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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플갱어》:
미국 극우 음모론의 작동 방식을 파헤치다

나오미 클라인은 《노 로고》,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옛 제목은 ‘쇼크 독트린’),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대 기후》,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 등의 저서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좌파 지식인이다.

이번 책의 제목 ‘도플갱어’는 나를 꼭 닮아서 사람들이 나로 착각하는, 그러나 내게 적의를 품은 분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가 도플갱어 개념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나오미 클라인)를, 한때 진보적 페미니스트로서 ‘체제’를 비판했지만 이제는 극우 백신 음모론의 선봉장이 된 나오미 울프와 혼동한 것이다. 두 나오미는 이름과 나이, 외모뿐 아니라 ‘체제’ 비판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도 닮아 있다.

《도플갱어》 나오미 클라인 지음, 글항아리, 612쪽, 28,000원

저자는 이 책에서 도플갱어 개념을 바늘 삼아 코로나19 팬데믹과 백신 음모론, 실제 자아와 SNS 자아,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 등 사뭇 다른 주제들을 관통한다.

한국어판의 부제 ‘우파라는 거울 이미지를 마주한 미국 좌파의 딜레마’는 이 중 미국 극우의 백신 음모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중심 테마인 만큼 본 서평도 이를 중심으로 쓰겠다.

저자가 보기에 극우의 음모론이 좌파 주장의 도플갱어인 이유는 극우가 좌파들의 대형 제약회사나 정부, 자본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흡수한 후 얼핏 보면 유사한 것으로 만들어 내놓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저자의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근데 이상하단 말야. 전에는 누가 파시스트고, 반파시스트인지 구분할 수 있었어. ... 근데 이젠 파시스트들이 우리 언어를 아예 베껴갔어. 말문이 다 막힌다니까.”

저자는 트럼프의 백악관 수석전략가 출신의 극우 인사 스티브 배넌의 팟캐스트 〈워룸〉을 수백 시간 청취하며 그들의 이런 선전 전략을 분석한다. 이를 다루는 2부 내용이 특히 흥미진진하다.(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음모론은 이론적 정합성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코로나가 중국이 개발한 위험천만한 생물 무기라는 주장과 코로나는 감기에 불과하므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공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사실은 틀리게 보고하지만 느낌은 제법 맞히는 편이다.” 현실이 뭔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직감만은 족집게처럼 포착해 낸다. 좌파가 이런 부당함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수록 극우의 음모론이 위력을 더 발휘한다고 나오미 클라인은 지적한다.

예컨대 코로나 시기에 정부는 모든 방역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겼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합리적 우려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일반 학교와 가게는 문을 닫는 가운데서도 각종 쇼핑몰과 카지노는 지장 없이 운영됐다.

좌파는 마스크와 백신의 필요성을 옹호하면서도 이런 현실에 문제제기를 하고 나아가 안전한 수업을 위한 교실 정원 감축, 정신 건강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휴양 프로그램 투자 등 집단적 보살핌을 위한 변화를 요구할 수 있었다. “자유·진보주의자 다수는 ... 기존 조치를 변호하는 데 그쳤는데 사실 더 많은 걸 요구할 수 있었고 요구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딱히 극우가 아니었던 웰빙 인플루언서, 요가와 헬스장 운영자들이 코로나 백신 음모론 전파에 앞장섰던 직군으로 두드러진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자영업자로서 경제적 좌절감을 겪었을 뿐 아니라, ‘개인의 건강은 개인이 챙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건강 논리에 충실한 직군이었다. 정부가 집단적 보살핌을 위한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 않으면서 개인들에게 록다운 등의 조치로 희생을 강요하자 그들은 분노를 쏟아 낼 대상이 필요했고 음모론이 바로 그들에게 “외부의 적”을 제공한 것이다.

또한 극우의 음모론은 몇몇 지배자들(질병관리청장, 백신업계를 옹호하는 빌 게이츠 등)을 비난하지만, 그 비난은 체제의 작동 방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그 결과, 그 지배자들에게 부와 권력을 안겨준 체제를 정작 숨겨 주는 효과를 내고, 그래서 지배자들 일반은 음모론으로 이득을 얻는다.

이런 분석은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늘날 선거 부정론 등 극우의 음모론이 부상한 데는 전임 문재인 정부 집권기에 켜켜이 쌓인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좌파가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것이 일조했다.

한편, 저자의 시선은 극우만을 향하지 않는다. 이 책은 곳곳에서 “민중운동들이 내부에서 자기네끼리 치고받으면서 풍비박산 나버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우리는 차이가 발생하면 갈가리 찢어질 작정으로 꼬투리를 물고 늘어져 치고받고 싸운다. 작은 견해차도 대의적으로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러니 진보 진영 내에서 터진 충돌은 적시에 해결되지 않으면 타깃 당사자들은 따돌림당하거나 위험에 처할 정도다. 하지만 이쪽 사람들이 정도가 지나치게 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4부에서 저자는 민중운동들의 단결을 호소한다. 그러면서 공동의 투쟁으로 “우리가 개인주의와 각자 정체성의 특색에서 탈주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대형 시위, 파업, 집회 등의 대중 행동이 권력층에게 일침을 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참여자들에게도 “그들이 개별 자아의 제한된 역량에 그치는 한낱 개인이 아니라 ‘어떤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운동 속에서 단결하고 그럼으로써 운동의 분열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저자의 호소는 분명 귀 기울일 만하다.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보다 극우에 맞선 단결이 더욱 화급해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아쉽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바로 저자가 말하는 단결을 어떻게 이룰 수 있냐 하는 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이 과제에서 우리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동전선 전통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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