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옹호자를 비판한다:
박유하는 잘못된 사실을 확신하는 제국 옹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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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황교안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연속성 있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1년 전의 합의를 즉시 폐기하라는 대중의 공분을 외면한 채 대표적 적폐인 ‘위안부’ 합의를 수호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거기서 그가 얼마나 친제국주의적 인사인지도 드러난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뜨거운 정치 쟁점인데, 이 한가운데에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논란도 있다. 20일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세종대 박유하 교수(이하 호칭 생략)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미 민사 재판에서 박유하한테 불리한 판결이 내려져, 선고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질 공산이 크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자신들을 심각하게 모욕한다고 여겼고, 결국 박유하를 고소했다. 그리고 민사 재판부는 책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결정까지 내놓았다. 삭제된 34곳 중 일부라도 살펴보면, 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국의 위안부》에 크게 분노했는지 십분 공감하게 된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67쪽)
“그녀들의 ‘미소’는 매춘부로서의 미소가 아니라 병사를 ‘위안’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애국처녀’로서의 미소로 보아야 한다.”(160쪽)
“’조선인 위안부’는 피해자였지만 식민지인으로서의 협력자이기도 했다.”(294쪽)
‘반일’ 비판
박유하는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주장해 온 학자다. 그는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 때문에 한일 간 진정한 화해가 가로막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집필 목적이 “민족주의를 이용했거나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진보좌파에 대한 비판”[*]임을 숨기지 않는다.
박유하는 책 서문에서 아예 이렇게 주장했다. “이제까지의 20년 동안에는 오로지 소수의 관계자들의 생각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의 태도를 결정지었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의견이 한일관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요구하는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국내 ‘위안부’ 관련 단체와 좌파 민족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단체가 “정의”를 “독점”하지 말고 기존 요구에서 한발 물러서야 한일 간 ‘화해’가 가능하다는 게 박유하의 핵심 메시지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조선인 ‘위안부’는 중국이나 동남아 여성들과 달리 일본제국 신민인 ‘제국의 위안부’였고, 차별을 받으면서도 “애국”적 존재로서 일본군 병사들과 “동지적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와 방법은 터무니없다. 일본군 병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 증언에 등장하지도 않은 조선인 ‘위안부’의 의식을 추측하거나, 일본인 남성이 쓴 소설을 통해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일본군 출신자들의 증언 등으로 조선인 ‘위안부’의 모습을 사실상 왜곡한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왜곡
심지어 박유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왜곡하기도 한다. 예컨대 ‘위안부’들이 군인과 함께 즐기기 위해 아편을 사용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130쪽).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은 군인들이 성욕 증진을 위해 아편 주사를 ‘위안부’에게도 찔렀다고 증언한다.
박유하는 “내가 세상을 잘못 만나고 내 운명이고, 나를 그렇게 한 일본 사람을 나쁘다는 소리는 안 해”(75쪽)라는 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한다.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에서 그는 이 말이 “갈등을 화해로 이끄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그녀의 말은 갈등을 푸는 계기가 결코 체험 자체나 사죄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준다”고 썼다.(한국어판에는 이 문장들이 없다.)
그러나 박유하는 이 증언을 한 황순이 할머니(1922~2007)가 정대협과 함께 수요집회에 참가하며 일본의 사죄를 계속 요구했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황순이 할머니는 2006년 미국 하원의원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미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결의할 것을 요구한 피해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반대로 “일본 천황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 나는 용서할 수 없다”(297쪽)고 말하는 ‘위안부’ 피해자에게 “굴복시키려는 욕망”, “도덕적 오만”이라고 꾸짖는다. 사죄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피해자더러 오만하다고 나무라는 박유하의 정신 세계는 학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모두 문제다. 잘못된 사실에 대한 확신은 매우 위험하다.
박유하는 식민지 지배의 ‘구조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한다.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구조적인 강제성과 현실적인 강제성의 주체가 각각 누구였는지를 보아야 한다.”(27쪽) 법적 책임의 주체(‘위안부’를 징모한 민간 업자들)와 구조적 책임의 주체(일본 제국)를 구분함으로써,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이고 구조적 책임만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191쪽). 즉, 당시 일본군에게는 ‘위안부’라는 존재를 “발상”하고 ‘위안부’에 대한 “거대한 수요”를 만들었으며 징모 업자의 유괴나 인신매매를 “묵인”한 책임은 물을 수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궤변의 실천적 결론은 일본 국가는 법적 책임은 없고 구조적 ‘죄’만 있으므로 “도의적 책임(191쪽)”만 지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유하의 주장은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과 만난다.
