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포비아 페미니즘》(박가분 지음, 인간사랑):
페미니즘 일각의 문제점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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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페미니즘》은 청년
저자는
물론 저자는 일베 등
남 대 여의 성별 환원론에 대한 비판
저자는 일부 페미니즘과 정체성 정치가 모든 문제를 남 대 여의 구도로만 환원해 여러 오류를 낳는다고 여러 차례 비판한다.
저자는 트럼프 당선을 둘러싼 논란을 그 한 사례로 다룬다.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가 당선한 결과를 두고 각종 언론들은
저자는
저자의 말대로
저자는 요즘 진보정당이 노동계급 지향성 버리기를 선호하는 경향도 비판한다. 그는 과거의 진보정당은
이런 평가를 내린 데에는 저자가 한때 속했던 진보신당-노동당에서의 경험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실제 최근 노동당에서는 근본적 페미니즘이 심각한 내분을 촉발했다.
저자가 말하는
“포비아 페미니즘”
이 책은 근본적 페미니즘이
저자는 강남역 사건 이후 대유행한
물론 강남역 사건이 많은 여성들에게 준 충격과 슬픔, 공포심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
저자는
저자는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이는 근본적 페미니즘 정치가 예비한 결과였다. 그들이 강력범죄에 대한 공포를 과장한 데는 근본적 페미니즘의 남 대 여 프레임이 크게 작용했을 법하다. 즉, 자신들의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춘 셈이다.
저자는 당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또한
실제로 강남역 사건을
이밖에도 저자는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개념을 새로 창조하거나 기존 개념을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확장해 놓고도
메갈리아에 대한 무비판적 정당화 거부
저자는 정의당 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해서도 과감한 비판을 이어간다.
우선, 메갈리아가 설정한 남녀 대결 프레임의 역효과를 직시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합리적 핵심이 있다. 저자는 메갈리아와 워마드 내에서 사용된 용어 중에는 심지어 남성 성소수자들
그런데도
실제로 메갈리아 내에서
다만 저자의 메갈리아 비판에는 균형을 잃은 부분도 있다. 저자는 메갈리아 가입자들이 모두 소수자 혐오에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잘 구분하지 않는 것도 아쉽다.
특히 메갈리아를 일베와 마찬가지로
또한 저자는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김자연 성우가 게임회사 넥슨에서 계약 해지된 것을 부당하다고 보지 않지만, 이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한 부당해고였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는 근본적 페미니즘의 또 다른 역효과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게 지적한다. 예컨대 아무런 사실 검증도 없이
경희대 서정범 교수의 무고 피해 사건, 이른바
여성 웹툰 작가 이자혜 씨의 사례도 온라인 폭로 맹신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이 작가가 강간을 사주
반편향
그러나 저자가 근본적 페미니즘의 일면성과 과도함에 워낙 데서인지, 젠더 이슈에서 다소 균형을 잃은 듯한 부분도 있다. 그 결과 여성차별의 현실을 다소 축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가령, 저자는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우익에게 마녀사냥을 당한 최현희 교사를 방어하지 않는다. 저자는 최 교사가 일부 메갈리아 용어를 썼다거나 수업시간에 남학생에 핀잔 주는 말을 했다는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최 교사를 비판한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의 보도를 다 사실로 단정할 수 없거니와, 성별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최 교사의 수업 내용은 기본적으로 정당하다. 무엇보다, 우익들은 동성애 혐오 선동의 의도에서 최 교사를 공격했다.
또 다른 사례는 성별임금격차 문제다. 저자가 이 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 실제로도 중요한 문제이므로 이 부분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OECD 최대인 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심각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지표상 임금격차는
이에 대한 반론 전에, 저자의 주장에서 합리적 측면을 먼저 인정해야 공정할 것이다. 가령, 저자는 남성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에서 이득을 얻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여성 노동자에게 주로 육아부담이 전가되는 현실의 반대편에는 남성 노동자들이 주된 생계부양자의 짐을 지는 현실이 존재하고, 남성 노동자들이 살인적 노동시간과 산업재해에 더 많이 시달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저자는
저자의 이런 접근법은
그런데 저자는 성별임금격차가 체계적 여성차별의 결과임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하지만 저자가 마치 차별과 무관한 요소처럼 나열한 근속 연수, 직종 선택, 노동시간, 근로 형태 등에 이미 체계적인 여성 차별이 반영돼 있다. 여성의 평균 근속 연수가 남성보다 짧은 이유는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때문이다. 여성이 저임금 직군에 몰리게 된 것도, 20대 후반까지는 남녀 비슷한 비정규직 비율이 30~40대를 경과하며 달라지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빌어, 남성은 본래부터 더 위험하고 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리스크 감수 성향이 있고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임금격차 문제를 설명한다. 물론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여성비하적 의도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남성과 여성은 다른 성향이 있을 뿐, 그것이 우열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결국 여성의 노동시장 내 낮은 지위가 여성의 성향에 따른 선택의 결과라는 얘기와 다름없게 된다. 이는 성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흐린다. 또한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남성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혹사당하는 것도 결국 남성적 성향에 따른 자발적 선택일 뿐이게 된다. 이처럼 인간본성론과 비슷하게 들리는 저자의 주장은 결국 그의 근본적 페미니즘 비판에 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물론 남성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것에서 보듯 남성 전체가 특권층이라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는 것이 여성 차별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연결될 이유는 전혀 없다. 여성 노동자들이 육아의 굴레 때문에 남성에 비해 노동시장 진출과 노동조건에서 체계적으로 더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다.
저자는 남성 노동자가 여성 몫을 뺏는 게 아니라고만 말할 뿐, 여성 차별로부터 진정한 수혜를 얻는 자들이 자본가 계급과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은 잘 보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임금격차 문제를 설명할 때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본가들에게는 건강하고 교육받은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길러내는 일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윤 논리 때문에 그 막대한 부담을 개별 가정의 여성들에게 주로 전가해 왔다. 또한 노동시장 내의 임금격차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서로 이간질하고, 더 낮은 부문을 핑계로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따라서 차별을 방치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모두에게 불리하고, 차별에 맞서 싸우는 데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한편 저자는
그런데 저자의 점진주의적 접근법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일관되게 옹호하지 못하게 되는 난점도 낳는 듯하다. 가령 저자는
그러나 문재인은 동성혼 합법화나 군대 내 동성애를 반대하는 등 제도적 차별도 옹호했다. 우익인 홍준표의 동성애 혐오 발언을 반박하기는커녕 동조해 힘을 실어준 것도 문제였다. 따라서 성소수자들이 당시 문재인 발언에 분개하고 항의한 것은 정당했다.
결론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페미니즘의 부흥 속에서 낙태죄, 성폭력과 직장 내 성희롱, 성별 임금격차 등 차별에 도전하려는 분위기가 늘어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수용된 남 대 여의 근본적 페미니즘과 정체성 정치는 그 일면성과 과도함 때문에 여러 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럴 때조차 대부분의 진보
저자가 이런 세태에 눈치보지 않고 나름의 진보적 시선으로 소신껏 논쟁적인 젠더 이슈들을 정면돌파 한 것은 청량감을 준다. 또한 다소 치우칠 때도 있지만 근본적 페미니즘의 과도함과 일면성, 역효과에 대한 흔치 않은 비판적 분석은 흥미롭다.
이런 고유의 강점들 때문에 이 책은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