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기능조정”은 인력 감축과 민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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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6월 14일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열어 성과연봉제 강행 방침을 재확인하고는 에너지·환경·교육 부문의 ‘기능조정 방안’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수익성이 악화된 일부 에너지 관련 공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일부는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5개 기관 통·폐합, 2개 기관 구조조정, 29개 기관 업무조정을 통해 수백 명을 감원하고 수천 명을 전환배치할 예정이다. 한국석탄공사, 광물자원공사 등은 사실상 폐쇄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해외자원개발 부문을 대폭 축소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석유공사는 2020년까지 인력의 30퍼센트를, 광물자원공사는 1백여 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이를 먼저 추진해 재정 지출을 줄이는 한편 민간 부문의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 재정 지출 삭감으로 부채를 줄여 ’국가 신인도’를 높이고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부문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등 임금체계 개편, 공무원연금 개악, 철도·의료 등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불법·편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에 발표된 ‘기능조정 방안’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정부는 재정 지출과 부채의 절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한때는 기업주들의 이윤을 위해 ‘자원 개발’에 수조 원의 재정을 쏟아붓더니 이제 와서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조선업 등 민간 부문의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논리에도 힘을 실어 줄 것이다.
발전 자회사의 지분 매각이나 전기·가스 판매 민간 개방 등 전력·가스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규모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기업주들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편으로 여겨져 왔다. 세계은행과 IMF, OECD, EU 등 ‘국제’ 기구들은 1990년대 이후 세계적 수준에서 이런 조처를 주도해 왔다.
딜레마
한국에서 전력·가스 민영화는 IMF 이후 김대중 정부 하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2002년 발전 파업 등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민영화의 폐해(요금 인상 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거기에다 미국의 중동 전쟁이 낳은 유가 폭등으로 전력 기업들의 수익성이 하락하자 투자 전망이 어두워졌고, 민영화는 일시 중단됐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도 민영화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비슷한 문제로 거듭 좌절돼 왔다.
대규모 공공서비스 민영화 조처에는 늘 따라붙는 딜레마가 있다. 수익성이 좋은 공기업은 잘 팔리겠지만 재정 수입이 줄어 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고, 수익성이 나쁜 공기업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로 정부는 전자의 경우 정부 지분을 남겨 일정한 수입과 통제력을 유지하려 해 왔고, 후자의 경우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KT 민영화 과정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을 개선한 뒤 일부 지분을 매각하고, 얼마 안 가서 지분을 대부분 매각하는 수순을 밟았다. 이 점에서 정부가 발전 자회사 지분 매각이 ‘민영화가 아니다’ 하고 주장하는 것은 얕은 속임수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도 취임 직후부터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추진해 왔지만 철도·의료 민영화 추진보다 에너지 민영화가 뒤늦은 데에는 비슷한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2012~13년까지만 해도 전력·가스의 적자와 부채는 커다란 골칫거리로 여겨져 왔다. 반면, 민영화에 대한 대중적 반감은 유례없을 정도로 컸다. 여러 부문에서 일시에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노동자들의 저항 능력이 여전히 만만찮다는 점도 고려사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가 하락으로 한전과 발전 자회사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한전은 역대 최대인 13조 4천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에서 ‘우수(A)’ 등급을 받았고 발전 자회사들도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호(B)’ 등급을 받았다. 한전은 이 돈으로 전기 요금 인하가 아니라 ‘배당 잔치’를 벌였다. 51퍼센트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정부가 1조 원 가까이 받았고, JP모건 등 대규모 투자자들도 짭짤한 수입을 거뒀다.
적기
정부는 지금이야말로 에너지 민영화의 적기라고 보는 듯하다. 한동안 유가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유력하다. 특히 한전의 기능 중 송·배전과 판매를 분리해 그중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지 않는 판매 부문을 매각한다면 군침을 흘릴 자본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전기 요금에 비해 발전 원가가 상당히 낮아진 만큼 당장 요금 인상 압력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해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한 전력 가격은 평균 ㎾h당 84.05원으로 전년(90.48원) 대비 7.1퍼센트 하락했다. 반면 각 가정에 판매한 전기의 판매 단가는 평균 ㎾h당 111.57원으로 전년(111.28원) 보다 인상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일본의 전력 민영화 추진도 자극 요인이 된 듯하다. 일본은 올해 4월부로 전력 소매 분야를 완전히 민간에 개방했는데(가격 전면자유화는 2018~2020년) 통신 사업자 등이 이 부문에 뛰어들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보기에 한국은 2000년대 초에는 일본에 앞서 전력 민영화를 추진했는데, 지지부진한 사이에 일본에 뒤처진 셈이니 조바심을 낼 법하다. 당시에 추진한 민영화로 발전사와 송·배전(한전), 계통운영(전력거래소)을 분리하는 작업은 완료됐으므로 이제 도·소매를 한전에서 떼어내 민간에 넘기기만 하면 애당초 목표한 바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가스의 경우 소매는 이미 민영화됐지만 ‘도입’ 즉, 판매를 목적으로 수입하는 것이 민간에 허용되지 않은 상태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를 시도했지만 수익에 대한 불확실성과 여론 악화, 노동자들의 반발 등으로 좌절됐다. 오히려 민간에 개방하겠다며 가스 수입 계약 시기를 미루다가 가장 비싼 시기에 계약을 체결해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다. 가스 수입은 10~20년 가까이 되는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이 손실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평가에서 ‘미흡(D)’ 등급을 받았다. 가스공사 자체의 수익은 악화됐어도, 지금 진출하는 기업은 유리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므로 지금이 민간이 진출할 기회라고 여기는 듯하다.
수익성
익히 알려진 것처럼 전력·가스 민영화는 단지 해당 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저유가에 힘입어 가격 인상은 조금 미룰 수 있을지 몰라도 수익성을 최고 목표로 여기는 자본가들에게 통제권이 넘어가면 요금 인상은 예정된 일이다. 수익성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는 공급 중단 같은 극단적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정부의 통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정부는 최소한 정보와 결정은 공개해야 하고 대중의 압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도 한전의 적자를 요금 인상으로 고스란히 반영하지는 못했다.
정부는 고집스럽게 민영화가 아니라고 둘러대지만, 공공서비스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고 지분을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무늬만 ‘공공’으로 남겨둔 채 민영화 효과를 낼 수 있다. 공정거래니 투자자·주주의 재산권이니 하는 이름으로 정부의 가격 조절 정책은 상당 부분 마비되거나 상실될 것이다. 즉 형식상 정부 소유로 남아 있는 부분도 시장 논리에 따르게 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부 지분을 매각한 공공기관에서는 정부의 가격 규제가 “궁극적으로 일반 주주들의 권리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상장공공기관 관리 및 운영체계에 대한 연구’, 2014)
민간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라는 자본주의 논리를 따라 요금 인상뿐 아니라 ‘비용 절감’에도 혈안이 될 것이다. 심지어 정부는 화력발전 정비, 핵발전소 설계, 국립공원 시설 관리 등도 민간에 넘기겠다고 한다. 이는 또 다른 구의역 참사,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맞선 투쟁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투쟁이자,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