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우파 언론의 “가짜뉴스”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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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12월 14일자 신문 1면에 “가짜뉴스에 민주주의가 죽어간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주문했다.
“극단 세력이 만들고 정치권이 편승하고 지지층이 맞장구 치는 ‘가짜뉴스’의 악순환이 확산하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청담동 술 자리’ 의혹, 정부의 주요 결정에 대한 역술인 ‘천공’의 개입 의혹 등을 들었다. 우파가 만든 가짜뉴스 사례도 언급했지만 구색 맞추기였다.
가짜뉴스에 대한 비난과 규제 촉구는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윤석열은 MBC의 비속어 발언 보도를 두고 “가짜뉴스”라고 직접 공격했다.
얼마 전 학술원 간담회에서는 “가짜뉴스를 추방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디지털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실은 ‘천공 개입’ 의혹을 제기한 김어준 씨와 김종대 전 의원을 고발했다.
한동훈은 ‘청담동 술 자리’ 의혹을 제기한 〈더탐사〉를 압수수색하고, 〈더탐사〉와 민주당 김의겸 의원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권위주의적 행태
그러나 가짜뉴스는 엄밀하게 규정해야 한다. 정부나 우파가 의도적으로 가짜뉴스 용어를 오·남용하면서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비판을 싸잡아 가짜뉴스라고 매도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보통 허위 정보를 뉴스의 형식으로 의도적으로 만든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오보나, 근거 있는 의혹 제기, 다양한 의견 표명과는 다르다.
설령 어떤 의혹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단순히 가짜뉴스라고 할 수 없다.
MBC의 비속어 보도를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가짜뉴스로 공격한 것은 윤석열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여 줄 뿐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태원 참사를 “압사”가 아니라 “사고”라고 쓰라고 한 것을 비판한 보도들에 대해 얼마 전 대통령실이 “단순 행정적 용어 통일”에 불과한 것이라 반박하며 “가짜뉴스”, 법적 대응 운운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청담동 술 자리’ 의혹이나 ‘천공 개입’ 의혹도 사안의 중요성과 보도의 설득력 여부와는 별개로 단지 의혹 제기만으로 처벌받아야 할 일은 아니다.
메스꺼운 위선
게다가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의 가짜뉴스 비난은 위선적이다.
그들이야말로 밥 먹듯이 사실을 맥락에서 떼어 내거나 비틀고 침소봉대해서 진실을 왜곡해 오지 않았던가?
가장 최근 〈조선일보〉의 행태만 봐도 그렇다. 〈조선일보〉는 고물가·고유가의 절박한 고통에 맞선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물류 인질 잡고 정치투쟁”이라고 비난하고(11월 23일자), 화물연대 한 조합원이 운행 중인 화물 차량에 쇠구슬을 쏜 것을 두고 “테러”라고 침소봉대하며(11월 28일자), 앞장서서 파업을 비난했다.
또, 한 언론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 “2차 가해 범죄”라고 게거품을 물었다(11월 17일자 사설).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지목한 것에 대해선 “기상천외 억지 논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12월 15일자 김창균 칼럼).
〈조선일보〉가 가진 영향력은 여느 가짜뉴스 생산자보다 막강하다. 따라서 그 해악도 더 크다.
사실, 부가 한줌의 소수에 집중돼 있고 계급적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충돌하는 이 체제하에서, 소수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고 기존 질서와 기구를 지키는 데 이바지하려는 〈조선일보〉가 애초 온전한 진실을 보도할 수가 없다.
물론 오늘날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현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체제의 위기가 심화하고 기성 체제와 기존 질서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가짜뉴스가 부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 내 이전투구가 심해질수록, 권력자들은 상대를 공격하고 지지층을 결속시키기 위해 가짜뉴스를 부추기며 유용한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짜뉴스의 상당수는 반동적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엽말단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구체적인 증거 찾기에 확증편향적으로 몰두하기 십상이다. 이것은 노동계급 투쟁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진짜 타깃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가 가짜뉴스를 비난하는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그들은 가짜뉴스를 비난하면서 정부를 향한 의혹 제기를 막고, 노동자 등 서민 대중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그럼으로써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선 저항을 약화시키고 싶어 한다.
〈조선일보〉 등 우파는 아래로부터 대중 행동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짜뉴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민주주의”도 본디 의미인 ‘다수의 지배’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민주주의를 “타협과 공존의 산물”이라고 했는데, 국회에서 기업인들과 부유층을 위한 법안을 놓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타협하고 조율하라는 뜻이다. 두 정당이 하루빨리 부자 감세 예산안과 산적한 노동·연금·교육 개악 법안들을 처리하라는 주문이다.
우파 정부와 언론의 위선적인 가짜뉴스 비난(그리고 그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처벌 촉구)에 속지 말아야 한다.
가짜뉴스에 대한 더 일반적인 글은 본지 337호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본 가짜뉴스 문제’를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