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논쟁:
다윈의 변증법 사상과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 독자의 진화심리학 관련 문제제기에 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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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노동자 연대〉 신문 독자인 권호창 씨가 〈노동자 연대〉에 실린 진화심리학 비판 기사에 비판적 견해를 밝히는 독자편지를 보내 왔다. 〈노동자 연대〉는 이 편지를 해당 기사의 필자에게 전달했는데, 최근 필자인 최규진 씨가 한선희 씨와 공동으로 독자의 견해에 답하는 글을 〈노동자 연대〉에 보내 왔다. 이에 권호창 씨의 글과 한선희·최규진 씨가 보내 온 글을 모두 게재한다. 권호창 씨가 또 의견을 보내 온다면 그 글도 실을 것이다. 아래는 한선희·최규진 씨가 보내 온 글이다. 권호창 씨의 글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우선, 권호창 씨의 마지막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가 사회 변혁 운동과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관점에서 인간 본성을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권호창 씨가 지지하는 진화심리학이 과연 인간본성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과 부합하는지 묻고 싶다. 마르크스까지 갈 것도 없이 진화심리학이 찰스 다윈의 이론과 부합하는가?1 이를 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진화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과학적 사실’임을 강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간이나 폭력과 같은 현대인의 반(反)사회적 행동을 다룰 때면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로서 하나의 과학적 사실이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2
이 글에서는 진화심리학의 핵심 주장 두 가지만을 검토할 것이다. 하나는 “인간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 분업과 같은 인간 본성은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지 않으며 보편적이다”라는 것이다. 다윈의 이론과 현대 고고학 연구들에 바탕해서, 진화심리학이 인간본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점진론의 함정에 빠진 인간본성론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이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임을 강조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서 다윈의 점진적인 진화 개념을 제시한다. 점진론(gradualism)은 진화가 수천수백만 년에 이르는 지질학적인 시간대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일컫는다. 지질학적인 시간대에서 대략 1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는 찰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진화심라학자들은 겨우 1만 년의 역사적 경험으로는 인류의 본성이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원시인의 본성이 변하지 않은 채 현대인의 심리와 행동에 잔존한다고 주장한다. 즉 본성이 변하려면 인류의 역사적 경험이 수백만 년의 장구한 시간 속에서 축적돼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점진론에 입각해서 인간 본성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진화심리학의 논리는 다윈의 이론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다. 물론 다윈이 점진적인 진화론의 주창자인 것은 맞다. 그는 자신을 열렬히 지지했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로부터 “점진론을 불필요하게 강조해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충고를 들을 만큼, 점진적인 진화 개념에 집착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윈이 점진론을 강조했던 이유는 자연의 역사에 대한 성서 해석(지구는 불과 4천~6천 년 전에 창조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을 비판하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다윈은 창조론자들이 생명체의 눈은 너무도 정교해서 신의 설계가 아니고서야 자연적으로 그런 구조와 기능을 갖출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점진적인 진화 개념을 이용해서 명쾌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점진론은 유기체의 해부학적인 구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다윈은 유기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모두 점진론의 관점에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유기체의 골격 구조와 달리,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나 인간의 본성과 같은 정신적인 속성들은 환경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변이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윈 시대의 생물학적인 결정론
다윈이 점진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본성에 접근했다는 사실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종의 기원》(1859)과 《인간의 유래》(1871)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종의 기원》은 인간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동물의 본능이 빠르게 변이를 겪는 현상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빅토리아 왕조(1837~1901)가 ‘유물론자탄압법’3과 같은 억압 기제를 이용해서 인간 정신에 대한 유물론적인 접근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 7장, 「본능」의 장 첫머리에 자신의 연구가 “인간 정신의 기원이나 심리(mind)의 문제를 다루려고 한 것이 아니다”(《종의 기원》, 219쪽)라고 애써 부정해야만 했지만, 당시 동물의 본능에 관한 연구는 인간본성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었다.4
동물의 본능(instinct)과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이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다윈은 둘 다 타고나며 유전된다는 공통점에 주목했다. 동물과 인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동물의 본능이 쉽게 변할 수 있는 자연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본성이 변하는 원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동물의 본능에 관해서만 다루었던 내용을 말년에 《인간의 유래》에서 인간 정신에 적용해 본능이나 본성이 빠르게 변하는 원리를 일반화했다.
