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후보의 클레어법 공약:
범죄 전력자 감시 강화에 뒤따를 부수적 폐단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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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는
그동안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은
그런데 심상정 후보가 데이트폭력 예방책으로 제시한
김용신 정의당 정책위 의장은
그러나 상대방의 전과 정보를 파악해 피해를 예방한다는 생각은 개인이 조심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로, 범죄 발생의 책임을 도리어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데 이용되기 쉽다. 3월 15일 정의당이 주최한 토론회
1에 참가한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이 옳게 지적했듯이,
경찰은 전과 기록이 제공된 이후에도 피해가 생기면

무엇보다, 클레어법의 데이트폭력 예방 효과가 의심스럽다. 사실, 여성이 파트너의 폭력 전과를 조회해야겠다고 마음 먹을 정도면 상당한 위협이 있거나 이미 폭력이 발생한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여성이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서 각종 서류 심사를 거쳐 뒤늦게 제공되는 전과 정보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일부 언론과 경찰에서는 영국의 클레어법 시행 첫 해에
가정폭력 발생시 경찰에 신고하는 비율은 한 해 평균 0.8퍼센트로, 극히 저조하다는 점도 봐야 한다. 신고되지 않은 폭력 범죄가 훨씬 많아, 전과 기록 조회가 거의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데이트폭력 신고율도 가정폭력 신고율처럼 매우 낮다.
물론 데이트폭력과 가정폭력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며 방치하는 경찰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신고시 출동도 하지 않는 경찰의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클레어법처럼 범죄 전력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은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책이 아니다.
무능한 경찰의 책임 전가
클레어법은 잠재적 피해자가 파트너의 잠재적 폭력성을 간파하면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클레어법 제정의 계기가 된 사건은 피해 여성이 파트너의 폭력성을 몰라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정의당 내 의견그룹인 진보너머도 이 점을 지적했다.
지난 1월 강남에서 한 여성이 옛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도 경찰의 대처가 결정적 문제였다. 여성은 자택에 무단 침입한 옛 남자친구를 경찰에 신고했고, 남자친구는 연행됐다. 그러나 경찰은
이렇게 경찰이 여성의 안전 조처 요구를 방치해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성들이 어렵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경찰은 피해 여성의 고통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데이트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도 천박하다. 지난해 2월 경찰청이
당시 경찰청은 연인들이 서로를 존중할 것을 약속하며 댓글을 다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황당하게도 행사 명칭이
클레어법의 신상공개 방식은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처럼 범죄의 원인과 책임을 그저 개인에게 돌리고 그런 개인들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낙인 찍기를 강화하는 대책이다. 그러나 범죄 전력자들을 낙인 찍고 사회에서 배제하는 방식은 예방은커녕, 범죄 전력자들의 좌절과 분노를 키워 더 큰 범죄를 저지르기 쉽게 만들 뿐이다.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무시한 채 개인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을 경우, 범죄를 줄이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경찰력 강화나 우파적 의제를 추진하는 데 이용되기 십상이다.
영국에서 2012년 클레어법 추진에 가장 앞장섰던 자는 보수당 정부의 테리사 메이 당시 성평등부 장관
한국에서 클레어법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한 자는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시위 진압 책임자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이다. 강신명은 지난해 초 전국에 데이트폭력근절TF팀을 구성해 경찰력을 증대했다. 그 시점이 박근혜가 대국민 신년사에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친제국주의 정책으로 노동계급에 선전포고를 한 직후였음은 의미심장하다.
클레어법을 제안한 심상정 후보가 영국 보수당이나 강신명과 같은 의도로 그 법을 추진하지는 않겠지만, 클레어법 제정이 낼 이런 정치적 효과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 봐야 한다.
진정한 대안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 같은 여성 대상 폭력은 인간 본성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원인이 있다. 만연한 여성 차별은 다른 사회적 불의와 함께 일어나며, 여성 차별은 인간의 소외가 심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작동 방식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는 개별 가정, 특히 가정 내 여성에게 미래의 노동 인구를 돌보는 일을 떠넘겨 왔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전례없이 노동시장에 진출했어도 여전히 부차적 존재로 취급받고, 어머니
더구나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고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긴다. 이것은 사람들을 지독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몰아넣는다. 가난과 소외로 인한 좌절은 사람들의 관계들을 비틀어버리고 종종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여성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뒤틀린 일부 개인들은 자신의 욕구 불만이나 좌절을 여성에게 전가하곤 한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가난과 고된 노동, 실업과 불안한 미래는 사람들의 대인 관계 발전 능력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그래서 연인 관계가 파트너에 대한 소유와 집착으로 점철되어 병들고 망가지는 경우도 생긴다.
데이트폭력 역시 다른 폭력범죄처럼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지만, 데이트 상대를 잠재적 가해자로 가정하고 감시하는 것이 폭력의 뿌리를 뽑는 대책이 될 수는 없다. 피해자 보호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클레어법 같은 범죄 전력자에 대한 감시
더 나아가 데이트폭력을 비롯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여성 차별의 뿌리인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경쟁과 소외로 왜곡된 인간 관계를 우애와 협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착취와 억압과 폭력이 사라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데이트폭력, 어떻게 예방하고 해결해 나갈 것인가? ― 한국형 클레어법 도입의 내용과 실효성 검토” 긴급 토론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