그리고 “도의적 책임”은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이 과거 식민지 지배 책임을 회피하려고 빈번하게 꺼내는 미사여구다.[**] 결국 박유하의 주장은 제국주의 변호론으로 연결된다. 박유하가 아무리 페미니즘 담론을 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치장한다 한들, 이 점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성노예
역사적 진실을 종합해 볼 때 ‘위안부’ 문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조직적으로 자행한 성노예 범죄였다. 이 범죄를 설계하고 동원을 지시한 주범은 당시 일본 국가권력의 핵심부인 일왕과 내각, 일본군사령부, 조선총독부 등이었다. 그리고 박유하가 강조해 문제 삼는 ‘업자’들은 그 종범들이었다.(표 참조)
따라서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묻고 공식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서 핵심이자 출발점이다. 이를 부정하는 점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반동적인 저작이다.
‘역사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실 정치 문제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역사는 단순히 ‘과거사’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우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은 동아시아 곳곳에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겼다. 그리고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 제국주의는 일본의 범죄를 덮어 준 채 일본을 중심으로 역내 패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역사 문제’는 각국 정치에 매우 폭발적인 쟁점으로 돼 있다. 이는 기존 동맹 관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오늘날 미국, 일본,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갈등이 커지면서 동아시아에서 ‘역사 문제’는 더한층 국제정치의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자 미·일 동맹을 강화하며,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구실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종용하며 한일 협력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직도 식민 지배 기억이 선연한데, 미국의 지원 속에 일본의 한반도 영향력이 커지는 현실은 상당히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이런 지정학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와의 ‘화해’를 부르대는 《제국의 위안부》는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자 하는 한·미·일 지배자들의 지향에 부응한다.
짓밟힌 피해자 모욕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제국의 위안부》 문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쟁으로 번져 왔다. 2015년 12월에 몇몇 지식인들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며 명예훼손죄 기소와 가처분 결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는 장정일, 김규항, 유시민 등도 참여했다.
물론 진보·좌파는 원칙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검열 없이 의견과 주장이 활발하게 교환되는 것이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람들의 저항에 이롭기 때문이다. 지배 이데올로기와 지배계급의 착취와 지배에 맞서 노동계급이 비판의 무기를 휘두르는 데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권리는,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다. 따라서 해당 문제의 계급적 내용이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는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람들의 무기여야지,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거나 지배 질서를 옹호하는 은폐막이 돼선 안 된다. ‘표현의 자유’ 권리가 그 어떤 경우에도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지고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반영이다.
예컨대, 주류 일간지 1면에 동성애 혐오나 무슬림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다면, 이를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고 용인해야 할까? 프랑스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비극적으로 숨진 시리아 난민 아동 아일란 쿠르디가 죽지 않고 성장했다면 독일 여성을 성폭행하는 원숭이가 됐으리라는 내용의 추악한 만평을 게재한 바 있다.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해선 안 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논할 때 구체적 맥락을 따져야 한다. 즉, “누구의 자유이고 무엇을 하려는 자유인가”를 물어야 한다. 노동계급을 이간질하거나 ‘위안부’ 피해자들처럼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발언과 주장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할 수는 없다.
물론 좌파가 앞장서서 국가더러 박유하의 입에 재갈을 물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될 테지만(국가에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라고 요구하면 그 칼날이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대중에게도 향할 수 있으므로), ‘위안부’ 피해자들로서는 고소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위안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마당에 언론·출판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박유하를 사실상 엄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는 진보적 대의에 도움이 안 된다.
민족주의
한편 좌파 일각에서는, 기존의 ‘위안부’ 운동이 “민족주의 감수성에 경도돼” 있다며 박유하의 주장을 옹호한다.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를 내세운 민족주의적 운동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위안부’ 이미지가 ‘순결한 소녀’로 정형화된 것은 아쉬운 점일 테다.(물론 ‘위안부’ 피해자 상당수가 10대 나이에 피해자가 됐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이 박유하 주장의 핵심을 좌파가 채택할 이유는 못 된다.
그리고 좌파는, 왜 ‘위안부’ 문제 등에서 민족주의적 공분이 형성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 식민 지배를 겪었고,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들이 수십 년 동안 국가 권력 요직을 차지해 왔다.
한국은 미국 제국주의의 관장 하에서 경제·안보 면에서 일본과 긴밀하게 얽히고설키게 됐다. 그래서 한국 지배계급은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우파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 정부까지 한국의 역대 정부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도 결정적일 때 일본 제국주의와 손을 잡은 까닭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 등 일제의 식민 지배 ‘과거사’를 향한 대중의 민족주의적 분노가 때때로 커다란 저항의 시초가 될 수도 있다.(박근혜 퇴진 운동 속에서도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는 일찌감치 대중적 공감대를 이뤘다.) 지배계급 내 포퓰리스트들이 민족주의적 미사여구를 동원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좌파는 이 모순된 상황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 민족주의의 근원과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 사고는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데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각주
* 박유하, ‘젊은 역사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역사문제연구》, 제33호, 2015.
** 서경식,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 조선인의 초상》, 돌베개, 2011.
추천 도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정영환 지음, 푸른역사, 2016.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의 진실》, 손종업·양징자 외, 도서출판 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