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퀴어문화축제:
수만 명이 서울 도심을 무지개로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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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2016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성소수자 자긍심 행진)가 성공적으로 열렸다. 자긍심 행진은 1969년 미국에서 성소수자 차별에 항의하며 벌어졌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매년 6월에 열린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퀴어문화축제는 매해 그 규모를 경신하며 성장하고 있다. 올해에도 역대 최대로 수만 명의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모여 시청광장에서 공연을 즐기고, 을지로와 명동 일대를 누볐다.
행진은 젊고 재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쳤다. 참가자들은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를 온 몸으로 표현했다. 행진 길목에서 몇몇 보수 단체 회원들이 "동성애는 죄다", "동성애 OUT"과 같은 팻말을 들고 야유를 보냈지만, 행진 참가자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함성과 환호로 답했다. 명동을 지나는 젊은 행인들은 행진 대열을 보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차별금지법 당장 내놔" 서울 도심을 물 들인 무지개 6월 11일 오후 성소수자, 대학생, 노동· 시민사회 단체들과 각국의 외국인 등 5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모여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퀴어퍼레이드)를 활력있게 하고 있다. ⓒ이미진
특히 거리 행진에서 대학생들이 상당한 대열을 차지했다. 성공회대, 이화여대, 총신대, 단국대, 중앙대, 한양대, 울산대, 서울여대, 동국대, 홍대, 건국대, 한양대, 계원예대 등 많은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이 참가했다. 지난해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당선한 서울대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행진 전에 무대에 올라 "함께 벽을 무너뜨리자” “우리 사회, 정치, 문화를 바꾸자."고 발언하고 큰 환호를 받기도 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운영하는 차량 대열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이 대열은 "차별금지법 당장 내놔", "혐오 반대, 차별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쳤다. 민주노총도 이 대열에 함께했다. 민주노총은 올해 '퀴어퍼레이드 참가단'을 꾸렸고 부스를 차려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서명을 받았다.
'성소수자 부모모임'도 수십 명이 배너를 들고 참가했다. "내 자식 성생활에 간섭 말어! 딸아! 너는 인생을 즐기려무나" 하는 재치 있는 배너를 들고 엄마와 딸이 함께 행진해 눈길을 끌었다.
시청 광장에는 1백 개가 넘는 부스가 차려졌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과 같은 진보정당, 섬돌향린교회, 로뎀나무그늘교회 등 진보적 교회, 여러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 성소수자 단체와 여성단체들, 민주노총 등이 부스를 차렸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4개 국가의 대사관과 LUSH코리아, 구글코리아, 아메리카어패럴코리아 등 다국적 기업도 부스를 차리고 행진에 참가했다.
이런 점은 성소수자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확산되고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지지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퀴어문화축제 주최측이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국적 기업에 우호적인 것은 우려스럽다.
특히, 중동에서 수백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삶을 파탄낸 미국의 대사인 리퍼트에게 연단의 발언까지 허용한 것은 유감이다. 퀴어문화축제 주최측이 좌파인 노동자연대에게는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스를 허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한편, 서울시청 광장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는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모여 수천 명 규모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앰프 소리를 한껏 높여 "동성애를 조장하는 퀴어 퍼레이드 반대"를 외치고, 퀴어문화축제를 "음란"한 행위로, 동성애를 "질병"이라고 주장하며 혐오 발언들을 했다. 그러나 시청 광장에 모인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에 비하면 소규모였고, 소음 때문에 짜증은 났을지언정 참가자들을 전혀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박원순 서울 시장이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예수재단 집회를 승인했다. 그러나 반인권적 집회를 승인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게 과연 '인권 도시 서울'이냐"며 박원순의 어정쩡한 태도를 꼬집었다.
올해 퀴어문화축제는 여전히 심각한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일부 개신교 우파 등의 혐오 조장 속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개선되며 성소수자 운동 지지가 한국에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