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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속 적색 ─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성소수자 운동 속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성소수자 해방 운동이 그동안 무엇을 성취했는지, 또 그 성과를 지키고 더 전진하려면 어떤 정치 전략을 추구해야 할지 알고 싶으면 해나 디가 쓴 《무지개 속 적색 ―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무지개 속 적색─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해나 디 지음, 이나라 옮김, 책갈피, 256쪽, 13,000원

《무지개 속 적색》은 성소수자 운동에서 흔히 회자되는 전략과 완전히 다른 전략을 제시한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과 사생활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나는 많은 이성애자들이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또, 이 책을 읽으며 ‘성소수자 해방이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길 바란다.

이 책은 여러 쟁점을 다루면서 오랫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를 독자에게 들려 준다. 바로 사회주의 운동이 처음 출현할 때부터 결혼과 섹스, 사생활의 변화를 추구했고 또 그 쟁점들을 아주 중시했다는 것 말이다. 예컨대 이 책은 19세기 초,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자들이 애정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결혼도 유지되는 사회를 꿈꿨다고 전해 준다.

또 19세기 말 영국의 선구적 활동가 에드워드 카펜터의 이야기도 들려 준다. 카펜터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 즉 음식과 의복뿐 아니라 성까지도 바뀔 것이라고 봤다. 그는 노동계급 소속의 동성 애인과 공개적으로 셰필드[요크셔 주의 공업 도시] 근처에서 살았고, 당대 많은 좌파들의 지지를 흠뻑 받았다.

같은 시대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떨쳐 일어나 동성애 혐오에 찌든 법들을 뜯어고치려고 했다.

이런 전통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기는 제1차세계대전 말이었다. 러시아 노동계급은 1917년 10월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새로 들어선 혁명 정부는 동성애를 차별하는 법들을 모조리 없앴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완전히 달라졌다.

혁명 전 러시아에서 여성 동성 커플은 한 명이 남장을 하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았는데, 혁명 후에는 법원이 정식으로 동성간 결혼을 공인했다. [다른 나라에서 시민결합 제도가 등장한 시기보다 무려 80년가량 앞선다.]

성역할도 변했다. 러시아 혁명의 주요 지도자 레닌은 가사를 분담하지 않는 남성들을 아주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런 러시아 상황은 독일 노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18~23년 독일 노동자들은 연이은 반란에 나서며 제1차세계대전을 종식시키고, 독일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종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당시 독일 성소수자 운동은 노동자 반란 속에서 크게 성장했다. 독일 성소수자 운동의 지도자 마그누스 히르슈펠트는 성과학연구소를 세워 연구 활동과 운동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를 “혁명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거치며 모든 낡은 관념들에 도전했고, 1920년대 베를린은 유럽에서 ‘동성애의 수도’로 통했다.

성 해방을 위해 투쟁한 사회주의 운동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더 최근까지도 이어진다. 1969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은 최신의 동성애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수많은 성소수자들(트랜스젠더와 가난한 흑인·라틴아메리카계 이주민 포함)은 경찰이 게이바를 습격한 것에 항의해 사흘 동안 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스톤월 항쟁 이후의 성소수자 운동은 혁명적 정치를 받아들여 흑표범당과 연계를 맺고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도 지원했다.

영국에서도 1970년대 동성애 운동 활동가들은 같은 시기에 벌어진 노동조합 투쟁에도 참가했다. 1980년대 초 노동당 좌파(특히 켄 리빙스턴이 런던광역시의회를 이끌던 시기)는 동성애자들의 권리 문제에서 원칙 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당시 보수당에 친화적인 언론이 악의적인 동성애 혐오 비난을 퍼부었는데도 말이다.

그중 가장 고무적 사례는 1984~85년에 벌어진 광원 파업 때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연대한 것일 게다.

‘광원들을 지지하는 동성애자들(LGSM)’ 단체는 성소수자들이 즐겨 가는 클럽과 술집을 돌며 파업 지지금을 모았고, 웨일스 남부 광원들과 연계를 맺었다.

