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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판결의 의의와 과제’ 토론회에 다녀와서: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의 중요한 노동조건 문제

8월 26일 ‘법원, 성희롱에 대한 사용자 책임과 사측의 ‘불리한 조치’를 인정하다 –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 항소심 판결의 의의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2015년 12월 18일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와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 재판에서, 성희롱과 성희롱 신고 이후 각종 불이익 조처에 대해 법원은 가해자뿐 아니라 사측의 책임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사측의 상고로 사건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날 토론회는 사측의 책임을 인정한 2심 판결의 의의를 짚어보면서 동시에 한계와 보완책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자리였다.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사측이 불이익 조처를 행한 대표적 사례다. 피해자는 2012년부터 1년 넘게 직속 상사인 팀장한테서 성희롱에 시달렸다. 고심 끝에 피해자는 사측에 성희롱을 신고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사직 종용, 따돌림, 허위사실 유포 등 감당하기 힘든 불이익 조처들이었다. 피해자가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하자 부당 조처는 더 심해졌다. 징계, 핵심 업무 배제, 직무정지와 대기발령, 하위 등급의 인사고과 등등. 피해자를 도와 진술서를 쓴 후배 동료 역시 사측의 눈엣가시가 돼 징계, 대기발령, 직무정지, 형사고소 등의 대상이 됐다.

2심 판결 이후에도 불이익 조처는 지속되고 있다. 사측은 피해자에게 2015년 인사고과로 최하위 등급을 매겼다. 성희롱 피해를 신고하기 전인 2012년 피해자의 인사고과는 최상위 등급이었다.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한 노동개악 지침 때문에 최하위 고과는 피해자의 실제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2심 판결은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에 대한 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성희롱 피해에 대해 문제제기한 후의 업무 변경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임을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다. 1심에서 법원은 단지 성희롱 가해자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김엘림 법학과 교수는 “우리 나라의 경우 [2002년 전까지] 사용자 책임이 논란된 모든 성희롱 사건에서 사용자 책임이 인정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이는 “성희롱 사건에 있어 ‘사무집행과 관련한 해석(업무관련성)’을 매우 좁게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02년에 와서야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등장하기 시작해, 8건의 사건에서 점차적으로 사용자 책임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들에 비춰 봤을 때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의 경우 1심에서, 사용자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점은 1990년대 등장한 판례와 같은 수준으로, 시대를 역주행한 판결이다.”

업무관련성

법적으로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에 대한 회사의 ‘사용자 책임’이 인정되려면, 성희롱 행위와 사무집행(직무) 사이의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법원은 성희롱 행위가 가해자의 공식적인 직무범위와 직무권한 내에서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업무관련성’을 판단해 왔다.

가령 “과장이 식당 준비 작업을 하는 중인 계약직 직원의 손목을 잡고 안아보자며 실랑이를 벌이는 행위나 사무실에서 갑자기 여직원을 끌어안고 풀어주지 않는 행위, 비좁은 사무실에서 포르노그라피를 보거나 외모에 대해 비유를 하는 행위”는 “직무권한 내의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자 책임성을 인정받지 못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부연구위원)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2심 재판부는 상급자가 부하직원에게 행한 성희롱은 그 자체로 “업무관련성”이 있고, 따라서 회사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부하직원의 업무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급자가 그 부하직원에 대하여 직장 내 성희롱을 한 경우에는 그 자체로 직무위반행위”). 이 점에서 발표자들은 2심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원래 하던 핵심 업무에서 제외된 것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불리한 조치’에 해당한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회사측의 책임을 물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추행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이 성희롱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이를 ‘불리한 조치’임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는 성희롱 사건을 접수한 인사팀의 한 직원이 피해자에 대해 부정적인 해석을 덧붙여 사내에 유포했던 것도 불법행위라며 이것도 사측의 책임이라고 인정했다.

물론 2심 판결에는 한계도 있다. 재판부는 업무 변경을 제외한 그밖의 조처들 – 피해자에 대한 징계와 직무 정지, 대기발령 등 – 에 대해서는 성희롱 사건과는 별개라며 ‘불리한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발표자들은 이 행위들이 피해자의 문제제기 이후 보복성 조처들이었음에도, 재판부가 여전히 “불리한 조치”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해자를 도우려다 부당한 처우를 당한 동료 노동자에 대해서도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사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불리한 조치”

이처럼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조처들이 다양하고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피해자가 이를 증명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직장 내 성희롱이 주로 사장이나 상사에 의해 벌어진다는 점 때문에 많은 피해 여성들의 문제제기는 묵살되기 일쑤다. 피해자가 도리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피해자를 모욕하는 소문이 퍼지는 일이 아주 흔하게 벌어진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8.4퍼센트가 성희롱 발생시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또한 성희롱 발생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재직상태가 변화된 비율이 36.5퍼센트로 높게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젠더법학연구소 장명선 교수는 “불리한 조처에 대한 구체적 명시 및 규정,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 조처를 막을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직결된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최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성희롱을 폭로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본지 179호 ‘임금 인상·인격적 대우 요구하는 김포공항 청소 노동자들 “우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공동 운영하는 장학시설인 남도학숙의 여성 노동자도 성희롱 문제제기 이후 계속되는 불이익에 맞서 싸우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174호 ‘남도학숙 직장 내 성희롱 사건 – 공공 기관 내 성희롱과 불이익 조처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

르노삼성자동차 사례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과 그 이후 대처에서 드러나는 사측의 부당함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이 사건에서 직장 내 성희롱과 불이익 조처에 대한 사측의 책임을 철저히 묻는 판결이 난다면, 현재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싸우고 있거나 싸우려 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다.

법원에서 피해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 개선 방안을 지지하는 한편,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직장 내 성희롱이 노동조합의 쟁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 조직을 동원해 투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동료 여성 노동자의 성희롱 피해에 항의해 다른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함께 싸운다면, 경영진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항의가 생산에 미칠 악영향이나 이미지 실추 등을 고려해 성희롱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하는 압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관련 기사: 본지 166호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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