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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과 마르크스주의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고의 침몰설’ 등의 음모론이 제기돼 왔다. 차승일 기자가 음모론이 사이비 이론임을 들춰낸다.

꽤나 오래전부터 음모론은 인기가 있었다. 지배자들의 추악한 부패 추문, 심각해지는 불평등,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한 일들이 팽배한 상황을 보면, 음모론의 유행은 이해하기 그리 힘든 현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하의 소외(‘따돌림’을 뜻하는 세간의 용어법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방법의 용어로서 소외)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모종의 알 수 없는 힘의 지배를 받는 느낌을 강하게 갖는다.

물론 지배자들은 실제로 온갖 음모를 꾸미고 조작을 일삼는다. 예컨대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지배자들이 광범하게 전화 통화 감청 등을 했음을 폭로했다. 음모와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결정이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막후에서 내려지는 일이 흔하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일이 투명하게 처리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음모들은 나중에야 사실로 밝혀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중엽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하면서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 권력자들의 비밀 조직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는 음모론은 그럴 듯해 보이기 쉽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극구 방해하며 온갖 수상쩍은 일을 벌이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보면 온갖 음모론을 믿고 싶은 심정이 강하게 들겠지만, 음모론은 운동 건설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진 출처 해양경찰청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극구 방해하며 온갖 수상쩍은 일을 벌이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보면, “막후 인물들”이 일부러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 아니냐는 김어준의 주장, 잠수함이 들이받아 침몰한 것 아니냐는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의 주장, 심지어 미국이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을 믿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음모가 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 어떤 사건을 음모 중심으로 설명하는 음모론은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인종차별 사상(예컨대 유대인 금융자본설)과 연결된 음모론은 분열을 부추기므로 운동 건설에 해악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음모론의 차이를 살펴보며 마르크스주의가 더 유용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음모론은 세계관, 방법, 실천 면에서 크게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세계관의 차이

마르크스주의와 음모론은 사회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권력자들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관해 서로 매우 다른 관점을 취한다.

대다수 음모론의 핵심에는 극소수 엘리트의 비밀 조직이 사회를 운영하며 중요한 사건들을 일으키고 조종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또, 그 소수의 엘리트들이 개인적·직접적 접촉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며 모든 일에 관여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유대인 금융자본’설은 유대인들이 세계 주요 은행과 금융기관을 장악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경제 상황을 조종한다고 주장한다. ‘빌더버그 클럽의 세계 지배설’도 있다. 데이비드 록펠러(로커펠러), 헨리 키신저(키싱어), 조지 소로스, 벤 버냉키, 빌 게이츠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해마다 한두 차례 극비 회의를 열어 정치적·경제적 중요 결정을 내리고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빌더버그 클럽’은 최근 영국 BBC나 〈가디언〉이 회의 참석자 명단을 공개하며 관심을 끌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도 소수인 지배계급이 사회를 지배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전체 인구의 1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가정해도, 그 수는 한국에서만도 50만 명이 넘는다. 미국에서는 3백23만 명가량 된다.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소수가 이 모두의 활동을 감시하며 조종할 수 있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을 일으키며 통제할 수 있다는 음모론의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이 노동계급 착취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고 본다. 지배계급이 공통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음을 이해하면, 몇몇 구체적 인물들이 꾸미는 음모를 밝히는 데 골몰하지 않더라도 기업주와 국가 관료들의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경쟁적(따라서 강박적) 자본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논리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며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국가는 자국 자본가들의 이익에 호의적으로 반응해 움직이고, 기업주들도 혈연·지연·학연 등을 맺어 국가 관료들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다른 한편, 지배계급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경쟁적 자본 축적 논리에 따라 서로 분열하고 죽도록 경쟁한다. 이 강박적 경쟁이, 거듭되는 경제 위기와 전쟁의 근저에 있는 동역학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그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무정부적인 체제이다.

반면 음모론이 가정하는 세계는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 이 세계에서 ‘우연’이라는 요소는 발붙일 곳이 없다. 그래야만 소수 엘리트의 비밀 조직이 바라는 결과가 그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모론을 “세속적 신정론(神正論)”이라고 한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전상진, 《음모론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2014, 그러나 나는 음모론이 저항 운동에 쓸모가 있을 수 있다는 그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또한 음모론은 지배계급의 극히 일부만을 문제 삼으므로, 아무리 급진적 버전이어도 체제 전체는 인정하는 보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방법의 차이