《종의 기원》에서 본능에 관한 다윈의 핵심적인 주장은 2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본능이 지질학적인 시간대에서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세대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속에서도 급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점진적인 진화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과 상반된다. 즉 진화심리학자들은 본성을 운운할 때마다 다윈의 점진론을 주문처럼 읊고 있지만, 정작 다윈은 같은 주제를 분석할 때 점진론의 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 둘째, 다윈은 같은 종(種, species) 내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본능의 사례를 들어,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본능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본능의 다양성에 대해 강조했다(《종의 기원》, 219쪽).
여기서 다윈이 왜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평생에 걸쳐 본능과 본성이 비교적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5 그 이유는 다윈이 살았던 시대에도 진화심리학의 논리와 유사한 주장이 인간 본성에 관한 담론을 지배하며 대중적으로 유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창조론을 옹호하는 자연신학자들과 타고난 두개골이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믿는 골상학자들이 오늘날 진화심리학자들처럼 ‘인간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다.
먼저 창조론자들은 ‘해부학적인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는 해부학의 오래된 도그마를 자신들의 기독교 가치와 결합해 본성이 변할 수 없는 논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두뇌나 두개골과 같은 유기체의 해부학적인 구조를 창조주의 완벽한 설계도로 여겼다. 즉 해부학적인 구조는 신의 완벽한 설계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수정(변이)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러한 구조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두뇌의 기능에 해당되는 타고난 본성도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다윈은 「본능」의 장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 본능(기능)이 해부학적인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성을 지닌다는 수많은 근거를 들어 창조론자들의 논리를 반박했다. 즉 본성은 두개골이나 신체 구조가 먼저 변하지 않더라도 그것과 무관하게 변이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윈은 골상학자들의 반(反)기독교 가치와 유물론을 지지하는 급진주의에 공감하면서도, 골상학자들이 창조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인 결정론의 관점에서 인간 본성의 문제를 접근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는 골상학자들이 타고난 두개골을 측정해 지적 능력이나 기질, 성격 그리고 범죄와 같은 행동 패턴을 알아낼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재닛 브라운, 《다윈 평전》, 130쪽). 이처럼 다윈의 연구는 오늘날 진화심리학자들처럼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든가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19세기 사람들의 생물학적인 결정론을 비판하려는 문제의식 속에서 이루어졌다. 다윈은 인간 본성에 관한 지배적인 담론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증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 본성의 가변성에 관한 대안이론을 제시했다.
본성이 변하는 변증법적 메커니즘
다윈의 대안이론은 고전적인 논쟁 가운데 하나인 ‘본성 vs 양육’ 쟁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점진론에 입각해서 선천적인 본능은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본성론이다. 이에 맞서 로크의 ‘빈 서판(blank slate)’ 이론처럼 선천성을 무시하고 교육이나 학습과 같은 후천적인 요인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문화주의자들의 견해는 양육론에 해당된다. 다윈은 양육론자들과 달리, 타고나는 본능이나 본성 가운데 변하지 않는 형질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처럼 유전자의 영향이나 점진론에 기초해서, 타고나는 모든 본능이 쉽게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의 관심은 다양한 본능 가운데 비교적 빨리 변이를 겪는 현상에 주목해, 타고난 본능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그러한 형질을 후대에 전달하는 원리를 소위 본성과 양육 사이의 변화무쌍한 관계 속에서 보여 주는 데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신경학자이자 다윈의 변증법적인 생물학 사상을 소개해 온 스티븐 로즈(Steven Rose)가 말한 바와 같이, 다윈은 선천적인 ‘유전’과 후천적인 ‘발달’을 진화 이론 안에서 하나로 통합시켰다(스티븐 로즈, 79쪽). 다윈은 지능(intelligence)을 타고난 본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동력이자 유전과 발달의 연결고리로 보았다. 일반적으로 지능은 관념·사유·판단과 같은 고등한 정신능력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국의 감각주의 사조에 영향을 받았던 다윈은 지능이나 지식이 보고, 듣고, 만지는 등의 감각활동(더 정확한 의미로는 감각자극-반사 운동)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두뇌 없이 감각에만 의존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지렁이와 같은 하등한 동물들에게도 지능이 존재할 수 있었다. 즉 지능은 두뇌가 출현하기 이전에 혹은 그것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다윈은 지렁이에게 지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사망하기 1년 전에 출판한 마지막 저서,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1881)에서 지렁이가 타고난 본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인위적인 환경의 변화)을 조성해 주고 지렁이가 기존의 본능적인 행동을 수정해 변화된 환경에서 도출된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88~89쪽). 즉 다윈은 지능이란, 변화된 환경에서 기존의 본능이 더 이상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때, 유기체가 감각활동을 통해 변화된 환경을 인지하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보았다. 그는 지렁이의 본능적인 행동에서 지능의 원형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처럼 다윈은 지렁이 실험을 통해 지능과 본능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본능은 타고난다고 해서 고정불변의 형태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지능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빌려 변하기도 한다. 다윈의 이러한 통찰은 현대 뇌과학 연구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두뇌의 가소성(plasticity) 개념과 맞닿아 있다. 다윈은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두뇌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멸종한 이유에 대해 두뇌의 크기나 구조보다 그것의 기능, 즉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인간의 유래》, 109~110쪽).
