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위협하며 임금 삭감하려는 정부의 구조조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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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4월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개최한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통해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과잉설비와 저가 수주 등으로 위험에 빠진 해운·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업을 ‘경기민감업종’으로 지정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을 압박하던 정부가 총선이 끝나자마자 다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구조조정 방안에는 철강·석유화학·건설업이 빠졌을 뿐 아니라, 조선·해운업에서도 대규모 산업 구조조정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안,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안 등이 정부 일각과 언론 등을 통해 회자됐는데 말이다.
이 때문에 몇몇 보수 언론들은 정부가 “손에 피 묻히지 않겠다며 도망가려 하는 모양”이라며 더 강력한 산업 구조조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다시 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세계적인 과잉설비 경쟁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살아남아 각 산업에서 일정한 몫을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강산업을 자발적 구조조정에 맡긴 것은 최근에 중국 철강산업에서 과잉 설비 정리가 추진되면서 한국 철강회사들의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해운업계에서는 세계적 해운회사들 사이의 해운 동맹(해운 얼라이언스)이 재편되고 있었는데, 부채가 너무 많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해운 동맹에서 탈락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덴마크의 머스크 같은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선사도 단독으로 전 세계의 모든 노선을 커버할 수 없다. 따라서 여러 해운회사가 연합해 해운 동맹을 결성하고, 자기 회사의 물량뿐 아니라 같은 동맹에 소속된 해운사의 화물도 함께 실어 나른다. 이 때문에 해운 동맹에 포함되지 못하면 세계적인 해운회사로서 생존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가 급하게 나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자본 확충과 부채 지급 보증 등을 함으로써, 이 기업들이 모두 해운 동맹에 포함될 수 있도록 지원해 한국 해운업의 세계적 지위를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정부는 부실 경영의 책임을 물어, 현정은(현대그룹)과 조양호·최은영(한진그룹) 등 재벌 일가의 사재 출연을 요구하고 있고, 실제로 현정은은 3백억 원을 내놨다. 최은영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에 넘어가기 직전에 남은 지분을 팔아 10억 원이 넘는 차익을 거뒀을 뿐 아니라 조양호·최은영 은 사재 출연도 하지 않아 정부의 질책을 받고 있다. 아마도 정부의 압박 때문에 이들도 ‘성의’ 표시를 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이들의 ‘고통 분담’은 눈속임일 뿐이다. 현정은·최은영 등은 회사가 적자로 위기에 빠졌을 때도 수억~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아 갔는데, 사채 출연은 이를 다시 토해 내는 것뿐이다. 반면 노동자들이 위기의 대가를 치렀다. 현대상선의 노동자 수는 2010년 말 2천36명에서 지난해 9월 말 1천2백48명으로 줄었다. 5년여 만에 40퍼센트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한진해운에서도 2009년 ‘희망퇴직’으로 1백3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2013년 말에도 40세 이상 노동자를 대상으로 다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게다가 박근혜는 최근에 “한국판 양적완화” 운운하며 한국은행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에 출자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해운·조선 회사들을 지원할 돈을 통화 발행으로 채우려 하는 것이다. 이는 재벌 총수들의 부실 경영 책임을 전체 국민이 나눠 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이 잘나가던 시절에는 대주주를 비롯한 주주들과 경영진 등만 과실을 누렸다.
고용 불안을 최대한 조장하려는 박근혜 정부
한편,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안에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같은 대형 조선업체들(빅3)에는 추가 인력 감축과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임금 삭감 등을 요구했다.
지난해 8조 5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빅3’ 조선사들은 이미 한 차례 대규모 해고를 단행한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9년까지 사무직 정규직 약 3천 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이미 7백 명 정도를 줄였다. 앞으로도 정년퇴직 감소분 등으로 2천3백 명을 더 줄일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포함)과 삼성중공업도 ‘명예퇴직’ 등을 통해 지난해에 각각 사무직 노동자 1천5백33명과 1천5백 명을 내보냈다. 그런데 정부는 더한층의 인력 구조조정을 압박한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 경기침체가 지속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한국의 선박 수주량이 거의 없자, 많은 언론들에서 최근까지 대규모 해고가 벌어져 앞으로도 더 많은 해고가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해 1분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백32만 CGT(수정환산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한국의 선박 수주량도 17만 1천 CGT로 급감해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수주잔량*도 감소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의 조사를 보면, 지난 3월 말 기준 한국의 선박 수주잔량은 2천7백59만 CGT로, 2004년 3월 말의 2천7백52만 CGT 이후 최저치다.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일하고 있는 해양플랜트(바다에서 석유나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설비)의 수주도 저유가로 2014년 말부터 수주가 뚝 끊겼다.
