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역사교과서 최종본:
제국주의를 변호하고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왜곡·축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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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하지만 최종본은 지난해 11월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최종본과 함께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심의위원들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자들과 마찬가지로 뉴라이트 인사들이 핵심을 차지했다.
그중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이기동은 제주 4
결국 최종본은
제국주의 옹호
교육부는 검토본에 대한 비판 의견을 반영해 최종본을 만들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최종본도 제주 4
그러나 제주 4
4
1947년 4월 미군정은
이런 탄압에 대한 누적된 분노가 4
해방 후 일어난 공장 자주관리 운동,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을 진압하며 대소
제국주의가 일으킨 문제는 단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제주해군기지와 사드 배치 문제가 그렇고 일본군
최종본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라 할 만하다.
반(反) 노동자적 관점
최종본의
하지만 새마을운동은 급속한 자본축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농촌의 불만을 억눌러 도시의 반정부 분위기가 농촌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농촌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농민 쥐어짜기는 도시에 의한 농업 지배라는 자본주의적 발전 논리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도시의 계급들이 단순히 똑같이 득을 본 것은 아니었다. 농촌의 새마을운동은 도시의
이런 억압과 통제가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70년대 끈질기게 벌어진 노동자들의 투쟁은 1979~80년에 경제
이렇게 급속히 증가하는 노동자 운동을 제압하고 다시 착취와 억압의 박정희 체제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 전두환과 신군부였다.
따라서 최종본이 5
극심한 폭압에도 전두환은 노동계급의 저항을 잠시만 막을 수 있었을 뿐이다. 광주 민중항쟁 진압 후 잠시 가라앉았지만 노동계급은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현재 한국 지배자들은 전두환이 정권 초에 맞서야 했던 노동계급과는 질적으로 달라진 상대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정책 폐기하라
교육부는 2018년에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를 혼용해 사용하되 올해는 연구학교를 지정해 국정 역사교과서를 시범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연구학교 지정을 거부하는 교육청을 제재하겠다고 협박하고 연구학교 신청 기간을 늘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학교를 신청한 학교는 없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여전히 강력하고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우파들은 연구학교를 반대하는 교육감과 전교조가 학교의
대표적인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운동 단체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퇴진 운동의 힘
사실 교육부가 올해 국정 역사교과서 전면 시행 입장에서 물러선 것은 거대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힘 때문이었다. 대중 운동의 힘이 고집불통으로 보이던 교육부에 강한 타격을 가했다.
교육부가 그토록 옳다고 우기던
얼마 전 저지넷 한상권 상임대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