비슷한 맥락에서 현대인의 두뇌와 석기 시대 원시인의 두뇌는 크기나 구조상으로 거의 변한 것이 없지만 양자의 두뇌 활동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각각의 사회에 걸맞는 생활방식과 생존에 필요한 행동양식이 출현했으며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조금씩 변형된 속성들이 후대에 전달됐다. 심지어 지렁이조차도 다윈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과감히 기존의 본능적인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었는데, 하물며 이에 비교할 수 없는 가소성을 지닌 인간의 두뇌는 훨씬 더 주변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진화심리학뿐만 아니라 그것과 이론적 동맹을 맺고 있는 인지철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와 유전자 결정론의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두뇌의 가소성에 대해 부정하거나 무시한다. 이들은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찾기 위해 원시인의 뇌 구조로부터 거의 변한 것이 없는 현대인의 뇌 구조에 천착하고 있다.
‘보편적인’ 본성론에 내포된 이데올로기
다윈은 동물의 본능이 한 종(種, species) 내에서도 너무나 다양해 소위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본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즉 본능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이를 겪기 때문에 보편성으로 수렴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본성론에 내포된 ‘유전자 결정론’과 같은 정치적 함의를 주목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완전히 동일한 의미는 아니지만 ‘보편성’을 ‘단일성’으로 바꾸어 적용해 보자. 진화심리학의 단일한 인간본성론의 핵심은 현대 인류는 인종적·문화적·역사적 경험과 상관없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種, species)’, 즉 단일한 인간 게놈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문제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유전자와 같은 생물학적인 정보가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인간본성론은 인간 게놈의 역할을 과도하게 일반화한 유전자 결정론에 바탕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 다윈이 왜 “본능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단언했는지 종교가 세속적인 영역을 지배하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창조론은 신이 인간을 포함해 각 각의 종을 따로 만들었고, 각 종은 ‘단일한’ 설계도에 따라 창조됐기 때문에 본성은 보편적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창조주는 딱따구리가 나무를 잘 오르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딱따구리라는 종은 모두 나무를 잘 오르는 보편적인 본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다윈이 살았던 시대의 창조론자들은 이처럼 신의 맞춤형 설계를 옹호하기 위해 동물의 본능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다.
다윈은 설계론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창조론자들이 설계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연세계와 부합하지도 않는 본능의 보편성을 제기하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창조론자들이 보편적인 본능이라고 제시하는 사례만큼 반증하는 사례들을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례들, 가령 나무를 오르는 딱따구리의 본능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나무를 오르지 못하는 딱따구리’ 사례들을 소개하는 집필활동을 말년에도 멈추지 않았다.6 이처럼 다윈이 왜 이렇게 집요하고 지루할 정도로 변칙 사례들을 찾는 일에 몰두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보편적인 인간본성론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지배자들이 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적용하는 데 용이했다. 다윈이 살았던 19세기에는 창조주의 설계론과 그리고 21세기의 진화심리학은 유전자가 몸과 정신을 지배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의 이데올로기와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었다.