그러나 정부가 판을 깔아 주고 언론들이 대규모 해고가 임박했다고 보도했지만, 막상 조선업계 기업주들은 해고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조선부문 대표 김정환은 “3천 명 감원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말했는가 하면, 현대중공업 사장단은 정부가 인력 감축을 촉구한 바로 그날 오후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노동자들에게 잔업·특근 수당을 삭감하는 임금 삭감안에 동의해 줄 것을 호소할 뿐 해고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사측에서는 “인력 감축으로 해양플랜트를 제때 인도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처럼 조선업계 기업주들이 해고에 조심스러운 것은 조선회사들의 수주잔량이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도해야 할 물량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선박이나 해양플랜트는 제때에 인도하지 못하면 수십억~수백억 원의 패널티를 물어야 하거나, 수주 자체가 취소돼 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수주잔량
클락슨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는 7백82만 CGT의 수주잔량을 확보해, 세계 조선소 가운데 가장 많은 물량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해양플랜트와 특수선 물량을 더하면 수주잔량은 더 늘어난다. 대우조선해양의 물량은 추가 수주 없이 2018년 하반기까지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도 4백50만 CGT로 2위(현대중공업그룹 전체의 수주잔량은 1천1백57만 8천 CGT로 전 세계 수주잔량 1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가 439만 CGT로 3위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2018년 물량까지 확보된 상태다([그림1] 참고). 배를 한 척 만드는 데는 최소 1.5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걸린다. 그렇기에 조선소가 2년 정도의 수주량만 보유하면 기본은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해양플랜트 물량이 감소하고 있지만, 2017년까지 인도해야 할 물량도 여전히 남아 있다. 삼성중공업은 총 24기의 해양플랜트 중 올해 5기를 인도할 예정이고, 현대중공업은 총 17기 중 8기, 대우조선해양도 총 18기 중 8기를 인도할 계획이다. 빅3 조선사의 전체 수주잔고는 2016년 2월 말 기준으로 1천2백20억 달러인데, 이 중 해양플랜트 수주잔고는 총 5백80억 달러로 전체 수주잔고의 48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물량이 꽤 남아 있기 때문에, 위기가 심각했던 2015년에도 조선업 전체 노동자는 줄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대형 조선회사 10곳이 소속된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발표를 보면, 해고에 가장 취약한 조선업 하청 노동자 숫자도 13만 5천7백85명으로 줄지 않았다(〈머니투데이〉 2016. 4. 12.). 2015년에 ‘빅3’ 조선회사들이 8조 5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큰 위기에 빠졌는데도 말이다. 2011년 이후 매년 1만~2만 명씩 늘어나던 것이 멈췄을 뿐이다.([그림2] 참고)
그럼에도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과 체불, 업체 폐업으로 인한 고용 불안과 회사 이전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조선회사들이 비용 삭감을 위해 하청업체에 대금을 삭감하고, 지급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울산에서 거제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폐업
또한 대형 조선회사들은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의 통폐합을 유도해 몸집을 키우게 함으로써, 하청 노동자들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려 하는 듯하다. 올 들어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 폐업 수는 벌써 21곳이나 됐다. 2012년 4곳, 2013년 17곳, 2014년 26곳, 지난해 35곳으로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다.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통영, 고성 지역의 체불임금 규모는 올해 1~3월 동안 90억 원(1천2백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9억 원(9백82건)보다 3배 정도로 늘었다. 이런 요소들이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듯하다.
물론 앞으로도 저유가가 계속될 공산이 크고, 세계경제도 침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가 해고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조선 빅3의 수주잔량은 크게 줄지 않았고, 남아 있는 해양플랜트 물량을 완공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게다가 조선업계에서는 한국이 일본 조선업 쇠퇴의 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1980년대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조선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판단하고 조선업을 축소하고, 조선업 노동자를 줄이는 바람에 2000년대 조선업이 활황기일 때 한국과 중국에 수주를 뺏기면서 밀려난 바 있다.
지배자들과 보수언론들은 ‘수주 절벽’을 부각하며 조선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해고된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위해 파견을 확대하는 개악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지배자들이 조선산업의 규모를 축소할 생각이 없고, 공기를 맞추지 못해 더 큰 손실을 볼까 봐 두려워하는 상황은 파업 투쟁이 사측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조선업 위기에 책임이 없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과 2015년에 4조 7896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해고와 임금 삭감 등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낸 영업이익은 23조 4천3백29억 원으로, 지난 2년 동안의 적자에 5배나 된다. 특히 2009년부터 2013년까지에는 16조 1백9억 원의 이윤을 벌어들였다. 최근 2년 동안 적자의 3배가 넘는다.
10년 동안 막대한 이익을 얻던 자들이 겨우 2년 동안 적자로 기업이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현대중공업 회장 최길선과 사장 권오갑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사장과 전무로 현대중공업을 경영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도 임금은 전혀 올려주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2008, 2009년에 매년 3조 원 이상의 이익을 냈으나 2009년 임금협상에서 기본급이 동결됐다.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2010년에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돌파했고, 같은 해 대우조선도 1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런 호황에서 득 본 게 거의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조선노동조합연대가 “노동자 책임 전가 구조조정 반대”, “비정규직 포함 총고용 보장”을 요구한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또한 이들의 주장처럼 무능 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조선업 호황기 때 열매를 따먹기에 급급했던 재벌 총수와 경영진, 대주주, 정부가 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해고를 위협하며 임금을 삭감하려는 사측에 맞서 투쟁해 그동안 억제당한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한편 금속노조와 조선노동조합연대는 ‘노사정 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와 ‘제조업강화특별법’도 요구하고 있다. 조선 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을 위해 조선 산업 전체의 노사협상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노사정 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와 ‘제조업강화특별법’으로 정부·사측과 ‘조선산업 발전 전략’을 논의하는 것은 노동자들도 경제 위기의 대가를 일부 져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해, 해고 반대와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투쟁을 적극 조직하는 것만이 총고용 보장과 임금 인상 등의 노동조건 개선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