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정부와 기업주들은 왜 임금체계를 바꾸려 하는가

박근혜 정부의 거짓말들

박근혜 노동개악의 핵심 하나는 임금체계 개악이다. 정부는 장기화하는 경제 위기에 대응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하고 하향 평준화하려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는 현재의 임금 지급 방식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개선되는 데 반해 임금 격차가 너무 큰 게 문제라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령자 임금이 너무 높다거나, 임금이 생산성과 괴리돼 실업을 낳는다는 식이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노동소득분배율은 결코 개선되지 않았다. 선진국 클럽 OECD의 권고대로 자영업자의 소득을 임금성과 이윤성으로 구분해 좀 더 정확히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해 보면, 1996년에 비해 2014년 현재 노동자들의 임금 몫은 무려 13퍼센트포인트가 줄었다.

2000~2014년 동안 5인 이상 사업장의 실질임금 인상률은 평균 2.5퍼센트로, 물가상승률 2.9퍼센트나 경제 성장률 3.3퍼센트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이로 인해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실질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간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사실무근이다. 고령자들의 숙련·기술, 업무 관장력 등을 볼 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근거는 없다.

반면 대기업 자산은 엄청나게 늘었다. 2015년 4월 현재 30대 대기업의 총자산은 1천5백10조 원이 넘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7년과 비교하면 무려 25배로 폭증했다.

요컨대, 저들은 경제 위기 하에서 자신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누가 승리하느냐는 주로 계급 세력관계에 달려 있다.

왜 연공급제가 표적이 됐는가

일본을 본따 한국의 기업주들은 1950~80년대 경제 성장기에 연공급제를 노동력 확보·유지 정책으로 활용했다. 연공급제의 기본 틀은 남성 가장이 19~20세에 직장에 들어가 가족을 이뤄 2~3인의 자녀를 양육하고 은퇴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져 있다. ‘평생 직장’과 ‘생애주기에 맞춰 임금이 올라간다’는 약속이 노동자들에게는 초기 저임금을 감수하게 한 인센티브 구실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와 고령화 시대에 연공급제가 마치 ‘만악의 근원’인 듯 다룬다. 젊었을 때 저임금을 감수한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을 때가 되자 이를 뒤집자는 것이니 전형적인 ‘먹튀’다. 게다가 3백 인 이상 대기업의 평균 근속년수는 10년에 불과하니 정부와 기업주들의 엄살은 과장이기도 하다.(2012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기업 조직 노동계급 중심으로 큰 폭의 임금 인상과 상대적 고용안정을 쟁취해 온 현실은 기업주들에게 연공급제의 매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경제 위기 시대에 노동인구 고령화 추세도(비록 과장이지만) 기업주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드는 듯하다.

기업주들은 임금이 대폭 오른 1990년대부터 이미 “신인사제도”라는 이름으로 연봉제 등 성과주의 도입 시도를 벌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관철이 쉽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임금 규제를 피하는 수단으로 기본급 인상 대신 수당이 수십 개씩 생기는 결과를 낳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생활급 성격의 수당은 줄이고 성과 보상과 차등의 요소는 늘리려 해 왔다. 최근 임금에 생활급 요소가 있음을 부정한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은 부분적으로 기업주들의 투쟁이 관철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직무급이나 연봉제 도입이 현장에서 원활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반발 때문에 실제로는 임금 수준을 올리고 호봉제와 혼합하는 형식으로 도입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주들 내에서 “무늬만 연봉제”라는 한숨이 나온 이유다.

