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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샌더스 열풍:
“샌더스는 체제에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버니 샌더스는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같은 투사입니다. 그는 체제에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뉴햄프셔주(州)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버니 샌더스가 압승한 직후인 2월 11일, 에릭 가너의 유족이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다. 에릭 가너는 2014년 7월 경찰의 단속 와중에 살해당한 흑인 노점상으로, 같은 해 퍼거슨에서 살해당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과 함께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상징이다.

에릭 가너의 딸이자 여섯 살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에리카 가너는, 자신의 아버지가 경찰에 의해 백주대낮에 거리 한복판에서 목 졸려 살해당한 후 ‘전문 시위꾼’이 됐다. 에리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흑인들]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을 지지할 것입니다. 나는 버니 샌더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에리카가 그렇게 믿는 데는 이유가 있다. 흑인 공민권 운동의 절정기였던 1963년 ‘워싱턴 대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뒤따라 행진하기도 했던 샌더스는, 그 후로도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인종차별에 반대해 왔다.

이번 경선에서도 샌더스만이 ‘경찰이 인종차별적 살해를 저지르면 즉각 처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핵심 요구다), TV 토론에서 인종차별적 살해 희생자의 실명을 언급하며(운동은 주류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항의하며 희생자 실명 언급하기 캠페인을 벌여 왔다) 끔찍한 현실을 폭로했다.

이런 일을 한 정치인은 샌더스가 유일했다(같은 질문을 받은 힐러리 클린턴은 답변을 회피했다). 에리카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클린턴은 그들과 거리를 두는 정치인일 뿐이지만, 샌더스는 그들이 지금 하는 운동을 수십 년 전부터 해 온 “투사”다.

진정성

에리카 가너처럼 최근 몇 년 간 벌어진 운동에 정치적으로 자극받은 청년들이, 수십 년 동안 불평등에 맞서 온 샌더스를 ‘발견’하고 몰려들고 있다.

샌더스 캠프 자원 활동가 17만여 명 중 상당수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참가했던 거리 항의 운동에서 배운 방법대로, 지역 집회에 참가하고, 유인물을 배포하고, 소액 모금으로 지역 신문에 광고를 실어 샌더스 지지 선거운동을 벌인다.

대학생 수전 그랜트도 그런 청년 중 하나다. “제가 처음으로 참가했던 샌더스 지지 집회는 흥미진진하고, 새롭고, 기존 정치와 달랐습니다. … 클린턴은 그저 선거에서 이기려 할 뿐이지만, 샌더스는 세상을 더 낫게 바꾸겠다는 목표가 있어요.”

클린턴 지지자들은 클린턴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여성을 돕지 않는 여성은 지옥 갈 것”(전 국방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젊은 여성이 샌더스를 지지하는 것은 그쪽 진영에 또래 남성들이 더 많기 때문”(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하지만 여성들 사이에서도 샌더스 지지가 더 많다. 사람들은 “[2004년 동성 결혼에 반대했던] 클린턴보다 샌더스가 차별에 더 잘 맞서 싸울 수 있다”(페미니스트 대학생 아리아나 자비디)고 본다.

샌더스는 1983년 벌링턴시(市) 시장 시절 최초의 LGBT 퍼레이드가 벌링턴시에서 열릴 수 있도록 적극 조직하고, 1985년 이후 레이건 정부가 에이즈를 빌미로 성소수자들을 박해할 때도 성소수자 인권을 굳건히 옹호했으며, 1996년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개정된 결혼보호법(결혼을 이성간의 결합으로 한정한 것으로 악명 높다)에 끝까지 반대한 거의 유일한 의원이었다.

그의 행적이 보여주는 일관성 때문에 사람들은 ‘노동자들은 성별과 인종에 따라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샌더스의 주장이 진실되다는 것을 믿고, 샌더스라면 그가 평생 그랬듯 단호하고 끈질기게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한다.

노동조합 기층에서도 반향을 얻고 있는 샌더스 열풍

미국 노동조합 연맹 AFL-CIO와 산하 노조들은 반 세기 이상 민주당 주류를 굳건히 지지해 왔는데, 이번에는 노동운동 안에서 샌더스 지지 기류가 조금씩 돌고 있다. ‘버니를 지지하는 노동자들’ 단체의 활동가이자 우정노조(APWU) 위원장인 마크 다이아먼스틴은 “노동운동 안에 샌더스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환희 정서가 있다”고 밝혔다.

통신노조(CWA) 전 위원장 래리 코헨은 주요 노동운동가 중 최초로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 편을 든 주요 정치 인사는 없다시피 했다. … [그러나] 통신노조와 전력노조(IBEW) 소속 조합원 3만 9천 명이 [미국 최대 통신기업] 버리아즌 와이어리스에 맞서 파업할 때, 샌더스는 지지 입장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조합원 1만 2천 명이 참가한 집회에서 연설도 했다.”

반면 몇몇 대형 노조의 상층 지도자들이 클린턴 지지를 선언하자, 기층에서 격렬한 항의가 터져 나왔고, 엄청난 내홍을 겪었다.

여전히 ‘당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클린턴을 지지하는 노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비롯해 오랫동안 민주당 주류와 친밀했던 대형 사회단체들도 클린턴 지지로 기울어 있다.

