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평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
〈노동자 연대〉 구독
체 게바라는 이 시대의 ‘코드’인가? 이 책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 말고도 최근 《체의 마지막 일기》라는 게바라 관련 서적이 또 하나 출간됐다.
교보문고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게바라 관련 서적 21종 가운데에는 《체 게바라식 경영》이라는 책도 있고 어린이용 만화책도 있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도 있었다. 30여 년 전에 죽은 게바라가 거 봐란 듯이 부활한 느낌이다. 그런데 또 무슨 게바라 책이 필요할까?
지은이는 이 책을 쓴 동기가 아주 간단하다고 말했다. 1999년 시애틀 시위 이후 크게 성장한 국제 반자본주의·반전 운동의 현장에서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마치 그 운동에 참가한 새 세대의 상징처럼 부각되는 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왜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미지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지은이는 그런 운동에 참가하는 새 세대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바로 그런 물음에 답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지은이는 게바라의 성장기를 살펴보며 타고난 혁명가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도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20대 초반의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를 두루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통해 정치적 각성을 하게 되고, 결정적으로 1954년 과테말라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다.
대다수의 혁명가들은 세계의 불의와 고통을 직간접 경험하며 분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분노를 정치적 의식으로, 나아가 혁명적 의식으로 발전시키며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서 끌어낸 정치적 교훈이나 결론이 올바른 것인가는 별개 문제다. 과테말라 군사 쿠데타를 보며 게바라가 얻은 교훈은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군사적인 것이었다.
민중은 무장하지 않았고, 저항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게바라에게는 중요했다. 게바라는 반(反)제국주의자가 되긴 했지만, 변혁의 진정한 힘이 노동계급 대중에게 있다는 정치 전통은 그에게 낯선 것이었다.
게바라는 대중 운동과 연관 맺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추진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성장기의 경험, 즉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 대중 운동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했던 페론주의에 대한 반감이 지나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점은, 비록 배경은 서로 달랐지만, 피델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서로 공유한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카스트로는 부패하고 타협적인 쿠바 공산당에 대한 불신 때문에 대중 운동이 변혁의 동력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1956년 말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로 침투한 게바라는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자신의 독특한 혁명 전략을 발전시켰다. 그 핵심은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혁명가들이 기다릴 필요 없다는 것, 소수의 헌신적인 게릴라 전사들이 대중을 대리해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혁명의 성공은 군사적·기술적 준비에 달려 있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쿠바 혁명의 성공으로 입증된 듯했다.
물론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산악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아바나로 진군·입성하기까지 일련의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쿠바 혁명의 성공 원인을 설명할 때, 바티스타 정권의 가혹한 억압과 부패, 무능 때문에 이반한 민심이 카스트로나 게바라 같은 혁명가들에게 향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그 전까지 바티스타의 후견인 노릇을 했던 미국이 점차 그를 골칫덩이로 여겨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혁명가들과 그 지지자들을 겨냥한 탄압 조치가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던 1958년의 결정적 시기에 그랬다.
클라우제비츠의 말마따나,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었으며 군사는 정치에 종속됐던 것이다.
그러나 게바라는 정치적 분석과 평가보다 군사적 준비와 실무를 앞세우는 게릴라전 전략을 고수했다. 이 점은 나중에 쿠바를 떠나 콩고에서 게릴라 투쟁을 벌이다 실패하고 마침내 볼리비아 정글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어찌 보면 이런 게릴라전 전략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 이 책의 일관된 문제의식처럼 느껴질 만큼 지은이의 비판은 끈질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게바라를 미화하고 영웅시하기 바쁜 여느 게바라 평전·전기와 사뭇 다르다.
이 책은 또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었는지, 자칭 공산주의자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 지도자들의 정치적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옛 소련과 쿠바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지, 게바라의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는 칼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게바라가 죽은 뒤 어떻게 신화·전설·우상으로 부상하게 됐는지 등을 단지 묘사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다.
“혁명에는 성인들이 아니라 투사들이 필요하다. 그 투사들의 삶, 그들의 실수와 오판은 그 상징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남긴 유산의 일부다.”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과거에서 좋든 나쁘든 실천적 교훈을 얻는다. 그런 교훈은 인간이 사회주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그들 자신의 집단적 힘을 깨닫고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