성별 분업, ‘의심스러운’ 보편적인 인간 본성
다윈은 본능의 다양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 본성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자들은 원시 인류의 본성이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이라는 ‘보편적인 환경’에서 적응됐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른바 ‘진화적 적응 환경’(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edness, 이하 EEA)에 관한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 본성은 지질학적인 연대기로서 홍적세(지금으로부터 1만~180만 년 전)의 어느 한 시기에, 그리고 공간상으로는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형성됐다.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사바나 초원의 수렵채집 방식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분업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 보자. 여기서 쟁점은 “원시인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수렵채집이었는가?”가 아니라, 사바나 초원이라는 환경에서 설정된 대형 초식동물을 쫓는 사냥꾼으로서의 건장한 남성과 채집 활동에 적응돼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보편적인 기원이 존재하는가이다.
먼저 홍적세 때, 원시 인류는 1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프리카 초원이라는 보편적인 환경에만 노출돼 있었는지 간단한 질문을 던져 보자. 이와 관련해서 최근 첨단 장비와 유전공학 기술을 동원해, 홍적세 시기 원시 인류의 삶의 공간을 연구하는 고인류학 분야의 ‘제노그래픽 프로젝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다윈이 140여 년 전에 이미 언급했던,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마음과 생활습관이 끊임없는 이주와 다양한 환경에서의 적응으로 쉽게 변할 수 있다(《인간의 유래1》, 100쪽)고 말한 것을 21세기 경험적 자료로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제노그래픽’(Genographic)은 유전학(gene)과 지리학(geographic)의 합성어로서, 현대 인류의 유전자 샘플을 분석하여 EEA 가설에 등장하는 원시 인류의 이동경로와 지리적 분포를 연구한다. 이 연구의 핵심 메시지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듯 200만 년 전 사람 속(屬)의 최초 인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사바나 초원이라는 보편적인 환경에서 오랫동안 정착했던 것이 아니라, 홍적세 시기 내내 계속해서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초원지대 외에도 해안가, 한랭한 산악지대, 열대 기후의 숲과 같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각각에 걸맞는 수렵채집 문화를 영위했다는 데 있다.
특히 제노그래픽 연구를 포함해서 현대 고인류학 연구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삶의 방식을 체득했던 진화적 환경으로서 사바나 초원보다는 아프리카의 해안가를 주목한다. 20만 년 전, 홍적세 말기에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는 그 무렵 빙하기의 도래와 함께 점점 쇠락해 인류가 거의 생존할 수 없는 사막지대로 변한 사바나를 떠나야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프리카 탈출의 주요 동력이자 호모 사피엔스의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도록 자극했던 것은 기후변화라는 환경적 요인이었다. 홍적세 시기의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고기후학(paleoclimatology)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20만 년 전의 기후는 수차례 급격한 변화를 겪다가 겨우 2만 년 전에 이르러서야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최초의 남자》, 136~138쪽).
선사 시대 기후 데이터는 EEA 가설의 진화적 환경이 푸르른 초원이 아닌 황량한 사막지대였다는 것을 말해 주며, 우리의 원시 조상들이 그곳을 버리고 해안가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가령 빙하기 기후가 아프리카 중부까지 하강하자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남부의 해안가,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피너클 포인트’라는 해안지대로 이주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BBC 다큐, 《인류의 탄생 3부》).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원시인들이 사바나 초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주 이른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사바나를 벗어나 다양한 삶의 환경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사막화로 인해 사냥이 가능했던 대여섯 곳의 사바나 지역에서 남아 있던 원시인들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듯, 남성 주도의 사냥과 여성의 채집 활동을 중심으로 살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고인류학 연구가 입증하는 바와 같이, 호모 사피엔스의 소규모 군집들은 대부분 사막지대의 사바나를 떠나 피너클 포인트와 같은 해안지대로 이주해 엄격한 성분업의 이미지와는 무관한 생산 활동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지역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들이 남긴 삶의 흔적은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했을 만한 해산물 채집이나 작은 동물의 사냥과 근거리에서 물고기를 포획하는 수준의 수렵채집이었다.(BBC 다큐, 《인류의 탄생 3부》)
요컨대 홍적세 때 원시인들은 수렵채집 활동에 의존해서 살았지만, 그들의 삶의 공간이 보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수렵채집의 방식도 환경에 따라 다양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바나 초원의 수렵채집 방식을 보편적으로 설정해 그로부터 인간 심리와 행동의 보편성을 이끌어 내는 진화심리학의 EEA 가설은 근본적으로 회의적이다.
