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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 사건 판결에 부쳐:
비극의 근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10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부장 판사 유남근)는 ‘강남역 살인’으로 기소된 김모 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치료감호와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도 명령했다.

지난 5월 김 씨는 강남역 근처 한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됐다. 이 나라 최대 번화가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행해진 이 사건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피해자가 느꼈을 극심한 공포와 범행의 잔혹함을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김 씨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게 이해가 간다. 김 씨가 범행 이후에 보인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들(“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다”는 둥)은 사람들이 더 분개하게 만들었다.

재판부는 김 씨의 범행이 조현병에 의한 피해망상의 결과라고 판결했다. ⓒ사진 출처 YTN 화면캡쳐

그동안 〈노동자 연대〉는 이 사건이 정신적·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한 인간이 자신보다 만만한 상대에게 저지른 무차별 대상 범죄라고 봤다. 그리고 이런 범죄는 개인적 요인들이 결합돼 일어나지만 그 근원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가 있다고 봤다. 김 씨가 범행 당시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하지만(대부분의 살인은 증오심과 분노를 폭발시키는 행위이다), 이런 감정은 피해망상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이고, 특정 집단에 대한 적개심 자체가 근본 동기로 작용한 ‘혐오 범죄’는 아닌 것으로 봤다.

무차별적

1심 재판부 판결은 범행 당시와 그 전의 김 씨의 정신적·심리적 상태와 생활조건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여러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재판부에 따르면, 김 씨는 중·고교 시절부터 정신적 불안증세가 시작돼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9년경 강박장애 진단을, 2005년경에는 신경증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 2009년 미분화형 조현병(이른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후 김 씨는 총 여섯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 사는 곳의 공동현관문을 깨뜨리거나,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2층에 살면서 4층에 거주하는 여성의 발소리가 들린다고 수차례 항의하다 경찰의 신고를 당하는 일 등을 계기로 가족이 입원치료를 시켰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씻지 않고 “망상적 사고와 환청을 듣는 등의 증상”을 보였고, 퇴원 후 약물 복용을 중단해 증상의 재발·악화가 반복됐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김 씨는 다니던 신학대에서 결국 제적됐고, 위생과 손님들에게 시비를 거는 문제로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 그만두게 되는 등 사회생활도 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피해망상으로 인해 여성들이 자신을 견제하고 괴롭힌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재판부는 그를 진료한 의사와 감정인의 의견을 주요한 근거로 제시하며, 범행 당시에도 김 씨가 ‘정상적인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가령 올해 1월경까지 김 씨를 진료했던 담당의는 ‘퇴원 이후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 당시 망상적 사고 증상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또한 재판부는 김 씨가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한 것은 남성을 무서워해서이지 여성에 대한 혐오 때문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김 씨가 오랫동안 매우 엄한 아버지 하에서 자랐고,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주눅이 들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 자체에 심리적 부담을 크게 느꼈다고 했다.

재판부가 이렇듯 김 씨의 여러 조건과 상태들을 따져, 김 씨가 “남성을 무서워하는 성격”과 “망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피해의식”으로 인해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했다고 결론내린 것은 세밀한 심사숙고의 결과로 보인다. 김 씨는 대부분의 진정한 조현병자가 수치심에서 그러하듯 재판 내내 자신이 정신적으로 ‘일반인과 같고 정신분열증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 사건이 매우 “중대한 범죄”임을 인정하면서도 범죄의 책임성 문제에서 심신미약 상태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일부 양성분리적 여성주의자들처럼 ‘여성혐오’를 매우 느슨하게 규정하면 여성을 만만하게 본 것도 ‘여성혐오’이므로 그 논리대로라면 이 범죄도 ‘여성혐오 범죄’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 차별의 현실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느슨한 규정은 무차별 대상 살인과 같은 흉악 범죄를 설명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런 무차별 살인은 흔히 벌어지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를 이렇게 느슨하게 쓰는 것은 진짜 혐오 범죄를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봐야 하는 것이다.

단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 해서 ‘여성혐오’ 범죄라고 할 수는 없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흉악 범죄 사례들을 보면, 그 대상은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2007년 시애틀에서 정신질환에 시달린 한 여성은 여섯살 난 자신의 아이를 익사시켰다. 그러나 상대적 약자인 아동이 살해됐다고 해서 이 사건이 ‘아동혐오’ 사건인 것은 아니다.

소외

김 씨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족, 연인, 동료였을 한 무고한 여성의 생명을 앗아가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치료될 때까지 마땅히 장기 구금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가 근원에 있는 비극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소외란 외로운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기 주변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지니지 못하는 객관적 상황을 말한다. 물론 소외 하에서 모든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이들이 다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무차별 범죄에는 개인적 성향과 경험, 계기들이 결합돼 있다. 따라서 사건을 구체적으로 봐야지 어느 하나로 환원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런 비극의 뿌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비극의 근원에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의 근본 분열을 남 대 여로 보는 관점을 채택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런 관점은 강남역 살인과 같은 비극의 반복을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성운동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개인들끼리의 갈등이 해법인 듯한 오해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법은 여성 차별이 남성 집단(의 사실상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한다고 오해한다. 이런 인식이 차별적 경험을 반영한 것일지라도, 이는 해법을 찾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그래서 차별에서 체제가 하는 구실을 간과하고 그것에 맞서는 데서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 ―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남녀 노동계급이 단결해야만 쟁취할 수 있는 힘) ― 을 채택하지 못하게 한다. 그동안 한국의 여성운동이 몇몇 의미 있는 법·제도적 개혁을 성취했음에도 주변적 운동에 머물러 온 것도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여성 차별을 상당히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없애려면 차별의 현실에 분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변혁할 해방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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