처음에 광원들은 성소수자들을 미심쩍어했다.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그러나 파업이 시작되자 광원들은 언론의 각종 비난과 경찰의 괴롭힘에 시달렸고, 이는 그동안 성소수자들이 겪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들과 토론하면서 광원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1984년 런던에서는 동성애자 1천5백 명이 모인 광원 파업 기금 마련 행사가 열렸다. 그 앞에서 한 광원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여러분은 ‘실업수당이 아니라 석탄을’이라는 우리의 배지를 달았습니다. 여러분은 괴롭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여러분의 배지를 달고 여러분을 지지할 것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14만 광원들은 흑인 차별, 동성애자 차별, 핵군축에 대해 압니다. 우리는 더는 예전 같지 않을 것입니다.”

광원노조(NUM)는 성소수자 운동에 참가했고, 그것이 중요한 동력이 돼 노동당은 성소수자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것은 지난 20년간 생긴 개혁 입법의 한 기원이 됐다. [영화 〈프라이드〉(매튜 워처스 감독, 2014년)에 이 내용이 잘 표현돼 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혐오에 저항하라" 5월 14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IDAHOT)을 맞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조승진

물론 투쟁이 모두 승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지개 속 적색》은 20세기 중엽의 암흑기 역사도 전해 준다. 러시아 혁명이 고립돼 패배했고, [그 결과로 들어선] 1930년대 스탈린 체제는 동성애를 다시 범죄로 규정해 성소수자들을 수용소에 가뒀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자 동성애자 수십만 명이 수감되고 살해됐다.

1980년대도 엄혹한 시기였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1960년대에 이뤄진 진보를 뒤로 돌리는 데 주력했다. 마거릿 대처는 학교에서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다루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지방자치법] 28조를 만들었다. 이어 미국 정부와 영국 정부가 에이즈의 등장을 방치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의 저자 해나 디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동안 성소수자 운동이 많은 성과를 이룩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소수자 차별이 계속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이 그런 차별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어떻게 해야 성 해방 투쟁의 위력이 가장 커질 수 있을지에 관한 정치적 분석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카를 마르크스의 협력자)의 연구를 기초로 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제도가 성소수자 차별의 뿌리임을 설명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착취와 경쟁으로 운영되는 이 체제에서 권력자들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심지어 개인관계까지도 이윤 창출이라는 우선순위에 종속시키려 한다.”

지배자들은 가족제도를 옹호해 아이들을 키우고 노약자를 돌보는 비용을 노동계급에 떠넘긴다.

가족제도는 이데올로기로도 작용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나 노동계급 같은 커다란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훨씬 더 작고 취약할 뿐 아니라, 희소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단위[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족은 이런 관계를 조율하는 데서 결정적 수단으로 작용하고, 지배계급과 저임금 노동계급을 모두 싼값에 재생산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성소수자 차별의 근원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알면, 역사에서 노동자의 지위와 성소수자의 지위가 흔히 함께 상승하고 함께 하락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차별의 근원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사실은 성소수자 투쟁이 전진하려면 어떤 정치로 무장해야 하는지를 규명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1970년대 이래 성소수자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정체성 정치”가 상식처럼 통용돼 왔다. 이에 따르면, 성 해방 투쟁의 주축은 바로 성소수자들이 만드는 공동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이, 그 “공동체”가 내부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집단과 마찬가지로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는 법을 고치는 데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여전히 일상 구석구석에서 차별당한다는 사실을 보면, 차별 자체를 끝장내지 않는 한 그 어떤 방어막도 불완전할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소수자 차별은 자본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으므로 성 해방은 평등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총체적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남겨둔 채 성소수자들만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가장 효과적으로 싸우려면 다른 차별받는 집단들의 투쟁 및 노동자 투쟁과 함께해야 한다.

성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투쟁(“무지개 속 적색”)의 역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하고 또 영감을 준다.

새 세대 활동가들이 그런 역사와 사회주의 정치 사상에 다가갈 때 이 훌륭한 책을 길잡이 삼길 바란다.

 ※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역자가 첨가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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