인간의 의식, 자연선택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
생물학은 인간 정신의 어느 범주까지 설명할 수 있으며, 다윈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답했는가. 의식과 자유의지의 문제는 다윈과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근본에서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윈과 마르크스의 공통된 사유방식을 발견할 수 있는 단초이기도 하다.
사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 본성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대부분 의식이나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다. 의식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적·역사적으로 형성되는 사물이나 일에 대한 개인적·집단적 감정 혹은 견해나 사상”인데,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 마음, 감정, 그리고 그에 기반한 행동들과 상통한다. 사전적 의미와 진화심리학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는 의식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반면, 진화심리학은 의식을 본성으로 각색시켜 선천적으로 타고나며 유전자와 같은 생물학적인 정보에 의해 결정돼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데 있다. 진화심리학과 긴밀한 이론적 동맹을 맺고 있는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과 스티븐 핑커와 같은 인지철학자들 역시, 인지능력이나 감정 심지어 종교와 같은 믿음 체계까지 타고난 정신적 속성으로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낯선 사람을 처음 접할 때 그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원시인 때부터 적응된 모듈 형식으로 본성에 내재돼 있다고 주장한다(딜런 에번스, 《진화심리학》, 151~154쪽). 또한 남성들은 젊고 건강한 신체 구조를 지닌 여성을 배우자로 선호하고 여성은 젊어 보이는 외모보다 남성의 경제적인 능력을 중시해 배우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즉 누가 사기꾼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배우자로서 적합한지에 관한 판단은 사회적 경험이 아닌 EEA 가설의 수렵채집 문화에서 적응된 본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의식의 영역까지 생물학적으로 결정돼 있다고 보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는 현대인이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 비롯하는가라는 질문에 석기 시대 인류의 심리와 행동 속에서 찾으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윈은 의식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그는 《인간의 유래》에서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생물학의 법칙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이나 도덕과 같은 의식의 영역에서 작동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인간의 유래1》, 222쪽). 물론 다윈은 도덕의 자연사적 기원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정신도 진화의 산물임을 인정했다. 즉 도덕이나 이타심처럼 어려움에 처한 동족을 도우려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은 개미들이 목숨을 걸고 적과 맞서 싸우며 헌신적으로 알을 돌보는 등의 ‘사회적 본능’에서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본능은 진화심리학자들이 강조하는 점진적인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그러나 다윈은 사회적 본능과 도덕과 같은 의식의 영역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본능이 도덕성과 같은 일정한 단계로 발전하면 더 이상 자연선택이 작동하지 않고 오로지 문화적 요인에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인간의 유래1》, 222쪽). 즉 다윈은 진화심리학자들처럼, 인간의 본성이 사회적 본능과 같은 생물학적인 기원의 직접적인 결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는 이타심이든 이기심이든 사회적 본능의 원시적 형태들도 잔존하지만, 의식이나 도덕심에 따른 감정이나 행동들(진화심리학자들이 인간 본성에 포함시킨 것들)은 인간이 사회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이른바 문화적 실천을 매개로 해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자연과 사회(혹은 본성과 양육, 선천성과 후천성)를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고정변수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관계로 보았던 다윈의 통찰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인 사유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질은 “개인에 내재된 추상물이 아니며, 사회관계의 총체”이고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보았듯이, 의식은 단순히 형이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반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인간의 본성(혹은 의식이든 두뇌의 기능이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수십만 년 전 원시인의 심리와 행동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내가 속한 ‘사회’의 구체적인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지난 2백여 년 동안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추동했던 자본주의 체제 내의 관계들이 현대인의 심리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또 그러한 요인들이 반대로 사회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다윈이 인간의 의식과 노예제라는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우리의 죄가 사악하다”고 말했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번역된 참고문헌
- 바이런 스와미, 애드리언 펀햄, 《이끌림의 과학: 아름다움은 44사이즈에만 존재하는가》, 알마, 2010.
- 박성관, 《종의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그린비, 2010.
- 스티븐 로즈·힐러리 로즈,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세포·뇌》, 바다출판사, 2015.
