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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해방을 바라는 새 세대 활동가들의 필독서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 마르크스주의 분석》(노라 칼린, 콜린 윌슨 지음)

오랫동안 절판됐던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역사: 사슬 끊기》(1998)와 《동성애자 억압의 사회사》(1995) 두 책이 새로 번역돼 한 권으로 나왔다.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때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동성애 억압과 해방의 전략을 다룬 책이 새로 나온 것이 무척 반갑다.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 마르크스주의 분석》 노라 칼린, 콜린 윌슨 지음, 이승민, 이진화 옮김, 책갈피, 208쪽, 10,000원

이 책이 쓰이고 나서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과 영국에서는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다.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합헌으로 인정했고, 영국(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도 법적으로 동성 결혼이 인정됐다. 두 나라 모두에서 동성 부부가 합법적으로 아이를 입양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11년부터 동성애자들도 공개적으로 군 입대를 할 수 있게 됐고, 현재 21개 주와 워싱턴 D.C.에 차별금지법이 존재한다. 이 책이 쓰일 당시(1994년) 논쟁이 된 영국의 동성애자 성관계 동의 연령과 관련한 차별도 지금은 없어졌다. 미국과 영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십수 년간 법·제도적 측면에서 많은 전진을 이뤄 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것이 그대로이다. 2013년 FBI 통계에 의하면 전체 혐오 범죄 중 20.2퍼센트(5천9백22건)가 피해자의 성적 지향과 관련이 있다.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심각한 혐오 범죄에 노출돼 있다. 또 여전히 동성애자들의 노숙, 실업, 가난, 정신병, 자살 비율이 전체 인구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

이처럼 법·제도적 개선을 이룬 서구에서조차 동성애자 억압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동성애 억압의 뿌리가 무엇이고 억압을 끝장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은 이런 물음에 대해, 시간의 흐름에도 전혀 바래지 않는 훌륭한 답을 내놓고 있다.

한편, 이 책은 요즘 널리 퍼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 즉 마르크스주의는 억압 쟁점을 계급 문제로 환원하고 제대로 된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견해에 대한 훌륭한 반박이기도 하다. 억압 쟁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은 많은 장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억압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해방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왜 사회마다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달랐는가?

흔히 동성애 혐오자들은 동성애가 '자연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자연'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노라 칼린은 '1부 동성애자 억압의 근원'에서 풍부한 사료들을 활용해 시대마다 성 도덕과 성 관념이 달랐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자연'스러운 것과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회마다 달랐다.

최초의 인간 사회였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근친상간을 제외하면 성 행동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었다. 성별 노동 분업이 대체로 존재했지만 매우 유연하고 겹치는 일도 많았다. 개인이 원하면 젠더를 전환할 수도 있었다(이런 사람을 "두 영혼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는 남성 간 성관계를 "천상의 사랑"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때도 남성 간 항문성교에서 '능동적' 역할과 '수동적' 역할을 다르게 대했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동성애 혐오자들이 그토록 문제시하는 항문성교는 당시 매우 흔했다는 점이다. 항문성교는 남녀 간에도 단지 피임의 일환으로 행해졌다. 반면 로마인들은 구강성교는 ‘순종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무척 역겹고 퇴폐적인 것으로 여겼다.

중세에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된 기독교는 성 억압에서 매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구실을 했다. 각 시대마다 지배계급의 필요에 맞춰 말을 바꿨지만 말이다. 5세기 기독교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지 않은, 즉 생식과 무관한 성행위(구강성교, 항문성교, 피임, 자위, 낙태 등)를 모두 죄악시했다. 13세기 교회는 새로운 사회 발전을 통제하기 위해 '소도미' 처벌법을 만들고 성에 관련한 문제를 엄하게 탄압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이 특별히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진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자본주의가 사회가 돼서야 ‘동성애’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났다. 자본주의는 “개인은 ‘자유롭게’ 성적 관계를 맺고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가족과 성 역할 구조라는 공인된 규범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새로운 성 담론을 만들었고,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 억압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책은 성에 대한 태도가 사회마다 달랐다는 것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노라 칼린은 이런 태도의 차이가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즉 사회의 토대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설명한다. 즉,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적 관행은 모두 사회의 특정한 생산양식과 재생산 방식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 이 점이 마르크스주의 분석으로 쓰인 이 책의 탁월한 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노동력의 압도 다수는 외부의 노예들(외국인 노동력)이었다. 따라서 그 사회에서 생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남성 간 성관계를 허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세 봉건제 사회는 자국의 노동력으로 생산을 담당해야 했고, 노동력 재생산이 중요해졌다. 생식과 관계없는 성관계를 모두 비난한 이유다.