음모론은 비밀 집단의 존재와 행위를 중요하게 보므로, 특별하거나 숨겨진 지식에 의존하고, 감춰진 사실을 들추는 데 치중한다. ‘빌더버그 클럽’의 비밀 회합에 누가 참석했는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도와 다른 항적도는 없는지, 레이더 영상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괴물체’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내는 데에만 너무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음모론은 자신의 가설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증거를 취사선택하곤 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음모론은 아귀가 딱딱 맞는 듯하지만, 또 다른 증거와 정황을 함께 고려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음모론을 증거를 둘러싸고 반박할 수는 없다. 음모론이 제기한 가설을 반박하는 증거는 (특히 공식적 설명과 비슷한 것이라면) 조작된 것으로 치부할 터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음모론은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물론 《자본론》 등 여러 마르크스주의 문헌은 대다수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주류 언론과 학계가 무시하는 혁명의 역사나 노동자·민중의 투쟁 소식 등은 널리 알려져야 하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널리 알려져 있고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사실들에 근거를 두지, 감춰진 사실을 들춰내는 데 골몰하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사실을 주류의 시각과 달리 해석하고, 그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 애쓴다. 이 점은 중요하다. 체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가지려면 그 비판이 대중의 경험과 연관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세계) 노동계급의 (역사적)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다.

방법 면에서 음모론의 둘째 문제는 공식적 설명에 이견을 제시할 뿐, 대안적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주장하는 김어준은 최근 자신의 인터넷 방송 앞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세월호 관련해서 지난 1년 반 가까이 추적을 해 왔는데, 마지막까지 잘 안 풀리는 부분이 이런 거였어요. 항적도를 조작하고 여러 가지 데이터를 조작했는데 결국 왜 했느냐는 거죠. … 오늘 그 왜에 해당하는 마지막 퍼즐이 풀립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그는 그 방송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는 사실 정부가 밝힐 일이에요. 우리는 조사권이 없으니까.”(〈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 2016년 1월 15일)

음모론이 대안적 설명을 내놓지 않는 까닭은 지배계급의 행위에 관한 객관적 논리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모론은 최신의 폭로 자료를 (확증편향적으로) 확보하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의 주장을 비판하고 논박하는 동시에 대안적 설명을 내놓기 위해 애쓴다.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설명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대표적 사례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설명도 있다. 통킹만 사건이 조작이냐 아니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공산당이 권력을 잡고 북동쪽으로는 북한 정권을 지원하고 남서쪽으로는 북베트남의 공산당을 지원하는 상황, 남베트남에서 베트남 공산당과 연계된 민족해방전선이 성장하는 반면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 정권은 붕괴가 확실시되는 상황,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성공이 성장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었던 상황, 미국이 이미 1960년대 초부터 병력 1만 명 이상과 많은 무기를 베트남에 투입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미국 지배자들이 이른바 ‘공산진영’의 확장을 저지하고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베트남을 침공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또, 1950년대 미국이 한국 전쟁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며 재미를 봤던 것도 전쟁 결심에 한몫했을 것이다.

음모론이 대안적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는 논의를 확장하면, 음모론은 역사 발전에 관한 일반적 이론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음모론은 역사를 단지 음모의 연속으로 본다. 그러므로 음모론은 사회와 역사의 변동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패턴을 설명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그 이전 체제가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변증법과 유물론을 역사에 접목한 역사유물론으로 인간의 역사를 설명한다.(역사유물론에 관해서는 최일붕,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소외, 변증법, 역사유물론》, 노동자연대다함께, 2013을 참고하시오.)

실천의 차이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사회의 변혁을 위한 실천에 도움이 되는 전략이 없다. 그저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한 음모가 있음을 알릴 뿐이다.

또한 음모론은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고자 한두 가지 사실에만 열중하다가 중요한,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또 다른 사실들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노엄 촘스키는 9·11 사태를 둘러싼 음모론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음모론은 이상한 것에 우리를 몰두하게 만듦으로써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실제적 탐구와 정치적 행동을 방해할 뿐이다.” (전상진, 《음모론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2014에서 재인용)

더 나아가 음모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기 시작하면 운동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과 반박은 지배자들의 사주를 받은 것이거나 적어도 지배자들의 음모에 놀아나는 행태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지난 1백50년 이상의 노동운동 경험에서 이끌어 낸 계급투쟁 이론과 혁명적 전략이 있다. 예를 들어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 레온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 레닌의 ‘혁명적 정당의 구실’, 레닌과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등은 현재의 실천에도 도움이 되는 영감과 조언을 준다.

이 글의 서두에 썼듯이, 여러 음모론이 유행하는 현상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핵심적으로는 소외 때문이다. 또한 지배계급이 여러 음모를 획책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력한 비밀 결사체의 존재를 가정하기보다는, 지배자들의 음모가 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과 모순이라는 더 큰 틀 속에 자리매김할 때,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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