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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규정에 특수고용 노동자가 포함되도록 개정하거나,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라고 5월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독립적인 자영인으로 보기 어렵고, 근로자나 종속성이 높은 직종의 종사자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함으로써 스스로 경제·사회적 지위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건설 노동자들

이 같은 권고는 당연한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여느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사용자에게 임금을 받고 그들의 통제·지시 하에서 일하지만, 단지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탁·도급 계약을 맺는다는 이유로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있다. 그래서 헌법에 명시된 노동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ILO(국제노동기구), 유엔 등도 한국의 특수고용 실태에 우려를 표명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7년부터 벌써 세 차례나 권리 보장을 권고했지만, 10년째 시간만 질질 끌며 개선되지 않았다.

사용자들의 책임 회피

특수고용 노동자는 학습지 교사, 건설기계(덤프, 레미콘, 굴삭기 등) 노동자, 보험모집인, 화물차 운전자, 방과 후 학교 강사, 애니메이터, 대리운전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배달앱 노동자 등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노동자들이다.

노동계 추산으로는 2백5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본다. 정부는 49만 5천 명 정도로 추산하지만, 대다수가 자영업자로 분류돼 기초 통계 자체가 엉망이다. 2015년 국가인권위의 실태 조사도 2백30만여 명(전체 취업자의 8.9퍼센트)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특수고용직의 확대는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전후해 기업주들이 이윤을 만회하고자 고용에 따른 책임과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데서 기인한다. 기업주들은 노동자와의 고용계약을 일종의 하도급 계약으로 전환해, 고용을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졌고, 각종 보험혜택에서 제외됐으며, 노동3권은 제약됐다. 음식을 배달하던 고등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도,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이 골프공에 맞아 머리를 다쳐도, 덤프·레미콘 등 건설기계 노동자가 전복·추락으로 사망해도 산업재해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지난 십수 년간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해 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골프장 경기보조원, 애니메이션·학습지·레미콘 노동자 등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 초에는 화물·덤프 노동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동자, 삼성에스원 영업전문직 노동자들도 투쟁에 나섰다.

투쟁이 점차 확산되자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졌다. 2003년에 노사정위원회 산하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2006년에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일부 개혁을 우회적인 수단으로 제공한 데 그쳤기 때문에 실질적인 노동조건 개선 효과는 적었다. 예를 들면, 2007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조항’이 도입돼 일부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스스로 보험료를 부담해야 했다. 특례 조항의 적용을 받는 6개 직종(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택배 기사 등) 노동자의 11.7퍼센트만이 산재보험에 가입한 이유다. 심지어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이런 특례에서조차 제외돼,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은커녕 ‘개인 사업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구상권을 청구 받아 사고 피해액을 배상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9년에는 정부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며, 건설노조·공공운수노조에서 이들을 배제하라는 노동조합 규약시정 명령을 내렸다. 물론 전교조에게 한 것처럼 ‘노조 아님’을 통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건설노조의 경우 아직까지 기업들로부터 관련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화물 노동자들이 매번 파업 때마다 정부는 한사코 파업이 아니라 ‘운송 거부’라고 주장하면서 불법이라고 협박했다. 보험모집인, 퀵서비스,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법외노조로 남아 있다.

문재인은 공약을 이행하라

이런 점들 때문에 지금 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국가인권위 권고를 환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노동3권 보장과 고용보험·산재보험 전면 적용을 약속한 바도 있다.

그런 만큼 민주노총의 요구대로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당장 6월 국회에서 관련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노조법상 노동3권 보장은 물론이거니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도 결국 노동과 자본 간의 힘의 관계에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주들은 벌써부터 ‘비용 부담’ 운운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보험회사들은 “40만 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의 노동3권을 [보장하면 그] 비용 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따라서 이전처럼 국가인권위의 권고 후에도 노동3권 보장이 지연되거나, 정부와 기업이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고 우회적인 수단(별도의 특별법, 공정거래개선 등)으로 빠져 나가려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또, 설사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제도 개선이 되더라도,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노동조건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인권위 권고 이후 높아지는 기대감 속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불합리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다시금 본격적인 시동을 걸어야 하는 까닭이다.