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복수노조 6년, 극심한 노동자 탄압이 비극적 죽음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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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적 죽음의 원인은 극심한 노동자 탄압이다.
고인은 2011년 이후 부당한 탄압과 임금·복지 삭감 등에 맞서 투쟁하다 두 차례 징계를 받았고, 사측의 폭력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여러 차례 고소고발도 당했다. 그는 사망 직전에 또다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출석 요구서를 통보 받은 상태에서 괴로워했다.
한광호 동지와 동고동락하며 함께 싸워 온 노동자들은 동료의 죽음에 “원통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오죽했으면 그랬겠어요. 지금 우리는 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사측은 지난 6년간 악랄한 탄압을 자행해 왔다. 2011년 노조가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하자, 사측은 노조 파괴 전문업체 창조컨설팅과 손잡고 직장폐쇄, 용역깡패 투입 등을 하며 노동자들을 짓밟고 복수노조 결성을 주도했다.
그 뒤로 금속노조 소속의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잔업·특근 배제, 성과금·승진 등에 대한 차별로 임금을 삭감 당했다. 식사시간, 휴식시간 등까지 철저히 관리·통제됐고 몰래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했다. 노동자들이 이에 반발해 관리자에 항의하거나 태업·부분파업이라도 하면 어김없이 징계와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랐다.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심각한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복수노조제도는 탄압에 유용한 무기로 쓰였다. 사측은 처음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이용해 유성기업지회의 교섭력을 무력화했고, 이듬해 유성기업지회가 다수 조합원을 확보하자 이제는 개별 교섭으로 전환해 교섭을 해태하더니 급기야 지난해 단협을 해지해 버렸다.
이 같은 일들은 복수노조 사업장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문제였다.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의 14퍼센트(49곳)에 복수노조가 만들어졌고,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가 조직한 17개 대학 중 14개가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건설플랜트, 보건의료노조, 서비스연맹 등에서도 일부에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이 곳 노조들은 이구동성으로 민주노조의 교섭력 약화, 각종 차별로 인한 조합원 이탈과 단결력 약화 등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단협 해지
유성기업의 노조 공격에는 현대차 사측의 개입도 더해졌다. 2011년 직장폐쇄 당시 노동자들이 점거파업에 나서자, 며칠 만에 현대차의 일부 특근이 중단됐고 기아차 생산에도 차질이 생겼다. 유성기업이 거의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자동차 엔진부품의 공급이 어려워진 탓이었다. 이는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효율을 위해 도입한 적기 생산시스템(재고를 많이 쌓아놓지 않고 필요한 만큼 적시에 부품을 조달하는 것) 하에서 부품사 노동자들의 힘이 더 커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현대차 사측도 직간접적으로 협력업체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한광호 동지를 죽음으로 내몬 자들에 대한 처벌과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며 영동공장에서 전면파업, 아산공장에서 부분파업 등을 이어가고 있다.
“광호가 죽고 나서 파업을 시작했어요. 집행부는 부분파업을 하자고 했지만, 조합원들이 일을 놨어요. 다들 열불이 나서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영동공장에 분향소를 차렸고, 서울에도 분향소를 차리려고 매일같이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투쟁은 다시 한 번 노동자들의 분노를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만, 재고 물량이 적지 않고 대체인력까지 투입되고 있어 파업이 생산에 미치는 타격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사회적 비난을 사고 특히 현장 투쟁이 조금씩 재개되면서 조직력을 일부 회복했지만, 사측의 혹독한 탄압과 ‘또다시 직장폐쇄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파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체인력 투입 저지, 점거파업 등까지 감행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전투적 활동가들은 앞으로 현장 투쟁을 더 강화해 세력관계를 역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청문회, 법적 대응, 국회 기자회견도 했어요. 고공농성도 하고 희망버스도 했어요. 그런데도 저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광호는 목숨을 잃었어요. 결국 현장에서 승부를 봐야 해요. 우리가 현장을 장악하지 못하면 탄압은 계속될 거예요.”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끈질기게 싸워 온 덕분에 유성기업은 복수노조 사업장의 상징이 돼 왔다.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노동사회단체들을 모아 대책위를 구성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금속노조와 원청사인 현대기아차지부 등은 실질적 연대 건설을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
사측의 노동자 탄압에 실질적으로 제동을 걸려면, 이런 연대와 더불어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투쟁을 강화하며 근육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