- 스티븐 로즈 외 《새로운 뇌과학》, 한울아카데미, 2010.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
- 스펜서 웰스,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 말글빛냄, 2007.
- 재닛 브라운, 《찰스 다윈 평전》, 김영사, 2010.
- 존 벨라미 포스터 외, 《다윈주의와 지적설계론》, 인간사랑, 2009.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동서문화사, 2009.
-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한길사, 2006.
- 찰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관하여》, 서해문집, 1998.
- 찰스 다윈,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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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대중적인 과학저널을 통해 다윈의 급진주의 생물학 이론을 소개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고(故)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6~2001)는 1970년대 사회생물학과 1990년대 진화심리학이 다윈의 적응(adaptation) 개념을 남용하는 오류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유기체의 형질이 잔존해 온 이유를 모두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방식이 다윈의 이론보다는 오히려 자연선택설의 공동발견자인 알프레드 월러스나 사회진화론의 주창자 허버트 스펜서가 강조했던 적응주의와 유사하다는 점을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분석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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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진화심리학 박사1호로 알려진 경희대 전중환 교수는 강연과 다양한 집필활동을 통해 진화심리학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그의 글에서는 진화심리학에서 설명하는 현대인의 심리와 행동이 진화론에 바탕을 둔 과학적 설명이라는 레퍼토리 수사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강간이나 성매매 그리고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들을 다룰 때는 이런 수사들이 공식처럼 등장한다. 일례로 〈경향신문〉에 실린 ‘왜 성을 사고 파는가’라는 성매매 관련 글에서는 “과학은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뿐이다. 결코, 그 현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 함이 아니다. 지진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이 지진은 필요악이라 부르짖지 않는 것과 같다”며 진화심리학이 지질학과 같은 일반 과학이론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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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찰스 1세 때 처음 제정된 이 법은 1820년대 처벌 대상을 ‘신성모독적’ ‘선동적’ 그리고 ‘부도덕한’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해석돼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법은 주로 출판물을 검열하는 목적에서, 만약 저자의 행동이나 책 내용이 신성모독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선동적이거나 종교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부도덕한 내용들과 연관됐을 때 저자는 저작권을 박탈당하고 재산을 압류하는 당하는 등의 탄압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Howard E. Gruber, Darwin on man: a psychological study of scientific creativity (London: Wild Wood House, 1974), p. 20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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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다윈만이 아니라 19세기의 신경과학 연구자들도 인간의 정신이나 두뇌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의 본능을 연구했다. 종(種) 사이의 유관성을 연구하는 비교해부학은 척추동물의 두뇌와 신경계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하등한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을 연구했다. 즉 19세기 철학해부학으로도 불리던 비교해부학은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연구하는 신경학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다윈의 지적 환경이었던 19세기 신경과학 연구의 특징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Edwin Clarke & L. S. Jacyna, Nineteenth-Century Origins of Neuroscientific concept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7); Stephen Jacyna, “The most important of all the organs: Darwin on the brain,” Brain: A Journal of Neurology vol. 132 (200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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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종의 기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집필된 도덕과 같은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신 문제를 다루었던 미출판용 노트들(1838~39)과 《종의 기원》 이후에 출판된 거의 모든 저작들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가령 후기 저작들 가운데 《인간의 유래》(1871),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관하여》(1872), 《식물의 운동력》(1880),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1881) 등은 인간 본성에 관한 다윈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언급된 저작들 가운데 「미출판노트」들과 《식물의 운동력》에 관한 저서를 제외하고 나머지 책들은 모두 국내에서 번역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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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의 본능이 설계론의 핵심을 관통한다고 생각했던 다윈은 평생에 걸쳐서 이 주제에 천착했다. 그는 《종의 기원》(1859)은 물론 그것을 출판하기 이전에 집필된 미출판 노트(1838~39)만이 아니라 말년에는 「팜파스 딱따구리의 습성에 관한 연구 노트」(1870)라는 소책자를 출판하여 보편적인 본성론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이에 관한 추가적인 설명은 《다윈과 함께》 (사이언스북스, 2015)에 실린 한선희, 「다윈, 본성은 변한다」 의 4장 “나무를 오르지 못하는 딱따구리의 역설”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