그럼에도 ‘아랍의 봄’에 영감을 받아 오바마 정부의 공격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노동자들에게 샌더스는 “99퍼센트의 대변자”다. 그런 노동자들은 샌더스가 국회의원으로 지낸 지난 25년 동안 노동조건 공격·부자 감세·복지 삭감 악법에 맞서 수정안을 많이 제출했던 것 때문에 ‘수정안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을, 그가 경선 공약에 포함시킨 최저임금 대폭 인상·교육 공공성 강화·복지 확대 등이 노동자들 자신의 요구임을 알고 있다.

이들이 보기에 “샌더스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라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래리 코헨)이며, 수십 년 만에 처음 나타난 “노동자 편에 선” 정치인인 것이다.

"'정치 혁명'에 동참하세요" 2016년 1월 30일 샌더스 지지 행진 참가자들. 사진 왼쪽에 민영화 반대 손팻말이 눈길을 끈다. ⓒ사진 출처 goldenalcoff (플리커)

샌더스 열풍이 나아갈 길

샌더스 열풍이 “클린턴의 대관식을 망쳐 버렸”(〈CNN〉)지만, 그의 앞날이 장밋빛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민의가 반영되는 것을 체계적으로 제약하는 민주당의 경선 방식도 샌더스 앞에 놓인 난관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권의 약 15퍼센트는 당직·공직자들로 이뤄진 ‘수퍼 대의원’들의 손에 있다. 이 정치 엘리트들은 각 주에서 치르는 경선의 결과와 무관하게 전당대회에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샌더스의 약진이 놀라움에도 친기업 후보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논평가들의 진단은 이 때문이다.

민주당의 비민주성은 이 당의 계급적 성격 때문이다. 노골적인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은 노동자 민중의 변화 염원을 제 입맛에 맞게 거듭 이용해 왔다. 공민권 운동의 주요 지도자 제시 잭슨 목사가 레이건 재선을 저지하려 1984년 민주당 경선에 도전했을 때도, 2004년에 풀뿌리 반전운동 단체의 광범한 지지를 받은 ‘반전 후보’ 하워드 딘(Dean)이 도전했을 때도, 민주당은 그 염원을 친기업적 후보에 대한 투표 부대로 전락시켰다.

이런 점들을 보면 샌더스가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에서 압승한 직후 연설에서 “경선에서 누가 이기든 공화당 우익을 저지하기 위해 단결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 말대로라면 클린턴이 이길 경우 샌더스의 “정치 혁명”을 자본가 양당의 정쟁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한계 짓게 될 여지가 있게 된다. 실제로 민주당 우파들은 이를 노리고 ‘트럼프가 싫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클린턴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을러대고 있다.

그러나 샌더스 자신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 “대통령 후보 한 명이 아니라 수백만 민중이 다같이 일어서야 ‘1퍼센트’[부패한 대자본가 계급]에 맞설 수 있다.” 오바마에 실망하고 여러 운동으로 정치화해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응원하는 “수백만 민중”의 변화 염원이 지금 미국 정치를 뒤흔드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샌더스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자본가 양당이 주물럭거리는 미국 제도 정치권에서 수십 년 동안 민주당과 독립적으로 민중의 권익을 옹호해 왔다는 그의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샌더스의 선거 도전이 명실상부한 “정치 혁명”을 이룰 대중 운동의 산파가 되려면, 지금 강력히 드러나는 노동자 민중의 염원이 자본가 양당 간의 정쟁 속에 마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른쪽에서도 동요하는 미국 제도 정치

샌더스가 제도 정치 왼쪽에서 친기업 후보 클린턴을 위협하는 한편, 제도 정치 오른쪽에서도 심상찮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해 유력 주자로 자리매김한 대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혐오 발언을 쏟아 내면서 오른쪽으로의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다. 노골적인 우익 정치 단체 ‘티파티’의 지원을 받는 테드 크루즈가 거기서 득을 봐, 아이오와주(州) 공화당 코커스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 교육 수준이 낮고 불황으로 생활 수준이 크게 하락한 데 절망한 백인 하층 노동자 일부가, 위기의 탓을 범죄·이민·무슬림에 돌리는 강경 우익 선동에 이끌리고 있다.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은 그간 강경 우익 선동의 주역이었던 ‘티파티’ 소속 의원들과 독설을 주고받았지만, 실제 국정 운영에서는 ‘티파티’와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 고통 전가·기업 규제 완화를 추진해 왔다. 노동자 민중의 염원은 자본가 양당을 거치며 누더기가 됐고, 제도 정치에 대한 환멸이 자라났다. 스스로를 급진주의자인 양 포장하는 트럼프는 그런 환멸에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자본가들 일부도 이 같은 우경화 흐름을 반기고 있다. 미국 3위 재벌이자 ‘티파티’의 자금줄인 코크 형제는 경선에서 승리한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약 9억 달러(1조 원 이상)를 후원하겠다고 ‘상금’을 걸었다(이 돈만 해도 민주당 경선 후보 전체가 모은 선거 자금 총합의 네 배가 넘는다). 뉴욕시 3선 시장이었던 미국 최대 언론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도 샌더스의 월가(街) 규제 공약을 비난하며 선거 지형을 오른쪽으로 이끌려 한다.

이들은 대중의 절망감과 환멸에 올라타 정치적 기류를 오른쪽으로 틀고자 한다. 그런 절망감과 환멸을 낳는 체제에 맞선 급진적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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