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호 박경석 씨의 독자편지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의 블랙리스트 반대 투쟁’을 잘 읽었다.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 배관분회장은 현대오일뱅크MX현장에 취업이 예정됐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업이 취소되었다. 노동자들은 현대건설이 건설노동자 블랙리스트로 ‘현장퇴출’, ‘노동 통제’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박경석 씨도 인정하듯이 배관분회장의 현장 복귀는 분명한 성과다. 바로 현대건설의 블랙리스트를 쟁점으로 삼으며 투쟁에 돌입한 것은 잘한 일이다. 사측이 불과 1주일 만에 양보한 것은 블랙리스트 문제로 투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해 부담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건설 경기의 불안한 전망 때문인지, 건설 현장에서 기업이 민주노총 조합원의 고용을 거부하거나, 고용하는 조건으로 노동조건 악화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에 항의해도 기업들이 좀처럼 양보하려 하지 않아 투쟁이 몇 개월씩 길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충남의 플랜트노동자들이 투쟁으로 현대건설의 양보를 받아낸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그의 독자편지에는 투쟁을 더 밀어붙이지 못한 지도부를 비판하는 데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교섭과정에서 사측은 배관분회장이 이전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한 것이 문제였다는 투로 말했다는데, 이 점을 더 문제제기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제기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투쟁의 성과로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고무하는 것도 이후 투쟁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2009년 영국에서도 건설노동자 블랙리스트가 폭로됐지만, 기업들이 발뺌으로 일관해서 노동자들이 수년째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건설과 같은 대자본이 블랙리스트를 쉽게 인정할 리 없으니, 한 두 번의 투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거듭 투쟁 속에서 이 문제를 폭로하고 증거를 쌓아가면서 건설연맹, 민주노총 투쟁으로 확산시켜야 자본이 시인할 것이다.
그래서 지부 지도부의 비판보다 이번 투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블랙리스트를 철폐하기 위한 더 큰 투쟁을 만들어가자는 점을 조합원들에게 호소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둔 글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