19세기가 돼서 '동성애'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성행위의 특정 유형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에 대한 억압이 시작된 것은 자본주의가 당시 무너져가는 가족을 재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별 가족에게 노동력 재생산과 복지 책임을 떠넘기고, 노동계급이 계급적 문제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개별 가족에 매여 사는 것이 부르주아지에게 이득이었다. 바로 이 필요 때문에 지배계급은 1백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오늘날 더는 ‘정상 가족’이 다수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오늘날 서구에서조차 동성애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 해방을 위해 어떻게 싸울 것인가?

콜린 윌슨은 이 책의 2부 '마르크스주의와 동성애자 해방'에서 20세기 동성애 해방 운동의 역사를 균형 있게 평가하며 다룬다. 그는 "동성애자 억압에 맞서 싸우려는 모든 사람은 어떤 정치와 정치조직이 투쟁을 전진시킬 수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역사적 경험들을 살펴보면, 계급투쟁이 전진했을 때 동성애자들의 권리에도 진전이 있었고 계급투쟁이 후퇴했을 때 동성애자들도 모진 시기를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는 단연 20세기 초 독일과 러시아에서였다.

최초의 동성애자 운동은 20세기 전환기에 독일에서 등장했다. 독일 사회민주당 당원이자 의사인 히르슈펠트는 최초의 동성애자 권리 조직인 과학적인도주의위원회를 결성했고, 남성 간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폐지하기 위해 청원 운동을 벌였다. 그는 동성애 운동에서 동성애자라는 섹슈얼리티와 비정치성을 강조했는데, 심지어는 나치당의 동성애자들과도 협력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동성애 해방은커녕 법률 개혁조차 이루지 못했다. 결국 독일에서 히틀러가 승리했을 때(즉, 노동계급이 패배했을 때) 독일 동성애자 운동은 분쇄됐고,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노동운동 투사,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투옥·학살됐다.

반면, 당시 후진국이었던 러시아에서는 독자적 동성애 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17년 10월 노동계급(남성과 여성,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등을 포괄)이 혁명에 성공하자, 곧장 결혼과 성행위에 대한 낡은 법률이 폐지됐다. 동성애는 합법이 됐고 이혼도 쉬워졌다. 혁명 전 남몰래 결혼한 두 여성은 결혼을 인정받았는데, 영국에서 ‘시민 동반자 제도’가 도입되기 무려 88년 전 일이다. 노동자 정부가 여성과 동성애자 억압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가족 제도를 없애고자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부는 개별 가족이 떠맡고 있는 양육과 부양의 의무를 사회가 책임져, 애정만을 기반에 둔 자유로운 개인들의 만남과 공동체가 가능하게 했다.

1917년 러시아는 노동계급에게도, 동성애자에게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로 기록될 만하다. 비록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고립, 스탈린의 반혁명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두 경험은 운동의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도 보여 준다. 동성애 억압의 원인이 자본주의 가족 제도에 있다면 억압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반자본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콜린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평등하게 대접받기 위한 투쟁이나 노동계급 운동과 분리하는 방식은 억압에 맞서 싸우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 성적 지향을 이유로 억압받는 사람은 노동자라는 이유로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과 똑같은 적을 갖는다. 바로 자본가 계급 말이다. 물론 언론과 기성 정치인은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애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그러나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뿌리뽑아야만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남성이든 여성이든,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단결된 노동계급 운동이 억압받는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하고 이런 연대에 기반해 억압받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함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주의 없이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이 있을 수 없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 없이는 사회주의도 있을 수 없다.”

한국에서도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한국은 여전히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악독한 법·제도가 있다. 2007년부터 논의된 차별금지법(성적 지향 포함)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아직까지 제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대중 의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이제 동성애자는 만화,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한다. 연예인으로서 처음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 씨에 대한 사회적 마녀사냥이 있던 16년 전과 오늘날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성소수자 운동도 성장하고 있고, 새 세대 활동가들도 등장했다. 특히 그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은 영감과 교훈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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