민 지배했을 때 전통 복장을 금하자 알제리 여성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히잡을 착용하기도 했다. 프랑스 제국주의에 맞서 무슬림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항의가 표현된 것이었다.

만약 특정 국가에서 법으로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한다면 그것에 저항해야겠지만, 법으로 히잡을 벗으라고 강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억압적이다.

서구 사회에서 무슬림은 가장 천대받는 집단이다. 히잡 착용 금지는 무슬림을 속죄양 삼는 수단으로, 위선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조처일 뿐이다.

그런데도 프랑스 좌파들은 뼈아픈 오류를 저질렀다. 2004년 노동자투쟁(LO)은 히잡이 “여성의 굴종”을 상징한다며 히잡 금지 법안을 지지했고,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반자본주의신당 NPA의 전신)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모호한 입장을 취해,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이라크 전쟁에 맞선 반전 운동이 프랑스에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데에는 프랑스 좌파들의 이슬람에 대한 이런 잘못된 태도가 영향을 미쳤다. 이는 프랑스의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전선이 크게 성장하는 것에 맞서는 데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사회주의자들이 지배자들과 파시스트에 맞서 무슬림을 방어하며, 무슬림과 함께 운동을 건설한 영국과는 대조적이다.

문화 상대주의?

히잡 논란에서 드러난 더 근본적인 논점은 만약 소수 집단의 문화적 관습이 여성의 권리 등 보편적 가치와 충돌하는 듯 보일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와 연결돼 있다. 일부 사람들은 다문화주의는 후진적·보수적 관습도 고유한 문화라며 옹호하므로 보편적 가치를 저버린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슬라보예 지젝은 다문화주의에 반대해 왔는데 최근에는 “서구의 가치(평등주의, 기본권, 언론의 자유, 복지국가 등)”를 옹호해야 한다고 더욱 분명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다문화주의가 다양한 문화 내에 존재하는 여성차별적이거나 비민주적 문화도 무조건 옹호한다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 다문화주의는 억압받는 소수 집단의 권리를 옹호하자는 것이고, 대다수 다문화주의자들이 억압적 관행을 ‘문화’의 일부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억압적 관행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가다. 억압적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의 힘에 기대는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반감을 키워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국가의 힘을 키워 주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흔히 ‘후진적’ 문화를 계몽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침략을 정당화해 온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으로 억압적 관행에 맞서 민주주의와 여성 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힘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에서 나올 수 있다. 1979년 이란 혁명 과정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직장 보육원 등이 추진되며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조처들이 추진됐듯이 말이다.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의 아래로부터 투쟁을 지지하는 관점에 섰을 때 우파의 공격에 맞서 다문화주의를 방어할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억압 받는 소수 인종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서 출발해야, 억압하는 국가의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집단의 노동계급 간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다문화주의는 사회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는 관점을 전제로 문화의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문화를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상호 교류 속에 변해 왔고, 변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농촌이나 제3세계에서 온 이주민들을 빠른 속도로 도시의 노동계급으로 편입시키며 다양한 문화를 끊임없이 재합성한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일자리와 주거, 복지 등을 두고 사람들을 서로 경쟁시킨다. 이를 위해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한다.

특히 냉전이 붕괴한 이후 서구의 지배자들은 무슬림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체계적인 차별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무슬림 배경을 가진 사람들 중에 이런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존감을 지킬 방법으로 스스로 이슬람 정체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이주민 공동체들이 이른바 ‘우월한’ 문화에 순응하라는 압력을 받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렇게 소수 인종이 문화적 공동체를 중심으로 저항을 하려는 방식에 공감할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단결해 인종차별에 맞선다는 전략에는 명백한 약점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소수 인종의 공동체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2010년에 유럽연합 내 무슬림 인구의 비율은 4퍼센트가량이다. 1960년대 위대했던 미국의 흑인 민족주의 운동도 지배계급이 흑인 급진파들을 고립시키면서 파괴한 바 있다. 승리를 위해서는 더 큰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

그런데 무슬림, 중국인, 흑인 등의 고유한 정체성이 강조되다 보면 인종 간의 단결을 저해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이런 분열을 이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문화 공동체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공동체 내의 계급적 적대가 은폐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문화 공동체를 강조하는 전략보다는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오늘날 이주민 집단의 대부분은 노동계급의 구성원이다. 지배계급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때문에 노동자들은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어 단결할 잠재력이 있다.

이렇게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하기 위해 특히 억압하는 국가의 노동계급일수록 다문화주의를 방어하는 것은 중요하다. 억압하는 집단의 노동계급이 자신의 지배계급에 맞서 피억압 집단의 권리를 확실히 옹호할 때 피억압 집단의 노동계급과 단결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주의자들이 다문화주의를 방어하는 것은 특정 인종의 문화 정체성이 고정돼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한다는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태도는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의 민족자결권에 대한 태도에 비춰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레닌은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과 그들이 자신의 문화를 추구할 권리를 옹호했다. 그렇게 할 때 제국주의 지배계급에 맞서 저항을 확대해 억압을 약화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레닌이 민족주의에 무비판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레닌은 민족주의가 “한 민족의 노동계급과 부르주아지를 단결시키고 다른 민족의 프롤레타리아끼리 서로 분열하게 한다” 하고 주장했다. 그래서 레닌은 당시 러시아에서 억압당하던 유대인들에 대해 그들이 자신의 문화(언어, 종교 등)를 누릴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유대 민족 문화 사상에는 반대하며 국제주의를 지지했다.

민족주의에 대한 레닌의 태도처럼 다문화주의에 대해서도 초좌파적이거나 무비판적인 태도로 빠지지 않는 올바른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