게다가 사회 변화가 진행돼 이제는 한 직장에서 정년 채우기도 어렵고, 결혼은 늦어지고 맞벌이가 늘고 출산도 줄었다. 대학 진학이 늘면서 취업 연령도 늦춰졌다. 1인 가구도 크게 늘었다. 노동자들도 예전처럼 미래를 기대하며 초기 저임금에 만족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사악하게도 세대 간 이간질로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정당한 불만을 도리어 연공급제 해체에 이용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임금 상승은 억제하려고 몇 년 전부터 대졸 초임 수준을 과장해 비난해 왔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 개혁도 이처럼 노동시장 변화에 저임금 일자리로 대응하려는 시도의 일부다. 자본주의 국가의 교육 정책은 체제 차원의 노동력 관리 정책의 하위 파트다. 대학생 수를 줄이는 대학 구조조정, 고교 과정에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공업계 특성화고) 늘리기, 기업맞춤형 교육(과 신설 등) 강화 등은 대졸자 규모를 줄이고 고졸 취업을 늘려 제조업 저임금 일자리에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청년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정책들이다.

또한 이 정책들은 기업의 교육·훈련비를 간접 지원하는 효과를 낸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퍼센트 달성도 목표로 내세우는데, 그러려면 전반적인 인건비 삭감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박근혜는 기만적이게도 노동자들을 협박한 뒤에 저임금 일자리로 생색을 내려 한다.

사기극 박근혜는 노동자들을 협박해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하려고 한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왜 임금체계를 바꾸려 하는가

박근혜 정부가 연공급제를 약화시키고 나아가려는 방향은 노동시장 전반에 능력주의·성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능력 중심 사회 구현”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는 지난 몇 년간 직무별 능력 등급을 제시하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개발해 특성화고·대학의 직업교육에 활용해 왔다. 지난해부터는 공공기관들이 신입사원 채용에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제 임금체계 개편에도 활용하겠다고 한다.

직무급제는 연령·근속연수와 무관하게 직무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므로 연공급제를 해체(완화)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일본의 직무급제 도입은 이런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보기에 직무급제는 업무 간에 전환배치를 어렵게 하는 문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 동일한 직무 내에서는 임금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됐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순수 직무급제보다는 이를 성과와 연동시키는 데 특별히 관심이 높다.

“임금을 투자와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는 말은 저들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 준다. 경총은 그동안 법률상의 임금 개념도 후퇴시키려 해 왔는데, 그 요지는 ‘임금은 직접적 일에 대한 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본주의 임금제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임금에서 ‘불필요’한 항목의 삭감을 정당화하는 논리일 뿐이다. 한 정부 보고서는 상여금, 가족수당, 학비보조금 등이 “근로의 대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임금 개념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물론 성과급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당장 총 임금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임금이 오르므로, 개별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호봉제가 폐지되면 매년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던 효과가 사라져 대다수가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하위 등급을 받은 이들은 더 크게 삭감될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전반적 임금 수준에 하향 압박을 가한다.

지배자들이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는 목적도 크다. 사용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누구에게는 임금을 더 주고 또 덜 줄 수 있다면 – 마음대로 배분할 수 있다면 – 줄 세우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저들이 성과주의의 효과로 “근로 의욕” 증진과 “충성심 유발”을 꼽는 이유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단결을 저해하고 저항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모순된 효과도 낸다. 경쟁과 갈등은 업무에 필수적인 협력마저 해치고 장기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공정한” 직무·성과 평가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공공서비스 업무는 시장의 효율성으로 재단할 수 없고 계량화하기도 어렵다. 제조업 컨베이어 시스템 하에서 개인별 기여도를 측정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기업들에 제공한 임금 컨설팅 사례들을 보면, 근태, 충성도, 고객 만족 등 관리자의 주관적 평가가 주요 기준이기 일쑤였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평가 지표의 ‘공정성’ 여부를 둘러싸고 노동자들의 불만과 항의가 이어져 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자들도 투쟁을 통해서 1990년대 이후, 특히 IMF 위기 이후 시도돼 온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을 상당히 막아 왔다. 노동계급 고유의 힘을 발휘해 단호하게 맞선다면,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의 총선 패배를 기회 삼아 저항을 구축해 나가자.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